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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탐구]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이건희 리더십

IMF 프랑크부르트 선언 이후 삼성의 경영혁신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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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19호 김대희⁄ 2009.05.26 09:41:27

5월 29일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과 이건희 회장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다시금 재론될 기세이다. 이와 관련, 경제개혁연대·경제정의실천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이번 재판에 대하여 “한국의 건전한 경제정의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경련, 국공립 경제연구소, 경제학계 등에서는 “이번 재판을 계기로 경영권 승계 등에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이념 편향적 주장들이 나온 나머지 삼성그룹과 이건희 회장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잃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재계, 이건희 시대 “새마을운동·국가경제개발 시대에 재계의 리더 및 경제 지도자의 롤 모델이 이병철·정주영이라면, 세계화 속에서 경제 선진국 시대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 재계 지도자의 역할 모델은 이건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 모 대학 경제학과 A 교수의 평가다. 그는 지난 2006년 김용철 변호사 사건, 에버랜드 전환사채 수사, 삼성공화국론 등으로 삼성그룹과 이건희 회장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조성됐을 당시에도 여전히 이건희 회장은 존경하는 기업인 1위를, 삼성그룹은 꼭 입사하고 싶은 기업 1위를 놓치지 않았던 점을 강조했다. A 씨를 포함하여 학계·재계·정계 등의 주요 인사들은 삼성그룹과 이건희 회장의 경영능력 및 국가경제에 미친 공헌도와 리더십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 삼성재벌론, 경영권 세습론을 내세우며 삼성그룹과 사실상 대립각을 세운 바 있는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교수도 한 인터뷰 자리에서 “단지 경영권 승계 및 출자구조 확립을 위한 업무처리 과정에서 전문가적 의견을 제기하는 것일 뿐, 이건희 회장의 안목과 통찰력 그리고 한국경제에 끼친 공헌에 대해 흠집을 내자는 뜻은 아니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A 교수는 “29일의 재판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과 성공사례로 교훈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및 이건희 전 회장과 관련된 에버랜드 전환사채, 김용철 변호사 파동 등은 사안별·이슈별로 중요한 문제이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지난 1997년에 시작된 IMF 외환위기와 2006년 미국의 부동산시장 붕괴로부터 시작된 현재의 금융위기를 다른 그룹사보다 쉽게 헤쳐나온 통찰력 및 삼성그룹을 이끄는 리더십이라는 주장이다. ■IMF 외환위기와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 시절부터 현대그룹과 함께 한국경제의 발전을 이끌던 삼성그룹이 2대 이건희 회장 시대 20여 년 동안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업들 중 한 곳에서 세계적 명품기업으로 뛰어오른 발판을 마련해준 계기는 1997년에 시작된 IMF 외환위기와 2006년 중순 경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의 재벌 기업들은 빅딜, 계열사 매각, 공적자금 수혜 등 많은 부침을 겪어왔다. 이 같은 DJ의 재벌 구조조정 칼날에서 비껴간 곳은 롯데그룹과 삼성그룹. 롯데그룹의 경우 일본롯데의 자금력과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의 처가 측 인맥 등 일본의 저력에 의지한 바 클 뿐 아니라, 롯데는 아직도 창업주에 의해 경영된다는 점에서, IMF 금융위기를 무사히 넘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경영 능력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증명한 것이다. 구조조정 당시 재계에는 재벌 그룹, 오너 일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현금 흐름이 경색돼 있었다. 그런데 당시 재계에는 그룹 내 현금성 자산 등 유동성이 충분히 남아 있는 곳은 삼성그룹이 유일하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정도이다. 삼성그룹이 국가 비상사태인 IMF 외환위기 기간을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미리 준비된 시스템 때문이었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1990년대 중반부터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삼성경제연구소를 비롯하여 국가경제 및 삼성그룹의 재무구조 등에 대해 경보음을 울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보를 받은 후 삼성그룹은 이익위주의 경영, 문어발식 확장에 따른 부작용 최소화, 그룹 내 현금 유동성 확보 등 외형보다 내실 위주의 경영을 추진한 덕분에 IMF 체제 당시 다른 재벌 그룹들처럼 눈물을 머금은 우량 계열사 및 유휴자산 매각 절차를 밟지 않고서도 사업 및 생존에 필요한 실탄(현금성 자산)은 이미 충분할 정도로 쌓아 놓았다. 이른바 ‘유비무한(有備無恨)’ 정책이었다. 사실 이 같은 삼성그룹의 조기경보 시스템은 이번 경기불황에서도 빛을 발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월가 파생상품의 붕괴로 이어지면서 결국 리먼브라더스 파산과 AIG 등 글로벌 금융 그룹들의 동반부실로 이어졌었다. 그리고 월가 금융상품에 투자한 국내 기업들 역시 막대한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특히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우리·국민·외환은행 등 국내 금융기관에 직접적인 타격이 됐다. 그런데 삼성증권은 리먼브라더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놓고도 리먼 사태로 인한 손해를 단 한 푼도 보지 않은 유일한 증권사로 기록되었다. 이는 리먼브라더스 파산 수 개월 전에 이미 모든 투자금을 청산했기 때문. 당시 언론과 금융권 관계자들은 “삼성증권이 미쳤다”는 내용의 기사와 전망을 내놨었다. 이는 삼성증권의 VIP 고객들도 같은 입장이어서 이들을 설득하는데 진땀을 흘렸다는 후문도 있었다. 하지만 불과 수 개월 후에 리먼브라더스 파산이라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삼성증권의 미친 짓은 졸지에 선견지명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국내 실물경제 위축의 출발점인 주택미분양 사태로 인한 건설업계의 동반부실 대열에서도 삼성물산은 빠져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한 관계자는 “2005년 경 삼성경제연구소로부터 주택 과잉공급과 미분양 사태를 예견하는 주택시장에 대한 내부 보고서가 나와 격론이 오갔었다”면서 “당시 이 보고서가 신빙성이 있다는 결론과 함께 향후 재개발 등 신규 아파트 공사 수주를 자제하고 오피스 빌딩, 토목 등으로 사업영역을 바꾸기로 결론을 내린 바 있다”고 회상했다. 이 결정에 따라 삼성물산은 신도시·재개발·뉴타운 등에 대한 입찰에서 가급적 손을 뺐을 뿐 아니라, 미분양 아파트의 조기 분양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 같은 결론 덕분에 결국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주택시장 미분양으로 인한 건설·금융업계의 동반부실화에서도 삼성물산은 예외기업으로 남을 수 있게 됐다. 이와 관련, 재계의 한 관계자는 “IMF와 이번 금융위기에서 삼성그룹이 위기를 여유롭게 넘길 수 있었던데는 삼성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하는 조기경보 시스템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며 “삼성의 이 같은 시스템은 업계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재계, 이건희 경영 스타일 따라하기 열풍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재계에 끼친 가장 큰 영향력은 그의 경영능력과 업적이 아닌 경영방침과 경영 스타일이다. 1998년의 IMF와 2008년의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로 촉발된 금융위기에서 삼성의 성공적 대응과, 이병철 회장 시절의 국내 선두 그룹에서 독보적인 1위 기업군으로 탈바꿈시킨 이건희 전 회장의 경영 실적은 한동안 그의 주요 어록과 경영 스타일 따라 하기 열풍을 재계에 일으키며 한국기업 경영자들의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미쳐 왔다. 이건희 전 회장의 경영방침은 위기경영론, 질 위주의 일등경영론, 인재경영론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중 재계 경영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위기경영론. IMF 이전까지만 해도 오너가 공개석상에서 위기론이나 망할 수 있다는 등의 말을 입에 담은 경우는 새내기 오너 이건희 회장이 유일했다. 대부분의 오너들과 경영진은 희망찬 미래와 더 높은 비전을 제시할 뿐, 망할 수도 있다는 전제에 대해서는 유동성 위기 등 실질적으로 기업경영에 이상징후가 보이지 않는 이상에는 입에 담지 않았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와 이번 금융위기에서 삼성의 선제적 대응 등을 목도한 재계는 오너들의 입에서 심심치 않게 위기경영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해 삼성그룹 회장의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사임할 때까지 이건희 회장은 사장단 회의, 언론 인터뷰, 강연 등의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위기론을 언급할 때가 많았다. 또 이건희 회장의 일등경영론과 일등인재론도 인화를 기업문화로 내세운 LG그룹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재계에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아버지 고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그룹의 대권을 이어받은 2세 경영인 이건희 회장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라”는 말로 대중에게 알려진 이 선언은 이건희 회장의 질경영, 일등 상품론에 대한 경영방침을 대외에 확고히 천명한 것이다. 또 젊은 권력자로서 은인자중하는 모습을 보여 오며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던 기존의 행보에서 벗어나, 그룹의 경영 전반에 강하게 나서는 시발이 됐다. 이와 관련, 김성홍 삼성생명 부장은 현직 기자시절 집필한 <이건희 개혁 10년>이라는 저서에서 “이날 프랑크푸르트에서 보여준 파격적인 행보는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의 발로였다”며 “초일류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당시 재계의 상황은 김영삼 정부 시절 관치금융 체제 아래에서 어느 정도의 정경유착과 국가의 국내 기업 보호정책에 안주하던 시절이었다. 인텔·노키아·제너럴모터스·벤츠·제너럴일렉트릭·씨티은행 등 다국적기업들과 국내외 시장에서 생존을 놓고 경쟁하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삼성전자의 컴퓨터 화형식 등 갖가지 파격적인 행보와 충격요법 등으로 삼성그룹은 글로벌 체제로 완전히 체질을 바꾸게 됐다. 삼성그룹은 IMF에 의해 한국경제가 강제 개방된 이후 이를 그룹 성장의 기회로 삼게 된다. 특히 애니콜 화형식이라고 불리는 사건은 이건희 회장의 의지를 대외에 확실히 표명하는 계기가 됐다. 1995년 3월 9일 오전 10시께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 2,000여 명의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애니콜 화형식이 치러졌다. 이날 직원들은 ‘품질확보’라고 쓰인 머리띠를 두른 채 서 있고, 그 아래 철제 의자에는 이건희 회장과 임원들이 역시 띠를 두르고 앉아 있었다. 이들은 자사의 키폰·팩시밀리·휴대폰 등 15만 대 500억 원 상당의 제품을 쌓아 놓은 채 해머로 부수고 석유를 뿌린 후 불을 질러버렸다. 이 같은 이건희 회장의 삼성그룹 개조작업은 현재 신경영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경영사에 족적을 남겼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은 삼성그룹이 한국 내 기업에서 세계 일류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했을 뿐 아니라,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지난 1998년 IMF 사태를 여유있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마련해줬다. 특히 IMF 당시 재벌 구조조정은 IMF의 요구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이 권력의 힘으로 강제로 진행했었다. 이를 위해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가 재벌 오너들을 조용히 만나서 은근히 압박을 가하기도 하고, DJ가 직접 나서서 재벌 오너들의 도장을 받아내기도 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 속에 결국 재계의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 같은 강제적 구조조정에서 삼성그룹은 예외였었다. 이는 삼성그룹이 외환위기 이전 그리고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나서기 전부터 스스로 사업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 임창렬 경제부총리에 의해 IMF행이 선언된 지 1개월 후, 이건희 회장은 미국 골드먼삭스의 존 코자인 회장을 승지원으로 불러들여 삼성그룹의 구조조정 플랜을 부탁했었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전자와 핵심 전자 계열사, 삼성생명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의 처분을 고려한 플랜을 짜 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는 계열사 매각에 대한 판단과 매각시 적절한 가격 선정 및 매수자 지정까지 모든 것에 대한 백지위임이 포함된 내용이었다. 이 같은 선제적이고도 과감한 행보로 인해 삼성은 지난 2000년 이후 사상 최대의 흑자를 거두며 본격적인 성공신화를 쓰게 된다. 2000년 한 해 삼성그룹은 이병철 전 회장의 창업 이후 60년 간 거둔 순이익의 2배가 넘는 15조 원의 순익을 거둬들였다. ■이건희 리더십은 계승발전 리더십 이병철 회장이 보여준 리더십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 선진 경제대국으로 도약하기까지 보여준 창업의 리더십이라면, 아들 이건희 전 회장의 리더십은 아버지와 이전 세대가 쌓아 놓은 부의 토대 위에서 이를 계승 발전하는 리더십이다.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난 한강의 기적은 한국경제의 발전뿐 아니라 냉전체제 붕괴의 시발점으로 작용하면서 세계사에 엄청난 족적을 남겼다.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똑똑히 공개된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은 공산주의에 대한 동독인들의 회의를 불러일으켰고, 고르바초프에게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추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세계사에 엄청난 족적을 남긴 한강의 기적은 우리 민족의 잠재력이 하나로 표출된 눈부신 성과이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 말기에 다가온 외환위기는 아버지 세대가 피땀 흘려 이뤄놓은 한강의 기적을 무위로 돌릴 위기상황이었다. 이때 이건희 회장이 보여준 신경영론은 아버지와 이전 세대가 이뤄놓은 토대를 지키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재계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리더십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삼성그룹 본관. 김성호 기자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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