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여행사에 지급하는 항공권 ‘발권수수료’를 2010년부터 전면 폐지하기로 발표한 후 여행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국내외 경제 악재들로 어려움을 겪는 여행업계가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수익원이 한정된 중소 여행사는 회사 경영에 미치는 타격이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항공권 ‘발권수수료’가 폐지되면, 수수료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은 메이저 여행사들은 경영에 미치는 어려움이 크지 않겠으나, 전체 수익의 50~80%가 발권수수료인 중소 여행사들은 존립 자체가 불투명하다. 이는 우리보다 앞서 발권수수료를 폐지했던 미국의 사례에서도 쉽게 목격된다. 미국은 2002년 3월 발권수수료 폐지 후 여행사의 30%가 문을 닫았다. ■여행사 “밥그릇 빼앗는 횡포” 반발 대한항공은 “국제선 발권수수료 자유화는 세계적 추세”라면서, 현행 수수료 제도에서는 항공사와 여행사 즉 공급자 중심으로 항공요금이 형성돼 상대적으로 소비자가 외면됐지만, 앞으로는 여행사가 발권수수료에 의존하던 경영방식에서 탈피하여 차별화된 상품 개발을 통해 고객의 요구를 수용하며 경쟁력을 키우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행업계에서는 대기업의 횡포라며 반발하는 분위기이다. 이러한 양측의 주장은 과연 어느만큼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대한항공이 발권수수료를 폐지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행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항공사의 수익원으로 삼기 위한 것이 제일 큰 목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항공의 의도대로, 여행사에 지급될 수수료가 항공사의 수익원이 되어 대한항공의 경영수지를 개선시켜줄 것인가? 단편적으로 판단하면 여행사에 지급될 수수료가 대한항공의 수익이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이러한 논리는 수수료의 향방을 제외한 모든 조건이 동일한 상황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거대한 시스템이어서, 어느 한 행위자가 작은 변화를 촉발하는 경우 전체 시스템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게 된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한 마리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 뉴욕에 허리케인을 몰아치게 할 수도 있다는 거창한 ‘나비효과’ 이론에 빗대지 않아도, 이러한 현상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항공사와 여행사는 상호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어느 한쪽의 행동이나 전략의 변화는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친다. 항공사의 수수료 폐지가 항공 및 여행업계 전체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까? 여행사에 지불하던 수수료가 항공사의 수익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매우 순진한 사고이다. 지금까지 여행사는 항공사로부터 제공받을 수수료를 기대하고 적극적으로 고객을 유치한 경우가 많았다. 즉, 수수료가 없었다면 고객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미미하거나 없었을 것이고, 이 경우 수수료가 항공사의 수익으로 귀속되기는커녕, 항공권 판매가 발생하지 않아 수수료는 물론 항공권 판매 수입조차 발생하지 않게 된다. 이 상황에서는 항공권 수수료 폐지가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 바꿔 말하면, 수수료를 기대한 여행사의 승객 유치 노력이 있었기에 항공사에는 항공권 판매 수입이 발생하고, 여행사 측에는 수수료 수입이 발생한 것이다. 이 경우 항공권 수수료는 항공사에게는 비용이 아닌 투자가 되어 시장이나 고객을 확대하는 기저가 된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수수료 지급을 통해 더 많은 고객을 창출하도록 여행사를 독려하는 것이 항공사나 여행사 모두의 발전을 도모하는 길이 될 것이다. ■수수료 폐지, 항공사 발목 잡을 수도 이러한 관점 외에, 수수료 폐지로 인한 여행업계의 구조적 변화가 항공사에 미치는 영향력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미국 전략경영의 대학자인 마이클 포터는 산업구조분석에서 한 산업 내에 있는 기업들의 수익률을 결정하는 요소로 구매자 집단이나 공급자 집단과의 교섭력을 지적하고 있다. 항공사와 여행사의 관계에서는 항공사들이 공급자 집단을 형성하고 여행사들이 구매자 집단을 형성한다. 여기에서 교섭력의 강도를 결정할 기업의 수를 살펴보면, 항공기업의 수가 절대적으로 소수이므로 항공사는 판매자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사와의 관계에서 높은 교섭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높은 교섭력은 당연히 항공사의 수익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항공권 수수료가 폐지되어 많은 여행사들이 도산하면, 여행사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짐에 따라 현재보다는 여행사들의 교섭력이 증가하게 된다. 또한, 대형 여행사들은 중소 여행사들의 퇴출 및 경쟁력 약화를 계기로, 이들이 차지하고 있던 시장을 잠식하여 더욱 규모를 키워 나갈 것이다. 대형 여행사들의 이와 같은 규모 확대는 항공사와의 대등한 관계설정으로 이어져, 항공사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이럴 경우, 그나마 존립하고 있는 중소 여행사들은 대형 여행사들에게 더욱 더 의존하는 구조로 여행업계가 다시 한 번 재편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몇몇 메이저 여행사들이 여행업계를 선도하며 중소 여행사들을 대리점으로 휘하에 두고 항공사와 거래하는 구조가 된다. 이렇게 되면, 항공사와 여행사의 관계는 양자가 대등해지거나 오히려 대형 여행사로 주도권이 넘어가 항공사의 협상력은 현저히 훼손될 것이다. 협상력의 열위를 갖게 되는 항공사는 당연히 수익률 저하를 경험하며, 이전에 비해 대형 여행사들에 의존하는 상황을 맞게 될 수 있다. 항공권 발권수수료 폐지로 과연 누가 최종적인 승자(winner)가 될 것인가를 좀 더 깊이 성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상의 경제적 측면과 별개로, 대한항공이 되짚어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오늘날의 대한항공이 있기까지는 여행사 직원들의 정성과 노고가 작지 않았다. 전자항공권이 출현하기 몇 년 전까지 이들은 불과 몇만 원의 수수료를 받고 항공사를 대신하여 스케줄을 조회하고 승객의 요구에 부합하는 항공편을 찾아내 여행 관련 정보를 고객에게 주지시키면서 항공권을 발권하였다. 그리고 이를 승객의 집이나 회사까지 땀 흘리며 전달했다. 한 명의 승객을 위해, 하나의 항공권을 판매하기 위해, 여행사 직원들은 이른 아침이나 밤 늦은 시간에도 항공사를 대신하여 고객을 찾아갔었다. ■원점에서 상생의 대응방안 찾아야 수수료 폐지가 자체의 이유와 판단에 의거한 항공사의 전략적 선택이라 하더라도, 대한항공이 지난 시기에 한국 시장에서 차지했던 위상과 항공사를 대신했던 여행사의 노고를 고려하면, 그러한 정책의 전달 방법이 꼭 지금과 같은 방식이어야 했는가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항공권 수수료 폐지의 배경과 실행 계획을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여 여행업계의 살길을 같이 찾아보고 변화된 세계에서 여행사가 어떠한 비즈니스 모델로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는지를 함께 도모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발권수수료를 주요 수익원으로 하던 기존의 경영방식에서 탈피하여 차별화된 상품 개발을 통해 서비스를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던 관계자의 전언대로라면, 항공사 측에서도 여행사의 살아갈 길에 대한 나름의 전망이나 예측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이를 여행업계 관계자들에게 이해시키려는 작은 노력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또한, 발권수수료 폐지를 계기로 여행업계가 자구책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될 작은 기금을 출연하거나 여행업계의 살아갈 길에 대한 아이디어 공모 또는 관련 연구 지원과 같은 소박한 노력이라도 있었으면, 여행업계로부터 지금보다는 따뜻한 시선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여행업계도 항공사가 전략적 판단하에 결정한 정책에 대하여, 부당한 처사라며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그러한 정책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여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바람직한 대응방안을 제시하는 쪽이 현명하다. 기업의 행동은 철저하게 자사의 이익과 효율성 증대를 위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항공사의 수수료 폐지 정책에 대해 여행업계가 자신들의 어려운 점을 토로하며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성숙한 자세가 아닌 듯하다 이상의 여러 상황들을 고려한다면, 항공사나 여행사 모두 자신들의 전략적 판단이나 실행 및 대응 방안 등을 한 번쯤 되돌아볼 여지는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