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주당의 ‘2009 의원 워크샵’에서 강사로 나온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의미와 민주당의 과제를 언급하면서 “대한문 앞에 길게 늘어선 추모객의 줄을 보고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며 “이른바 진보진영보다 또 정치권보다 국민들이 한 100배쯤은 더 상처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홍 교수는 “노 전 대통령과 같은 사람들을 보고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을 이용해 표현한다”며 “노 전 대통령은 기득권에 포섭되지 않고 비주류 중에서도 철저히 비주류로 기득권에 맞섰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홍 교수는 민주당에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감히 용의 시대가 끝났다고 본다”며 “이제는 용이 추락한 부엉이바위에서 수천, 수만의 부엉이(국민)가 나왔는데, 이들과 민주당이 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홍 교수의 이 강연은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슬퍼하는 500만 조문객들의 마음을 헤아려 국민과 소통하고 올바른 정치를 펴 나가라는 뜻으로 풀이되었다. 실제로 6월 국회 전략 수립을 위해 열린 이날 국회의원 워크숍에서는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자성론과 함께 ‘노무현 정신’ 계승을 다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참석 의원들은 모두 복장을 흰 셔츠에 검은 양복으로 통일해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도록 했으며,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실이 발간한 ‘노무현과 함께 만든 대한민국’이란 책을 배포했다. 워크숍은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담은 5분 분량의 영상으로 시작됐다. 개회 인사말에 나선 정세균 대표는 “우리는 표적사정·편파수사를 하지 말라고 외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했으며, 이강래 원내대표도 “노 전 대통령은 시대정신의 표상이었는데 살아 생전 참된 모습을 깨닫지 못했으나 인권과 민주주의 등 ‘노무현 정신’으로 표현되는 가치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노 전 대통령 추모집 발간 예정 이날 ‘노무현’을 외치며 워크숍을 끝낸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 추모사업의 일환으로 다음 주초까지 노 전 대통령의 약력과 유언, 어록, 국민장 기간 동안 전국 분향소에서 조문객들이 남긴 추모글 등을 담은 50여 쪽 분량으로 추모집을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당 관계자는 이날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추모집을 발간키로 했다”며 “밤샘 작업을 통해 다음주 초까지 발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당의 다른 핵심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의 추모사업을 위해 당내에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추모 민의를 받들기 위해 당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영결식 이후에도 여의도 당사 1층에 무인 분향소를 꾸려놨으며, 49재인 다음달 10일에는 정세균 대표 등 당 지도부 전원이 봉하마을에 내려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뒤늦게 자성론에 휩싸이면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고 하지만, 열린우리당 해체 이후 이른바 ‘노무현의 사람들’로 불리우는 친노 그룹과의 관계가 원만했던 것은 아니라는 게 당 안팎의 시각이다. 지난 18대 총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2007년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참여정부’ 실정으로 판단한 민주당 공천 배제의 기준에 친노 그룹 386 인사들이 줄줄이 걸려 공천을 받지 못하고 퇴락의 길을 걸어 왔다. 그러나 당에 남은 일부 친노 그룹은 지난해 대표경선에서 정세균 대표 체제를 지원해 현 주류 그룹의 한 축을 담당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이와 함께 당 안팎의 친노 그룹은 내년도 지방선거와 총선을 기점으로 재기를 모색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게 진행해 왔다. 정치권에 진입했거나 이를 모색하는 참여정부 출신 인사 80여명으로 구성된 ‘청정회’가 대표적인 결사체였지만, 여전히 참여정부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팽배했기 때문에 청정회 모임을 바라보는 당내 시선은 곱지 않았다. 지난해 청정회 멤버들이 김해 근처에서 모임을 갖고 노 전 대통령을 방문하려 했으나 이 계획마저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라는 게 당시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그리고 정치적 결사체의 발족으로 다시 결집했던 친노 그룹의 발목을 잡은 것은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로서, ‘우(右)광재’로 불리던 이광재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혐의로 지난 3월 구속됐으며, ‘좌(左)희정’으로 일컫는 안희정 최고위원도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수수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비서 출신의 서갑원 의원도 수사선상에 오른 상태. 여기에 참여정부 핵심 참모들이었던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 박정규 전 민정수석,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등도 구속돼 도덕성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으면서 재기의 가능성마저 봉쇄된 듯 보였다. 친노그룹 결속 다질 조건 형성돼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비판해왔던 비주류 그룹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민심의 변화에 적잖이 당황하며 ‘노 전 대통령 끌어안기’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친노 그룹이 재집결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과 정치적 대립으로 불편한 관계를 보였던 정동영 의원은 봉하마을을 찾았으나 조문객들에게 한 차례 굴욕을 겪은 뒤 새벽에 다시 찾아 꽃 한 송이를 헌화했고, 김근태 전 의장, 추미애 의원도 직접 봉하마을로 내려가 조문했다.
그리고 김진표 최고위원은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재평가하기 위한 당내 태스크포스를 구성할 것은 제안해 참여정부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재평가 내용을 중심으로 한 백서 발간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검찰의 수사로 당내 기반조차 송두리째 뽑힐 위기에 놓였던 친노 그룹 쪽에서 보면 다시 결속을 다지고 세를 확대할 조건이 형성된 셈이다. 그러나 친노 그룹이 곧바로 구심력을 회복, 당장 정치적 재결집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 친노 그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지금은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이 무엇보다도 크다”며 “그분의 행적을 기리고 유지를 받들어야 한다는 취지는 십분 공감하지만, 지금 그것을 얘기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계파’가 없었다. 이전까지 재선의원, 1년 남짓의 짧은 장관 경력이 전부였기 때문에 ‘계파’를 형성할 만큼의 시간이 없었고, 특히 대선후보가 됐을 때 그는 현역 의원도 아니었으며, 2002년 대선후보 경선과정을 시작할 당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현역 의원은 천정배 의원 한 명에 불과했다. 따라서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노무현 사람들’은 주로 국회 밖에 포진해 있었다. 현실적으로 나눌 권력이 없었기 때문에 이 집단은 정치적 이해관계라기보다는 정치적 이상을 공유했다. 그래서 비교적 균질적으로 강한 결속력을 가졌으며, 이런 강한 결속력은 집권 후 포용력 부족이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386 운동권 출신’이다. ‘좌희정-우광재’라고 불리우며, 가장 신임받았던 참모진인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을 비롯하여 이광재·서갑원·백원우 의원과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윤태영·김만수·천호선 등이 그들이다. 이들 중 이광재·안희정 등은 13대 초선의원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보좌진 출신이며, 김만수·천호선 등은 대선주자로 떠오른 이후 영입한 참모들이다. 이들 386 운동권 출신 참모들은 노무현 정부에서 주로 청와대 비서진으로 일했다. 이들 중에는 유독 연세대 출신(이광재·윤태영·김만수·천호선 등)이 많아 청와대 내에서 ‘연대 라인’을 형성하기도 했다. 김우식 연세대 전 총장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영입된 것도 이들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호철 전 민정수석 등 부산지역의 386 운동권은 1981년의 부림사태 변론을 계기로 만나게 됐으며, 재임시 가장 신임했던 참모이자 평생 ‘친구’였던 문재인 전 비서실장(변호사. 사시 22회)은 부산지역에서 시국사범 변론을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친구로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며 “나는 문재인 친구 노무현이다”라는 말로 그에 대한 신망을 표출하기도 했다. 권 여사 봉하마을 사저에 계속 머물 듯
또한 1987년 6월 항쟁 당시 만난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 대선 당시 합류한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도 노 전 대통령의 직계인 영남 개혁세력으로 묶을 수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의 기틀을 잡은 이정우 전 청와대 경제수석(경북대 교수),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국민대 교수) 등은 영남 출신의 개혁성향 학자들이다. 노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공신이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영화인 명계남·문성근 씨 등은 노사모의 대표일꾼으로서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됐다. 노 전 대통령 후원회장이었던 이기명 씨도 노사모 출신의 측근 중 한 사람이다. 노혜경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김정란 상지대 교수 등도 노사모에서 활발히 활동한 인사이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중에게 일종의 ‘친노(親盧) 아이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 전 장관은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단협 등 반노-비노 세력이 노 전 대통령의 후보사퇴를 종용하는 것을 보고 분개해 정치에 뛰어든 뒤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임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독립’은 아직 미완이다. 그는 2007년 9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친노 후보 단일화 차원에서 경선 첫날 이해찬 전 총리 지지 선언을 하고 중도하차했다. 18대 총선에서 고향인 대구지역에 출마했지만,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에게 패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다시 결집하고 있는 노 대통령 지지자들은 유 전 장관에게 쏠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전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가교’ 역할이기도 하다. 김대중 정부에서 이 전 총리는 교육부 장관을, 한 전 총리는 여성부 장관을 지낸 바 있다.
반면, ‘노무현 사람들’ 중에서 의외로 이명박 정부에 몸담고 있는 인물들이 많다는 지적이다. 노 전 대통령 측 입장에서 본다면 일종의 ‘배신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주로 관료 출신들로서, 우선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노무현 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냈으며, 한덕수 주미대사는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거쳐 국무총리까지 올랐던 인물이고,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은 노무현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입각했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냈던 김장수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금배지를 달았고, 허준영 코레일 사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경찰청장을 지냈으나 2005년 시위 도중 농민 2명이 사망한 사건에 책임을 지워 불명예 퇴진시킨 데 불만을 품고 노무현 정권을 맹비난하면서 한나라당에 입당해 2006년 7월과 2008년 총선에 연거푸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으나 낙마했다. 대신 코레일 사장으로 임명돼 ‘낙하산 인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는 계속 봉하마을 사저에 머물며 고인이 된 남편 곁을 지킬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은 5월 28일 봉하마을에서 기자들과 만나 권 여사의 향후 생활에 대해 “사저에서 떠날 계획이 없다”고 말하면서 “영부인에 대한 경호는 퇴임 후 2년 간은 대통령 경호실에서 맡고 이후에는 경찰이 담당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