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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바보 노무현’이 정치권에 남긴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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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20호 심원섭⁄ 2009.06.02 11:29:41

노무현 전 대통령이 5월 23일 남긴 유서를 통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며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일 밖에 없다”는 심정을 남기고 서거함에 따라 향후 정국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 내용을 종합해보면, 태광실업 박연차 전 회장의 로비 연루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노 전 대통령에게 큰 심적 충격과 고통을 준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전직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던 도중 자살했다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향후 정국에 후폭풍이 불가피하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물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임시에 조성한 비자금 등과 관련하여 퇴임 후 구속된 사례가 있는 등 우리 정치사에서 전직 대통령의 ‘수난’이 이례적인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의 칼날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태는 초유의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정국의 향방은 민심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미리 단정 짓기가 쉽지 않다는 측면에서, 정치권에서는 향후의 정국 파장에 대해 한결같이 말을 아끼며 섣부른 예단을 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부 여당은 어떤 식으로든 향후 국정운영에 큰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청와대는 향후 국정운영에 미칠 파장과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수습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며, 한나라당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사태를 예의주시하면서 향후 대책을 숙의 중이지만 침통한 표정이 역력했다. ■향후 정국 향배 예측 불가능 대혼란 더구나 정권교체 후에 검찰 수사를 받던 전직 대통령의 서거라는 측면에서 일단은 여권에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면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국면에서는 친노(친 노무현) 세력 등 야권에 도덕적 부담이 될 소지가 있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야권이 공세로 전환하면서 정국 반전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의 ‘박연차 로비’ 연루 사건은 의혹만 부풀린 채 사건의 실체를 풀 길이 없게 됐다는 점도 정부 여당으로서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사건의 당사자로 지목하고 몰아세웠던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죽음을 택함에 따라 의혹을 밝혀줄 당사자가 사라졌고, 김경한 법무부 장관이 수사 종결을 선언함에 따라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가능성은 그만큼 희박해졌으므로, 따라서 정부 여당으로서는 야당의 반발은 물론 여론의 역풍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게다가 야당이 ‘표적사정’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며 여권 핵심 인사에 대한 수사를 요구할 가능성도 적지 않으며, 특히 특검이나 국정조사 요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럴 경우 향후 정국은 대대적인 ‘사정정국’으로 돌변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향후 정국의 향배는 예측이 불가할 정도의 대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당장 6월 임시국회도 문제다. 정부 여당이 공언했던 대로 이번 임시국회에서 언론 관계법의 처리를 강행할 경우 지난 연말 연초의 ‘입법전쟁’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여론의 역풍이 불어 닥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여야는 일단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야는 사건의 책임 소재를 따지기보다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애도를 표하는데 중점을 두면서 그 이상의 공식 반응은 자제했다. 당장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책임 논란에 불을 지필 경우 여야 모두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한 판단으로 풀이되고 있다.

특히 야권이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총공세에 나설 경우 전직 대통령 서거라는 ‘국가적 불행’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역풍에 부딪힐 수 있다는 지적 역시 만만치 않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대통령을 지낸 국가적 지도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데 대해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파장의 향방을 가름할 관건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여권은 국가적 불상사에 대해서는 ‘애도’와 ‘비통’ 모드를 계속 유지하면서 민심을 다독이되, 향후 야권이 정략적으로 활용하려 할 경우에는 분리 대처하면서 정국 돌파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세균 “책임 질 일 밝혀야 한다” 공언 이 같은 정국의 불투명성 때문에 여야 모두 당장은 국가적 불행에 대한 애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끝난 이후 내주부터는 여론을 얻어 정국 주도권을 쥐려는 여야 간의 치열한 대결이 펼쳐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노 전 대통령의 ‘상주’임을 자임하고 있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27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하여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이 억울하게 돌아가셨는데 왜 (민주당이) 말 한마디 없느냐’는 국민들의 질책이 있었다”며 “제가 보기에도 분명 책임 져야 할 사람들이 있는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잘못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정 대표는 문책 대상과 관련해서는 “그것을 특정하고 싶지는 않다”면서 “아마도 결국은 책임 있는 분들이 어떻게 책임 질 때 국민이 납득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 대표는 “적절한 시점에 좀 더 구체적·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민주당 입장을 다시 말할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고 덧붙여 향후 정국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정 대표는 5월 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 즉시 봉하마을로 내려가 밤을 새우며 노 전 대통령 아들 건호 씨와 함께 직접 조문객을 맞았고, 25일부터 29일 영결식 전까지는 서울역 광장에 차려진 공식 분향소에 계속 머물며 상주 역할을 하면서도 장례기간 중에는 정치적 발언을 삼가고 애도에 집중해줄 것을 연일 당부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자제령에도 불구하고, 송영길 최고위원은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죽음을 막지 못한 자책감이 든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공개사과가 필요하다. 도의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당 일각에서는 격한 반응도 터져 나오고 있어, 장례절차가 끝나면 강경 분위기로 본격 전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정 대표는 “평소 노 전 대통령이 강조한 정치개혁, 지역주의 타파, 국민통합 등 유지를 잘 받들어 계승 발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해, 민주당은 애증관계를 반복해 온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작업에도 본격 착수할 분위기가 역력했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가급적 정제된 표현을 사용하자는데 의견을 모으면서 장례 후 당내 태스크포스(TF)를 구성,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해 분야별로 체계적인 재조명 작업에 들어가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한나라당 역풍 경계 ‘언행경계령’ 내려 그러나 한나라당은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한 것과 관련해, 정 대표가 문책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대응할 경우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정치적 이슈로 이어져 정쟁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음을 감안해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 대표가 책임론을 추가 거론할 가능성을 열어놓은데다, 29일 영결식 이후 지금까지의 추모 분위기가 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 내 일각에선 긴장감도 감지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최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국민장을 정치적으로 잘못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어 이를 변질시키고 소요사태가 일어나게 될까 봐 정말 걱정”이라고 말해 논란이 되기는 했으나, 이런 당내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더구나 안 원내대표의 발언이 논란이 되면서 역풍을 불러오자, 절제되지 않은 말 한마디가 국민적 울분을 불러와 자칫 현 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언행경계령’을 내리기도 했다. 실제로 5월 26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주 대비 3.5%p 하락한 23.2%로 내려앉아 지난 1월 9일(22.5%)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는 8.2%p 상승한 69.4%를 기록했다. 그리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2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27.4%로 지난 4월 32.7%보다 5.3%p 낮아졌고, 부정 평가는 60.6%로 지난번 조사 59.8%보다 별 차이가 없었다. 따라서 ‘국민장 소요사태’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안 원내대표는 “법원이 구속 중인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을 일시 석방해 조문하게 해준 것은 잘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아무쪼록 노 전 대통령이 편하게 가실 수 있도록 한나라당이 모든 지원을 다하겠다”고 적극적인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그리고 한나라당 한 핵심 고위 당직자도 “노 전 대통령 영결식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며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남긴 화합의 뜻이 훼손되지 않도록 정부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밝혀, 민심에 얼마나 먹혀들지 귀추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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