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117호 박성훈⁄ 2009.05.07 12:57:34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검찰이 자랑하는 ‘최정예’ 특수부 검사들이 4월 30일 한 달 가까이 끌어왔던 ‘600만 달러’와 관련된 진실게임을 놓고 대검 1120호 특별조사실에서 마주앉아 양보 없는 한판 승부를 벌였다. 노 전 대통령의 취임 직후인 지난 2003년 검찰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공세적 위치에서 ‘검사와의 대화’를 진행한 지 불과 6년 만에 ‘창과 방패’의 역할을 바꾼 채 껄끄러운 자리에서 검사들과 다시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과 검찰 간의 악연은 노 전 대통령이 판사 생활을 접고 1981년에 운동권 학생 20여 명이 사회과학 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좌익사범으로 기소된 소위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검찰과 ‘창과 방패’로 맞서 형성됐다. 그러다가 노 전 대통령은 1987년에 대우조선 노동자가 최루탄에 맞아 숨진 사건에 관여했다가 당시 공안 검찰이 ‘제3자 개입’ 혐의로 노 전 대통령을 구속하기 위해 하룻밤에 세 차례나 판사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영장청구를 시도해 끝내 구속시키는 바람에 검찰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불신을 키운 계기가 돼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검찰과의 관계를 긴장 속으로 몰아 간 요인이 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가동할 때부터 검찰 개혁 논의를 빠르게 진척시켰으며, 특히 취임 후에는 당시 김각영 검찰총장보다 한참 후배인 강금실 변호사를 인사권을 쥔 법무부장관 자리에 앉혀 검찰 조직에 충격파를 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이에 반발하는 평검사들과 대통령 자격으로 마련한 첫 대화 자리에서 당시 일부 젊은 검사들의 도전적인 질문에 노골적으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며 불만을 표출하고 검찰 수뇌부에 대해서도 강한 불신을 드러는 바람에 김각영 검찰총장이 자진사퇴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기소독점권을 지닌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공직부패수사기구 설치를 추진해 검찰의 반발을 산 것은 물론, 경찰의 수사권 독립 문제는 참여정부 내내 검찰을 긴장시키는 등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와 검찰의 대립은 계속됐다. ■변호인단 ‘방패 역할’ 만만치 않아 이런 와중에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측근인 안희정 씨와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으며, 퇴임한 지 불과 1년 만에 검찰이 후원자인 창신섬유 강금원 회장과 자신의 최측근인 민주당 이광재 의원을 구속하고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의 로비 의혹 사건 수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4월 30일 전직 대통령으로는 13년 만에 세 번째로 검찰에 소환되는 굴욕을 당하면서 검찰과의 악연은 벼랑 끝에 서게 되었다. 우선, 노 전 대통령은 4월 30일 오후 1시 20분경 대검찰청 청사에 들어가자마자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검사장)의 방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그로부터 수사에 대한 안내를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이 부장은 서울중앙지검 형사 9부장 시절인 2003년 SK그룹 비자금 사건을 진두지휘해 최태원 회장을 구속하는 등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뚝심을 과시해 왔다는 평을 받고 있는 특별수사의 베테랑 검사로 알려졌다. 이 부장은 이날 조사실 옆 모니터실에서 신문 과정 전반을 지켜보며 수사팀에 신문사항을 지시하고 임채진 검찰총장에게 수시로 상황을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이 특수조사실에서 상대한 ‘선봉장’은 이번 사건의 주임검사인 우병우 중수1과장으로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시절 김윤옥 여사의 사촌 김옥희 씨의 ‘공천사기’ 사건을 맡아 김 씨를 구속했으며, 검찰 수사망을 수차례 빠져나간 전 교직원공제회 이사장 김평우 씨를 구속기소하면서 수사력을 크게 인정받은 실력파 검사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우 과장은 박 회장이 차례로 건넨 100만 달러, 500만 달러와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이 횡령한 12억5000만 원 등 크게 3가지 갈래의 수사 내용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을 상대로 신문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은 비록 좁은 특조실에 앉아 있었지만, 대검 중수부 검사 전체와 상대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이에 맞서 노 전 대통령을 위한 ‘방패’ 역할을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변호사와 민정수석을 지낸 전해철 변호사가 맡았으며, 전반적인 변호는 문 변호사가 하되 500만 달러 의혹은 전 변호사가 맡아 노 전 대통령을 보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사법시험(17회) 동기 모임인 ‘8인회’와 탄핵심판 때 노 전 대통령을 위해 활동한 변호사 12명도 측면 지원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노 전 대통령 측의 `방패도 그 두께가 절대 얇지 않을 거라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 관측이다. 따라서 어떤한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에 비견되는 대검 중수부장과, 전직 청와대 고위 간부 등으로 꾸려져 어떤 창도 막을 수 있는 방패로 비유되는 노 전 대통령 변호인단이 ‘VIP의 무덤’으로 불리우는 1120호에서 맞붙어 국민이 느끼는 모순(矛盾)을 풀어줄지 주목된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4월 30일 피의자 신분으로 대검 중수부에 소환됐기 때문에 검찰의 기소가 사실상 초읽기 수순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이 600만 달러 뇌물수수 등 주요 혐의를 대부분 부인하는 입장에서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의 진실은 치열한 법정공방을 거쳐야 비로소 밝혀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본격적인 재판에서 치열한 공방전 예상 물론 구속영장 청구 여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검찰은 이르면 다음주 중에 노 전 대통령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국고손실 등 혐의로 기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1심 사건을 맡을 서울중앙지법은 노 전 대통령 사건이 접수되면 이를 부패사건 전담 재판부인 형사합의22부(이규진 부장판사) 또는 형사합의23부(홍승면 부장판사)에 배당할 것이 라는 게 법조계 주변의 관측이다.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면 검찰과 노 전 대통령 측은 박연차 회장이 건넨 600만 달러의 주인이 누구인지와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5000만 원을 빼돌려 형성한 비자금의 성격을 놓고 본격적인 다툼을 벌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수차례 공개적으로 밝혔듯이, 박 회장이 2007년 6월 청와대에서 정 전 비서관을 통해 건넨 100만 달러와 작년 2월 조카사위 연철호 씨에게 송금한 ‘호의적 투자금’ 500만 달러의 존재를 모두 퇴임 후에 알게 됐다는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되며, 또한 정 전 비서관이 횡령한 12억5000만 원의 존재도 검찰 수사로 비로소 알게 됐다는 주장을 펼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검찰에서 겨냥하고 있는 ‘포괄적 뇌물’ 혐의가 돈이 오고 갈 당시에 알고 있어야 성립되기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진실 여부를 떠나 자신의 무죄를 위해 유일하게 취할 수 있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죄를 입증해야 하는 검찰 입장에서는 이를 허물어뜨리기 위한 증거를 재판에서 내놓는 것은 물론, 노 전 대통령이 단순히 돈이 오간 사실을 알았다는 수준을 넘어 직·간접적으로 돈을 요구했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는 점도 검찰의 몫이다. 검찰은 지금까지의 수사에서 노 전 대통령이 직접 부탁하여 100만 달러를 보냈다는 박 회장의 진술을 확보했으며, 연 씨에게 투자한 500만 달러 중 상당액이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 씨가 지배하는 회사에 투자된 사실을 밝혀냈지만, 이 진술이 노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황에서 법정에서 신빙성 있는 증거로 받아들여질지 장담하기 어려운 입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검찰에서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부인과 아들의 돈거래를 노 전 대통령이 몰랐을 리가 없다”는 논리 또한 엄격한 증거재판주의라는 벽을 넘어서기에는 다소 무리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정 전 비서관이 횡령한 돈을 “대통령을 위해 조성한 비자금이지만 대통령은 몰랐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사전인지 여부를 적극 부인하는 입장에서 국고횡령의 책임을 노 전 대통령에게 함께 지울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진술을 한방에 뒤엎을 수 있는 새로운 사실을 법정에서 얼마나 더 내놓을 수 있을지가 노 전 대통령의 유무죄를 가를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전반적인 관측이다. 한편,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여야는 이날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조사와 관련해 “역대 대통령 퇴임 후 세 번째 검찰 조사라는 점에서 국가적으로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라며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야 “안타깝고 불행한 일” 지적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자신은 구시대의 막내라고 했다”며 “전직 대통령이 불미스런 일로 법의 심판을 받는 것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침표가 되기를 염원한다”고 밝혔다. 이어 조 대변인은 “검찰에 불려 다니는 전직 대통령을 보는 국민의 속은 까맣게 타 들어간다”며 “그런 사건인 만큼, 검찰은 신중하게 철저한 증거에 의해 수사해야 한다”고 공정한 검찰 조사를 촉구했다. 그리고 조 대변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닌, 변호사가 아닌, 자연인 노무현으로서의 진실을 성실히 밝혀야 한다”며 “노 전 대통령을 신문하는 것은 검찰이 아니라 곧 국민이라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당의 송광호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13대 초선의원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졌던 노 전 대통령이 그와 똑같은 죄목으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다고 하니 슬퍼서 어제 저녁에 잠을 못 이뤘다”며 “앞으로 더이상 우리나라에 전직 대통령이 검찰의 조사를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송 최고위원은 “지난번 쌀직불금 파동에도 전직 대통령 예우를 생각해서라도 그분을 꼭 불러야 할 이유가 있느냐. 증언대에 서야 할 이유가 있느냐”며 “그것 아니라도 얼마든지 밝힐 수 있는데, 해서 소위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하기 위해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현안 브리핑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환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라며 “오늘 소환조사를 끝으로 모든 진실이 반드시 밝혀지길 기대하며, 무엇보다 불구속 수사의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점을 거듭 지적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모든 의혹의 한가운데 서 있는 천신일 회장 등 살아 숨 쉬는 권력 실세들에 대한 수사도 즉각 착수해야 한다”며 “박연차만 보고 대선자금은 수사하지 않겠다는 검찰의 선 긋기는 결국 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더 큰 마음의 금 긋기로 돌아올 것”이라고 검찰 수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던졌다. 김 대변인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공정한 수사만이 모든 의혹을 해소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며 거듭 공정하고 객관적인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같은 당의 송영길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 당 대표실에서 열린 4.29재보선 당선자 환영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환조사를 보며 여러 가지로 송구스럽고 죄송스러운 말씀을 금할 길 없다”며 “저희가 여당 시절에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민심전달이 충분하지 못했음을 반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 최고위원은 “지금 현상도 마찬가지다. 죽은 권력은 난도질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견제와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현실을 국민은 용납지 않을 것”이라며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의 역할을 충실히 해서 4년 후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이 또 비리수사로 검찰에 소환되는 일이 없도록 미연에 방지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민주당이 충실히 할 것”이라고 이명박 정권 실세에 대한 조사에도 나설 것을 검찰에 요구했다. ■외신들, 서울발 기사로 비중있게 다뤄 또한 AP 통신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도 높은 관심을 보이며 서울발 기사로 소식을 전했다. AP 통신은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며 “평소 깨끗한 이미지를 구축해 왔던 노 전 대통령에게 이번 부패 스캔들은 심각한 타격을 줬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AP 통신은 노 전 대통령이 그의 아내와 조카사위 등 가족들이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조카사위가 받은 500만 달러는 투자금이었다고 해명하는 한편, 아내가 받은 100만 달러도 뇌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AP 통신은 인권변호사로 활약하던 노 전 대통령이 2003년에 치러진 대선에서 깨끗하고 개혁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보도했으며, AP 통신은 또 작년 12월에는 노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도 뇌물수수 혐의에 연루돼 구속됐다고 덧붙였다. 블룸버그 통신은 노 전 대통령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뇌물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세 번째 대통령이라고 보도하면서 역대 대통령의 뇌물 스캔들을 짚어보기도 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또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로비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도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천신일 회장의 의혹은 물론이고 노 전 대통령의 소환에 관해서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UPI 통신은 변호사 출신의 노 전 대통령이 16페이지 분량의 서면진술서를 제출하는 등 검찰 조사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 온 만큼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등 핵심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며, 검찰과 노 전 대통령 간에 치열한 법리공방이 오갈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