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감행한 바로 다음날인 5월 26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전면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외교통상부 문태영 대변인은 이날 서울 도렴동 정부청사에서 “정부는 대량파괴무기 및 미사일 확산이 세계 평화와 안보에 미치는 심각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2009년 5월 26일자로 PSI 원칙을 승인하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문 대변인은 “단 남북한간 합의된 남북해운합의서는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주도로 2003년에 시작된 PSI는 국가 간 협력을 통해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나 관련 물자를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을 검색하거나 차단할 수 있도록 하자는 구상으로, 사실상 이란·시리아·북한이 주요 견제 대상이다.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북한의 반발을 우려해 PSI 8개항 중 역·내외 훈련 참관 파견, 브리핑 청취 등 5개항에만 참여해 왔다. 하지만, 정식 참여와 역내 차단 훈련시 물적 지원, 역외 차단 훈련시 물적 지원 참여 등 3개항에 대해서는 유보해 왔다. 그러다 정부가 8개항 모두에 참여할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향후 남북관계에는 상당한 파장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PSI 활동이 이뤄질 때뿐만 아니라 PSI 전면참여 자체만으로도 북한의 정서적 반발을 야기, 남북관계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靑 “더는 늦출 명분도 이유도 없다” PSI에 전면참여하는데 대해 유보적 입장을 보였던 청와대도 이번에는 단호한 모습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5월 26일 오전 국무회의를 열기에 앞서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PSI 참여를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갖고 PSI 참여 결정과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오바마 미 대통령은 “PSI 참여 결정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환영한다”면서 “(이 대통령이) 국제적인 지도력을 보여준데 대해 높이 평가한다”고 화답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정부의 발표 이후 실시한 브리핑에서 “국제사회가 지켜보는데 더는 늦출 명분도 이유도 없다”며 PSI에 전면참여키로 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 대변인은 “PSI의 기본정신이 핵무기·생화학무기 등 WMD(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중대한 때가 또 언제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전 세계 94개국이 가입돼 있는데 냉정하게 말하면 오히려 안 하는 게 비정상적”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5월 25일 함북 길주군에서 2차 핵실험을 실시하고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을 3발 발사했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지하 핵실험을 “성과적으로 진행했다”며 “이번 핵실험은 폭발력과 조종기술에 있어서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안전하게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정보당국은 이번에 북한이 실시한 핵실험의 위력이 1차 때보다 커진 것으로 분석했다. 이날 발생한 리히터 규모 4.5의 지진파가 지난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때의 리히터 규모 3.6에 비해 강하여 핵무기 성능이 향상된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는 곧 남북 간 안보균형이 무너진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종전보다 더 큰 규모의 핵실험을 했고 미사일도 발사한 만큼 더 시간을 늦추거나 할 명분이나 논거가 없다”는 이 대변인의 설명은 이 같은 위협을 반증한다. ■PSI 참여 찬반 격론화 이번 전면 PSI 참여는 기존 국내·국제법에 근거한 국가 간 협력체이기 때문에 우리가 전면참여한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남북해운합의서와 국제법에 따라 공해에 운항 중인 북한 선박이 무기나 무기 부품을 수송하는 것으로 의심될 경우 해당 선박에 승선·검색하여 위반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돼 있는 현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즉, PSI 전면참여로 북한 선박을 차단하는 등의 조치를 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PSI 전면참여 반대론자들은 법적으로 정전 상태인 한반도 주변에서 PSI 관련 활동이 충돌로 연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일부 반대론자들은 PSI에 전면참여할 경우 우리 정부가 문제 없다고 보는 북한 선박에 대해서도 미국 등 유관국의 협조요청이 있을 경우 정선·검색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할 책임이 생긴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PSI 전면참여로 북한의 의심 선박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유연하게 취할 재량권이 위축될 경우 한반도 주변 수역에서 북한 배를 강제로 세우고 검색 등의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남북 간에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인 셈이다. PSI에 전면참여하더라도 우리 당국의 재량에 따라 미국에 협조하지 않는 방법이 있겠지만, 이럴 경우 PSI 전면참여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현대아산 직원 등 재북인사 안전, 서해 긴장고조 등 위협 산재 정부는 지난 4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PSI 전면참여를 발표하기로 했지만, 개성공단에 장기억류 중인 현대아산 직원 유모 씨 문제 등을 고려해 전면참여를 미뤄 왔다. 하지만 이번 PSI 전면참여로 유 모 씨의 신변안전 보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상에서 남북 간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유 씨 문제는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처리돼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해 왔지만, 북한은 4월 21일 개성 접촉과 5월 15일을 전후로 한 실무접촉에서 유 씨 문제를 회담의 의제로 삼는 것도 거부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유 씨를 볼모로 억류사태를 장기적으로 끌고 가면서 일종의 대남압박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북한이 개성공단 기존계약 무효선언에 이어 더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북한은 남북 민간교류단체를 통해 PSI 전면참여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강력히 경고한 바 있다고 한다. 현재 북한에는 924명의 남측 인원이 체류 중인 현실에서, 최악의 상황에는 공단 폐쇄 및 인원 철수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서해북방한계선(NLL) 등에서 국지적 도발 등으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북한은 지난 2월 NLL 폐기 문제를 거론한 바 있다. 당시 북한은 서해 북방한계선의 일방적인 폐기를 천명하면서 연평도 등 서해 5도 주변 및 출입 통로를 제외한 전 구역을 북한의 수역으로 간주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따라서 미사일 발사뿐 아니라 해상충돌의 가능성도 우려되고 있다. PSI 훈련이 진행될 경우 북한이 3월 `키 리졸브 한미합동군사훈련 때 육로통행 차단과 민항기 안전 위협으로 대응한 만큼 강경대응이 명약관화하다. 특히 지난 3월 3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에서 PSI에 참여를 “선전포고”로 간주해 “즉시 단호한 대응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