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받은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의 돈 600만 달러의 주인을 ‘노 전 대통령의 아내와 아들’로 잠정 결론 내림에 따라, 과연 노 전 대통령을 포괄적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4월 16일 검찰에 따르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검사장 이인규)는 박 회장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한 100만 달러와 조카사위 연철호 씨에게 건넨 500만 달러 모두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로 보고 있다. 검찰이 그 동안 수차례 박 회장의 진술이 신빙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했듯이 “노 전 대통령의 몫으로 건넸다”는 박 회장의 진술을 ‘철썩같이’ 믿고 있는 이유는 민주당 이광재 의원,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을 수사하면서 박 회장의 진술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둔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100만 달러는 권 여사가 개인 채무 변제를 위해 받은 돈이고, 500만 달러는 박 회장이 연 씨에게 ‘투자 목적’으로 전달했을 뿐이며, 특히 돈을 주고받을 당시에는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로서는 당연히 “빚을 갚는데 썼다”는 권 여사의 진술은 용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아 신빙성이 낮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또한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당시에는 몰랐다”는 취지로 게시한 사과·발표문의 신빙성도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검찰로서는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몫으로 이 돈을 건넸다고 진술하더라도, 최근 법원이 진술만으로는 쉽사리 유죄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돈 거래 사실을 알았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유죄로 판단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다각도의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 노무현 인지 여부 확보 위해 다각도 수사 검찰이 2007년 박 회장과 정 전 비서관을 서울 모 호텔에서 만나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지원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 창신섬유 강금원 회장을 불러 조사하고, 정 전 비서관이 참여정부 때 박 회장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 조사하는 이유도 바로 노 전 대통령의 인지 여부를 캐내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이 금품 수수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드러난다면 특정한 청탁이나 명시적 대가성이 없더라도 포괄적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대통령이 실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범죄 성립과 상관이 없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2006년 당시 정대근 농협회장으로부터 3만 달러를 받은데 이어, 같은 해 8월에 박 회장으로부터 3억 원을 얻어 썼으며, 특히 2007년 6월 말에는 노 전 대통령이 퇴근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정 전 비서관이 청와대 관저로 100만 달러의 돈가방을 배달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리고 2008년 2월 퇴임을 앞두고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 씨와 조카사위인 연철호 씨에게 투자금 명목으로 500만 달러를 보냈고, 이를 두 사람이 나눠 썼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듯 부인이, 그리고 아들과 조카사위가 600만 달러라는 뭉칫돈은 받아 썼는데도 불구하고, 가장(家長)인 노 전 대통령은 “전혀 몰랐다”고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법조인 출신인 노 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사법처리로 연결되는 고리를 차단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판단하고 ‘노 전 대통령이 알고 있었다’는 증거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검 중수부는 횡령 등의 혐의로 대전지검 특수부가 구속한 강금원 회장을 서울로 이감해 16∼17일 이틀에 걸쳐 고강도로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강 회장이 2007년 8월 박 회장 및 정 전 비서관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지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3자 회동’을 가졌던 사실에 주목하고, 이 자리에서 박 회장이 500만 달러를 내겠다고 나섰다가 거절당했지만, 공교롭게도 지난해 2월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 씨의 계좌로 같은 액수의 돈이 건네졌음을 확인했다. ■노무현과 박연차의 진실 게임, 누가 이길까 그리고 검찰은 박 회장이 인수를 시도한 경남은행의 인수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박창식 창원상공회의소 회장도 소환해, 결과적으로 인수가 무산되기는 했지만, 인수과정에 노 전 대통령 혹은 참여정부 인사 등의 입김이 작용했는지를 살펴보기도 했다. 특히 검찰은 경남은행 인수는 물론 박 회장이 휴켐스를 인수하고 베트남 화력발전소 건설사업을 따내는데 노 전 대통령이 다양한 측면에서 편의를 봐줬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만약,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은 물론, 참여정부 인사들의 입김이 작용했는지를 규명한다면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 측에 건넨 600만 달러를 ‘편의를 봐준 대가’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은 물론, ‘노 전 대통령이 이 돈 거래를 재임 중 알았다’는 점만 입증할 수 있다면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은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과 포괄적 뇌물 공범”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로서는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했다”는 박 회장의 진술을 확보했으나 당시 통화내역도 확보하지 못했을 뿐더러, 또한 건호 씨의 금융계좌 내역을 확보했지만 1년치 뿐이고 국내 계좌와의 입출금 기록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박 회장의 진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권 여사와 연 씨의 돈 거래 사실을 알았다는 것을 입증해 내지 못할 경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는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 결과와는 관계없이, 재임 중 높은 도덕성을 강조하던 참여정부와 노 전 대통령의 주변 인사들이 이전 정권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비리와 부패를 저지른데 대해 많은 국민은 ‘속았다’며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지난 4월 13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6.1%는 노 전 대통령이 사과문에서 자신의 금품 수수 의혹과 관련해 “집(권양숙 여사)에서 받은 것이고, 모르는 일”이라고 밝힌데 대해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나 이 같은 기류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이에 대해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우리 국가나 국민들을 위해서는, 전직 대통령이 한두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되었다는 것은 불행”이라며 “자꾸 도덕을 주장할 때 어째 수상하다 했더니 이런 일까지 벌어진다”고 주장하면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어 이 총재는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엄연하게 위법·범법 사실이 밝혀졌는데 특별히 특혜를 줄 수도 없을 것이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본다”며 “보통 사람과 같은 수준으로 똑같이 법의 처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대정부 질문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은)‘우리 정부가 무능했다고는 치더라도 청렴성·도덕성은 깨끗했다’는 취지로 누차 말했다. 검찰과 언론의 발표를 보면 그것이 거짓이 아닌가 의구심을 가지고 국민들이 많이 실망하고 있다”며 “법무부와 검찰에서 신중하고도 엄정한 처리를 통해 위선자의 말로가 어떤지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바 있는 고(故)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의 유족들이 4월 7일 검찰에 “노 전 대통령이 소환될 경우 우리 사건에 대한 조사도 함께 진행해 달라”고 요구했다. ■고 남상욱 전 대우건설 사장 유족 ‘함께 조사’ 요구 남 전 사장 유족 측의 주장에 따르면 “박연차 리스트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을 조사한다면 그때 같이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지위를 생각할 때 재차 다른 사건으로 부르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 촉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유족 측은 “검찰은 고소인 조사 이후 사실관계를 다 확인했음에도 피고소인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며 “조속한 결론을 기다리는 유족을 위해서라도 이 사건이 빨리 처리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3월 TV를 통해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남 전 사장이 자신의 친형인 건평 씨에게 인사청탁 명목으로 3000만 원을 건넨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은 것과 관련해 “대우건설 사장처럼 많이 배우고 성공한 분이 시골에 있는 별볼일 없는 촌 사람에게 가서 돈 갖다주고 머리 조아리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당시 TV로 이를 지켜보던 남 전 사장은 노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후 한강에 투신자살했고, 남 전 사장의 유족은 지난해 12월 19일 “남 전 사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공개적 비난을 받은 뒤 자살했다”며 노 전 대통령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동일인을 두고 지검과 대검 검사들이 번갈아 수사를 하는 경우가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우선 고소인들의 의견을 신중히 검토한 뒤 향후 방침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피고소인 조사를 위한 수사를 진행 중”이라며 “가능한 한 빠른 결론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검찰은 유족 등 고소인 조사를 마친 뒤 노 전 대통령의 주소지 관할인 창원지검으로 사건을 이첩할지 여부를 검토했으나 서울중앙지검에서 직접 수사하기로 결정한 바 있으며, 창원지검으로부터 건평 씨의 수사 관련 기록을 넘겨받아 검토하는 등 수사를 진행해 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박연차 리스트’에 이어 이 사건도 어떻게 결론이 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