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117호 박성훈⁄ 2009.05.07 09:15:44
청와대에서 공교육 정상화와 입시과열 문제 해결 등 교육개혁에 강공 드라이브를 실행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4월 28일 14개 주요대학의 총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갖고 입시 정상화와 공교육 회생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특히, 이날 오찬은 외국 정상과 같은 주요 내빈과의 연찬회에 주로 이용하는 상춘재에서 마련했다. 이에 앞서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의 곽승준 위원장은 학원 교습시간을 제한하고 특수목적고 입시제도를 개편하는 구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 입시개혁 속도전 주문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가진 주요 대학 총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대학입시제도가 잘 확립돼야 초·중·고교 교육이 정상화된다”면서 선(先) 대학입시제도 확립, 후(後) 초·중·고교 공교육 정상화 원칙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대입 정상화에 대해 오랜 시간을 갖고 신중히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것은 과거 1960년대, 70년대 지식정보화시대 이전의 속도”라며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개혁의 속도를 높일 수 있고, 또 빠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입시개혁에 있어서 속도전을 주문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교육개혁을 위한 실천방안으로 정부가 역점 추진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의 정착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입학사정관제가 정착되려면 입학사정관이 자신 있게 입시 업무를 전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비리를 저지르지 않는 한 입학사정관의 전문적 결정은 학교가 존중하고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서울대를 예로 들며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입학한 학생의 대학 성적이 더 우수하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라며 “전직 대학총장에게 업무를 맡기는 식으로 입학사정관의 권위를 높이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최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공개했듯 정부는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려고 한다”며 “대학도 이런 자료를 토대로 전권을 갖고 학생을 선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 학생선발에 있어서 대학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곽승준 위원장, 사교육 규제 방침 밝혀 이 대통령의 이 같은 교육개혁 의지는 그의 의중을 파악하고 있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의 앞선 발언과 무관하지 않다. 곽 위원장은 지난 4월 24일, 밤 10시 이후 학원 심야영업을 단속하는 ‘학원 교습시간 규제’ 강행 의지를 밝혔다. 곽 위원장은 이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르면 올 여름방학부터 전국 학원들이 밤 10시 이후에는 학생 교습을 못 하도록 하기 위한 법제도와 행정 틀을 만들겠다”며 “오는 6월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중앙 정부가 학원의 심야영업을 단속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든 뒤, 이를 토대로 경찰력까지 포함한 대대적인 감찰반 단속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교육 음성화’ 대안으로 ‘공교육 정상화’를 꼽으며 “학생들이 학원비의 5분의 1 가격에 강사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는 나아가 “방과 후 학교가 잘 안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외고 입시 때문”이라며 외국어고등학교 입시에도 손을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익위는 곽 위원장의 발언에 앞서 ‘학원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법’을 2010년 6월까지 개정하라고 교육과학기술부에 권고한 바 있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은 “그 동안 교육개혁방안을 놓고 당·정·청 간 물밑에서 적지 않은 논의가 있었다”며 “곽 위원장이 거론한 건 실제 준비 중인 대책의 10분의 1 수준”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야·정부, 날선 비판…대통령은 곽 위원장 손 들어 곽 위원장의 '밤 10시 이후 학원교습 금지' 등 사교육비 절감대책을 두고 여야에서는 한 목소리로 날선 비판을 가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4월 2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자문기구의 장에 불과한 사람이 언론기관에 나와 집행기관을 무시하고 함부로 얘기해 국정운영에 혼선을 초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도 “(곽 위원장이) 최소한 교육 부총리는 더 되고 교육 부통령 정도는 되는 것 같다”면서 “무분별하고 무원칙한 국정운영의 실태”라고 비판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도 곽 위원장에 대한 불만을 표하고 있다.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곽 위원장이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호 교과부 1차관도 “개혁에도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며 곽 위원장의 발언에 부정적 제스처를 보냈다. 교과부의 한 서기관은 한 언론을 통해 “엄연히 교육정책을 관장하는 곳이 여기인데 정책 발표는 곽 위원장이 하고, 교과부는 시녀처럼 튀어나온 정책 보조역할만 하느냐”며 불만을 표출했다. 반면, 학부모들은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교육개혁 방안에 대해 적극 옹호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여야의 날선 비판과 교과부와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곽 위원장은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강행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대통령은 총장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곽 위원장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공교육 정상화에 정부 동참해야 공교육 정상화는 역대 정부에서도 계속 지속돼 온 화두이다. 물론 정부에서는 지식경쟁시대에 적합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학생이 학교 수업에 충실하면 원하는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대학도 적합한 학생을 뽑을 수 있도록 합리적 제도로써 뒷받침해야 한다. 하지만 사교육비는 증가세를 이어 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경기침체 속에서도 전년보다 4.3% 증가한 20조9000억 원에 달했다. 사교육은 대학입시와 직결돼 있다.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이 지난해 83.8%에 이르렀다. 1998년의 64.1%에 견주면 10년 새 20%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사교육비 절감과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학 총장과 가진 간담회는 공교육 회생과 인재 양성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학의 선발 방식은 공교육과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고 환기하며 “대학의 이익보다 미래 한국을 짊어지고 나갈 인재를 뽑고 기른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이 사교육으로 끌어올린 성적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기준으로 학생을 뽑는 게 바람직한 일이다. 이를 위해선 초·중등 교육과정의 정상화와 대학의 학생선발권 확대가 균형을 이루는 고교연계형 대입전형이 요청된다. 곽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정부와 여당에서 보여준 부정적 반응에도 학부모들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 사교육비의 절감을 통해 가계에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 곽 위원장이 제시하는 공교육 강화 방안이 옳다는 것은 학부모들의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미래생활과 관련된 전략을 짜는 미래위원회가 백년대계인 교육문제 구상을 빠뜨릴 수 없을 것이다. 참신한 교육개혁 아이디어가 나오면 교육당국은 반대할 게 아니라 타당성을 면밀히 따져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