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이 27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5월 20일 발표한 ‘2009년 세계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이 지난해 31위에서 4계단 뛰어오른 것이다. 이는 2005년에 27위를 기록한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이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국가경쟁력이 오른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60% 업체, 노동관련법 위반 하지만, 노사관계 생산성은 56위로 나타났다. 평가대상 국가가 총 57개국이어서 최하위라고 보면 된다. 즉, 불안한 노사관계가 국가경쟁력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노동법과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비정규직법 등 근로관계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데서도 기인한다. 노동자를 파견하거나 파견 노동자를 사용하는 업체 10곳 가운데 6곳이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법 등 노동 관련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현재 32개로 제한한 파견 허용 업무를 연말까지 더 늘린다는 방침이어서, 파견 노동자의 노동권 보호가 더 취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해 노동자 파견 업체와 파견 노동자 사용 업체 2196곳을 점검한 결과, 59%인 1296곳이 관련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15일 밝혔다. 이런 위반 비율은 2006년 35%, 2007년 34.9% 등에 견줘 두 배 가까이 높아진 수치다. 근로기준법 위반이 2442건으로 가장 많았고,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 위반 740건, 최저임금법 위반 668건으로 나타났다. 2008년 들어 위반 업체가 급증한 것을 두고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친기업적인 정권이 보낸 신호가 사용자에게 전달된 것 아니냐”며 “정부가 파견 대상 업무를 확대한다고 하면서도 만연한 불법과 근로조건 침해에는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비정규직 문제가 부각되면서 점검을 강화해 위반 수치가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파견 노동이 합법화된 1998년 이후 파견 노동자는 4만1545명에서 8만1907명으로 갑절 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파견기간 3달 미만인 ‘단기파견’이 2004년 1만2177명에서 2008년 2만9520명으로 크게 늘어 고용 안정성은 더욱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 옭아맨 비정규직법 노동환경이 최하위권의 평가를 받게 된 요인에는 비합리적인 고용체계도 일조하고 있다. 지난 2007년 7월 노·사·정 합작품으로 탄생된 비정규직 보호법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고용악법으로 손꼽힌다. 기업이 기간제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하는 강제규정을 골자로 한 비정규직 보호법이 오히려 기업들의 고용을 막고, 비정규직의 고용도 불안케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2007년 7월 이후 채용된 비정규직이 100만 명에 가까울 것으로 추산하고, 지금의 경기 상황을 감안하면 이들이 순차적으로 실업 위기에 내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노동계 일부에서는 정부가 위기를 과장하고 있다고 반발하지만, 비정규직 상당수가 법 개정에 찬성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8월 기준으로 노동부가 집계한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544만여 명에 달한다. 특히 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여성 비중은 37.4%에 그치는 반면, 비정규직 근로자 중 50.4%가 여성이다. 여성이 먼저 해고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는 얘기다. 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간 자동차업계도 비정규직을 1차 해고 대상으로 삼는 분위기다. ■7월 비정규직 대거 해고 위기 오는 7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2년 연장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을 경우, 비정규직 채용 만기인 노동자들이 인력 구조조정 등에 의해 대량 해고될 위기에 처해 있다.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해고된 완성차업체 비정규직 근로자는 839명이고, 현대차 374명, GM대우 110명, 쌍용차 350명 등이다. GM대우는 무급휴직 중이던 비정규직 근로자 900명에 대해 5월 14일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쌍용자동차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합해 2400여 명을 줄이기로 했다. 실제로 비정규직 파견 업체는 오는 7월에 근무한 지 2년차가 되는 인력을 맞교환하는 방법으로 해고를 피하기도 한다고 전한다. 비정규직 관련법은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됐어야 했다. 근로자를 해고하기 전에 사전 통보를 해야 하는 6월에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반면, 현대자동차의 노조 전임자는 일반 근로자가 근로수당과 잔업수당만 받는 것과 달리, 따로 매달 75시간의 휴일 특근수당까지 받는다. 또 출퇴근 면제는 물론, 차량 및 유류비 지원까지 받는 특혜를 누린다. ■대기업 비정규직 고용불안 심각 일부 대기업은 근무한 지 2년 된 비정규직들은 내보내고 새 인력을 채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곳이 많다. 상당수 대기업은 비정규직 업무를 도급이나 용역근로 형태로 운용하기도 한다. 현재 비서와 운전기사 등 912명을 비정규직으로 사용 중인 KT는 이미 상반기에 계약 만료된 226명과 재계약하지 않았다. 1650여 명을 비정규직 형태로 재고용하고 있는 현대중공업도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삼성·LG·SK그룹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사례는 거의 드문 상황이다. 전경련이 기업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가운데 7월에 비정규직 사용기한이 도래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기업은 19.4%에 불과했다. 반면, 해고 후 대체가능 인력으로 재고용하거나, 비정규직을 외주나 사내하청으로 전환하거나, 비정규직 고용 자체를 축소하겠다는 등의 응답이 38.3%에 달했다. 은행권은 상대적으로 비정규직에게 안전하다. 각 시중은행들은 텔러, 임원 비서 등 비정규직을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대량 해고는 자제하는 분위기이다. 이는 은행들이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을 상당 부분 정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은행들은 자체적으로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왔고, 무기계약직은 정규직보다 보수는 적지만 고용 안정성이 보장된다. ■특수고용자 근로자 인정 여부도 논란 정부와 노동계는 특수고용자를 근로자로 인정할지를 두고 시각이 엇갈린다. 레미콘 운전자나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등은 근로자로 인정받으면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의 보호를 받아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노조 활동을 할 수 없다. 레미콘이나 덤프트럭 기사 등이 민주노총 산하 전국운수산업노조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것을 두고도 양측은 갈등을 겪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해 말 운수노조에 “레미콘·덤프트럭 기사를 조합원에서 제외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조합원 자격이 없는 사람이 가입해 있어 조합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화물연대 역시 민주노총 산하의 운수노조에 가입해 있지만, 정부는 노조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학습지 교사나 캐디는 근로자로 볼 부분이 있지만, 나머지 직종은 근로자로 볼 여지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지위를 개선할 필요는 있지만 근로자로 볼 수는 없다”며 “노조가 아닌 업종별 단체를 결성해 정부나 사용자 측과 협상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수고용직의 근로자 인정 여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논란이 계속돼 왔다. 국회에 관련 법이 발의돼 있다. 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특별법 형태로 특수고용자 중 일부를 근로자로 인정하되 노동3권은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을 낸 상태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은 5월 초 특수고용자 전체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 노동·기업 관련법 개선에 앞장서야 노동 유연성을 저해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고용악법을 개선하기 위한 법안들이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고용악법으로 통하는 비정규직법에 대한 부작용을 완화시키기 위한 2년 연장안도 지난 4월 임시국회 처리가 무산됨에 따라 오늘 6월 임시국회까지 기다려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마저도 야권과 노동계의 반발로 처리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2008년 세계은행의 기업환경 보고서에 따르면, “고용 관련 규제는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고 실업기간을 연장하여 회사 규모와 R&D 투자를 감소시켜 결과적으로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손해”라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특히 “여성이 절반을 차지하는 비정규직법과 같은 규제는 오히려 여성을 더 좋지 않은 일자리로 내몰아 일자리를 빼앗게 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제 개선방안도 국회에서 심의조차 거치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미국·캐나다·프랑스 아일랜드 등 선진국들이 숙식비·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기본급과 수당에 국한되어 있다. 특히 외국인 근로자를 많이 쓰는 중소기업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내국인에 비해 훨씬 못 미친다는 점을 최저임금 적용에 반영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대한상의 유일호 노사인력팀 전문위원은 “최저임금이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늘리고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외국인 근로자의 생산성을 반영한 최저임금 적용을 검토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여당에선 최저임금제 개선을 위한 개정안을 만들었으나 야당의 반대로 심의도 받지 못한 상태이다. 정부도 노동부 산하에 각계 전문가 27명으로 구성된 2010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해 놨지만,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발만 구르고 있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없애는 일에 정부가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느냐가 관건이다. 이번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가 노동·기업 관련법 등이 가장 큰 취약분야로 나타난 만큼 이를 개선하는 일에 정부는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