국가 경기부양에 따른 추가경정예산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정치권에서 논의된지 두 달여 만에 구체적인 추경예산안 내역이 나왔다. 그 규모만 28조9000억 원에 달한다. 이와 관련, 정치권·재계 등 전문가 집단에서는 이번 추경예산안에 대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규모의 편성이라는 점에서는 의견이 없지만, 세부 편성 내역에서는 대기업·서울·강남·부유층 편중이라는 의견이 팽배하다. 이 때문에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의 이한구 위원장(한나라당)은 “추경안의 사업 하나하나가 타당한지 아닌지 따지다 보면 원안대로 통과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세부 안에 대해서는 전경련·시민단체 등은 물론이고 정치권에서조차 한나라당·민주당·자유선진당 등 각 당별로도 서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추경예산안의 규모에 대한 적절성에 대해서도 현 국가 경제위기 상황 아래에서 어쩔 수 없다는데 대한 합의일 뿐 건전성·적확성에 대해서는 신중론이 우세한 상황이다. ■추경예산안 일부 수정 불가피 지난 13일 보고된 2009년 추가경정예산안은 국회에서 최종심의 의결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의안에 불과하다. 이 의안은 국회의 예산결산심의위원회를 거쳐 오는 26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돼야 비로소 집행 가능한 추경예산으로 확정된다. 국회 예결위는 이번 추경예산안의 심사 기준으로 일자리 창출 및 취약계층 보호에 대한 적절성, 경제성장 촉진효과, 국제수지 개선, 미래성장 동력 확충을 기준으로 확정했다. 예결위는 이를 기준으로 하나하나 따져본다는 계획이다. ■추경예산의 개요 이번에 국회에 보고된 2009년 추가경정예산안에서 지정한 사업은 크게 저소득층 생활안정에 4.2조, 고용유지 및 취업기회 확대를 위해 3.5조, 중소·수출기업 및 자영업자 지원에 4.5조, 지역경제 활성화에 3.0조, 미래 신성장산업 투자에 2.5조 등에 추가 자금이 투여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세출도 총 17.7조 원이 추가되게 된다. 특히 저소득층에 대한 한시 생계보호자금, 재산담보부 생계비용 지원 자금, 희망근로 프로젝트 추진 자금과 교육 관련 교과교실제 도입, 군단위 소규모 학교 통폐합, 초중등학교 시설환경 개선, 학습보조 인턴교사 채용 등을 위한 사업 자금, 소상공인들의 영업환경 개선 자금 등은 지난 2월 통과된 2009년 예산안에는 아예 빠져 있던 것이 이번 추경예산안에서 추가됐다. 이에 따라 예산도 모두 4578억 원이 순증됐다. ■정부의 세입 및 국가 재정계산 틀렸다 추경예산이란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올해 나라살림에 쓰일 재정을 늘린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과 기업들에게 세금을 추가로 걷어들이거나 정부가 국채 등을 발행해서 재원을 조달해야 한다. 현재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지방선거 및 민심 등을 고려해 과도한 세금증액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결국 추경예산으로 계획된 자금은 정부가 빚을 내서 조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기획재정부·국회 예결위·전국경제인연합회·LG경제연구소·국가경제연구원 등 경제 관련 국가기관 및 기업 연구소들은 “이번 추경예산을 통해 국가가 떠안을 빚은 충분히 감당할 만한 수준 이내이기 때문에 괜찮으며 추경의 시기도 적절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는 개념이 여유롭게 감당한다는 것이 아닌 겨우 감당해낼 만한 수준이라는 것. 국회 예결위는 2009년 제1회 추경예산안 분석 보고서를 통해 “1차 추경예산안으로 발생될 국가 부채까지는 한국 경제가 감당 가능하지만, 현재 규모 이상으로 국가 부채가 증가할 경우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 보고서는 “일단 (이번 추경 이후 추가로) 부채가 늘어나면 이자지출이 늘어나 다시 부채가 늘어나는 부채의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며 국가 부채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때임을 강조했다. 이 보고서에서 국회 예결위는 올해 통합 재정수지를 23조1000억 원 적자에 국가 채무 367조5000억 원으로 전망했다. 이는 기획예산처의 22조5000억 원 적자에 국가 부채 366조9000억 원에 비해 각각 6000억 원 씩 늘어난 규모이다. 이에 따라 국회와 재계는 “정부가 세입전망과 경제전망 등을 부실하게 추정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국회예산정책처와 기획재정부는 한국경제의 성장률 및 기초체력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밝혔다.
특히 세입·세출 후 국가 수지 전망치는 무려 6000억 원 수준의 차이가 났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중 실질 GDP 증가율을 -2.5%, 경상 GDP 증가율은 0.0%로 전망해 기획예산처 대비 5%p 밑돌았다. 이 같은 차이에 대해 국회 기획재정위의 한 관계자는 “추경예산을 짜는 것 자체가 경제환경 악화 등 다양한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며 “추경예산을 짤 때는 모든 경제지표 및 여러 가지 참고사항 등은 본 예산 이후 가장 최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획재정위는 세목도 소득세를 포함한 5개 세목만을 수정 대상으로 한정했고, 관련 경제지표 및 보고서도 낙관적인 것들 위주로 채택해 정확성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예결위, “저소득·중소기업 지원 사업 주먹구구” 지적 국회 예결위는 정부에서 보고받은 추경예산안과 관련 “세부적 사업 면에서 세심한 고려를 하지 않아 일부가 편중된 감이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우선 저소득층 지원 부문은 국내외적 경제위기로 인해 고통받는 민생에 대한 직접적인 처방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추경에서 내놓은 사업안들이 대체로 허술하게 기획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제위기로 타격을 받은 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혜택을 줄 목적으로 계획한 1573억 원 규모의 긴급복지사업과 2조 원 규모의 희망근로 프로젝트 사업은 각 사업의 수혜 대상이 사실 동일한 처지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사업 수혜에 해당되느냐에 대한 공무원들의 판단 여하에 따라 지원 규모와 혜택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초생활보장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이번 추경예산에서 새롭게 도입한 한시적 생계보호사업의 경우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추경예산안에는 이 사업을 위해 4,181억 원을 책정하고 있다. 또한 1300억 원 규모로 추진되는 자산담보부 생계비 융자지원사업의 경우 해당 재산보유 가구가 많지 않고, 신용보증재단중앙회의 저소득층 융자사업과 중복 가능성이 있어 집행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번 국회 예결위는 추경예산안에서 소상공인 영업환경 개선사업을 위해 455억 원을 책정했지만, 사업이 서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사업은 소상공인 및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카드 단말기 설치를 지원하는 사업이지만, 금융위원회 및 카드업계의 카드 수수료 인하 등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호응을 얻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회 예결위는 추경예산안을 통해 신규 교육사업을 기획하고 있는 교과부의 계획이 지방 교육재정 부담을 한층 가증시키고 결국 수도권과 지방에 대한 교육격차 증대를 유도하게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대기업 편중지원에 농어민 소외 시정돼야 또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이성남 의원 측은 “신용보증기금·한국주택금융공사 등 추경예산을 통한 추가 재정확충이 계획된 기금 및 공사들이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를 시정하지 않을 경우 추경예산의 일부가 지원이 필요없는 대기업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신용보증기금에서 실시하는 시장안정 특별보증 중 브릿지론 보증의 경우 전체 보증 지원액의 65.6%를 한화·코오롱·SK·금호아시아나·두산 등 재벌 대기업 주력회사들에게 지원하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의 이성남 의원과 한나라당의 김태환 의원(지식경제위원회 소속) 측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편성된 신용보증기금에 대한 추경예산 중 일부는 사실상 중소기업이 아닌 재벌 대기업에 투자하기 위한 투자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보 관계자는 “법령에 60% 이상을 중소기업에 우선지원토록 돼 있다는 것은 반드시 중소기업에만 대출하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해 사실상 대기업 위주의 지원 정책을 철회할 생각이 없음을 내비쳤다. 또 사회적 합의를 통해 백지화된 동강댐 건설 계획을 추경예산안에서 슬그머니 추가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정부 추경예산 중 6670억원을 투입해 동강지역에 거운 홍수조절 시스템을 만들것을 적시했다. 이달 말 동강지역의 추경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국토해양부는 이 공사를 바로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환경연합은 “거운 홍수조절지는 동강댐 예정지와 불과 2km 이격돼 있으며 2억 톤 가량의 물을 담아둘 수 있다”며 “이름만 바꿨을 뿐 결국 동강댐의 재추진이다”라고 말했다. 또 농어민들은 “이번 추경에서도 농어민들에 대한 배려가 빠져 있다”고 며 불편한 심기를 터뜨렸다. 이 같은 여론을 대변하듯 민주당·민주노동당·선진과창조의모임 등의 야당의원 41명은 “농어민들의 부채탕감 및 이자보전 등을 위해 7068억 원을 추경예산에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2004년 이후 발생한 상호금융 부채만 39조7611억 원에 달한다”며 “농어가의 파산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부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