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중앙수사부(검사장 이인규)가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자살 후 ‘죽은 권력에 대한 표적수사’라는 논란 속에서도 꿋꿋이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해 왔으나,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돼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구속하지 못하면서 사면초가의 궁지에 몰렸다. 물론 임채진 검찰총장이 사표를 던져 청와대가 4일 수리해 5일 퇴임식을 갖고 검찰을 떠남으로써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책임론으로 궁지에 몰린 검찰에게 작으나마 궁지를 빠져 나갈 ‘돌파구’로 작용할 가능성을 비추고는 있으나, 천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은 ‘무리한 수사’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고 ‘봐주기’ 논란까지 제기돼, 검찰이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주목되고 있다. 특히 검찰은 세금포탈 및 ‘박연차 구명 로비’ 혐의를 받고 있는 천 회장에 대한 구속에 실패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에 제동이 걸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검찰 책임론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수사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마저 무너질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조문정국 직후인 6월 1일 검찰은 대검찰청에서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검찰 내·외부에 이번 수사의 배경과 경과를 정확하게 알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의견을 모으는 등, ‘서거 책임론’에 대해 “수사의 당위성과 정당성이 손상되면 안 된다”고 강력히 반발하며 남은 수사에 전력하려 했으나, 천 회장의 구속 실패로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천신일 ‘봐주기 수사’ 도마 위에 올라 소환조사 내내 ‘피의자’ 신분이었던 천 회장에게 휘둘렸음은 물론 출국금지된 사실이 알려진 후 한 달이 지난 5월 초에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진행한 수사 행태도 도마 위에 올라 ‘봐주기’수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총장을 바꿔도 ‘무리한 수사’, ‘죽은 정권에 대한 표적수사’논란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점에서, 사퇴한 임 전 총장 외에도 김경한 법무장관이 동반사퇴하거나 수사팀을 교체하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남은 의혹에 대한 수사가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5월 31일부터 고(故)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잠시 중단했던 수사를 재개했지만, 뇌물 혹은 불법 정치자금 공여자인 태광실업 박연차 전 회장은 물론, 범죄 사실과 연관된 참고인들이 한꺼번에 입을 닫는 바람에 피의자들의 혐의를 입증하는데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6월 4일 알려졌다. 불법자금이 주로 달러화를 포함한 현금으로 전달된 점 때문에, 박 전 회장의 일정 등을 꼼꼼히 기록한 여비서의 다이어리가 검찰 수사에서 큰 몫을 했지만, 이를 근거로 추궁하는 검찰에게 돈을 주고받은 사실을 말한 당사자는 박 전 회장이기 때문에 수사 초기부터 박 전 회장의 진술에 크게 의존해 왔었다. 이에 따라 그가 금품 공여 혐의의 피의자이거나 증인으로 돼 있는 재판만도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과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 씨, 정대근 전 농협회장, 정화삼·정광용 씨 형제, 송은복 전 김해시장,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박정규 전 민정수석, 이광재 민주당 의원, 이정욱 전 해양수산개발원장 등 줄잡아 10여건에 이른다.
그리고 그 동안 검찰 조사를 받은 천 회장을 비롯해 박관용·김원기 전 국회의장, 박진·서갑원 의원, 이택순 전 경찰청장 등 정치인과 검찰·경찰 간부, 그리고 앞으로 소환될 정치인과 지방자치단체장 및 법원 간부까지 더하면 20명에 가까운 인사들이 더 재판에 넘겨질 전망이어서 이들 모든 재판에 박 전 회장이 나서야 하기 때문에 검찰은 그의 건강과 함께 정확한 기억력을 기대해야 하는 형편이다. 검찰의 주장에 의하면, 그 동안 박 전 회장은 먼저 나서서 누구에게 돈을 줬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검찰이 정황증거를 수집해 들이밀 때는 비교적 상세하게 돈을 건넨 시점과 액수 등을 진술해 왔으며, 특히 상대방이 부인해 대질조사가 이뤄질 때에도 돈을 전달한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억해내 ‘박 검사’라는 별칭마저 얻기도 했다. 또한 박 전 회장은 한 번 입밖으로 낸 말은 번복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검찰도 박 전 회장의 진술에 꽤 신빙성이 있음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여기에다 운전기사, 돈 전달자 등 주변 인물의 진술이 더해져, 소환된 ‘피의자’가 혐의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다. 박연차, 충격으로 입 다물어 수사에 차질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충격을 받은 박 전 회장이 입을 닫았고, 참고인으로 불려온 사람들마저 진술을 꺼리면서 수사가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박 전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소식을 듣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5월 31일 박 전 회장은 자신이 20년 간 후원해 온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진술을 바탕으로 검찰에 소환됐을 때 직접 특별조사실에서 어색하게 해후하기도 했던 터였다. 아울러 박 전 회장은 이번 수사에서, 자신이 돈을 건넨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되거나 검찰에 소환되자 검찰 조사를 받으며 괴로운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었다. 수사팀은 이날도 4∼5명 정도의 참고인을 불러 조사했지만 큰 소득을 얻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여기에다 ‘살아 있는 권력’으로 불렸던 천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임 전 총장의 사퇴로 수사팀의 의지마저 꺾인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대검찰청 조은석 대변인은 “참고인 등이 진술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어 수사가 장기화될 판”이라며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시사했으나, 검찰은 문성우 대검 차장의 총장대행 체제로 일단 남은 수사를 최대한 신속하게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며, 특히 천 회장을 추가 조사한 뒤 사전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김태호 경남도지사와 부산고법의 A 부장판사 등 박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조사를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으며, 앞서 검찰에 소환됐던 박진·서갑원·최철국 의원과 박관용·김원기 전 국회의장, 민유태 전 전주지검장 등을 일괄 사법처리하면서 수사를 종료할 전망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청와대가 후임 검찰총장 인선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차기 검찰 수장 하마평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수사를 총지휘했던 임 전 총장에 이어 이인규 중수부장, 홍만표 수사기획관 등 중수부 수뇌부도 조만간 교체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현재 가장 유력한 총장 후보로 권재진 서울고검장(56·사시 20회)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 고검장은 대구 출신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는 검찰에 투신하여 대검 공안부장과 대구지검장, 대구고검장, 대검 차장을 지낸 뒤 지난 1월 서울고검장으로 임명됐다. 정책판단과 기획연구 능력이 탁월하며, 선·후배 검사들의 신망도 높고, 검찰 업무처리에 있어 원리원칙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대구 경북(TK) 출신인 권 고검장이 임명될 경우, 역시 TK 출신인 김경한 법무부 장관(65·11회)과 함께 ‘TK 독식’ 논란이 일 수 있어, 이에 대한 대안으로 권 고검장의 동기인 명동성(56·20회) 법무연수원장의 이름도 나오고 있다. 명 원장은 전남 강진 출신으로,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내면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BBK 사건에 대하여 무혐의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어 같은 호남 출신인 문성우 대검 차장(53·21회)이나 이귀남 법무부 차관(58·22회)이 기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대검 중수부 해체 또는 교체설 나돌아 문성우 차장은 전남 광주 출신으로, 대검 기획조정부장과 청주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법무부 차관을 역임하고 지난 1월부터 대검 차장을 지내고 있다. 검찰 내에서 대표적인 기획통이면서도 특수·형사·공안 업무를 두루 섭렵했지만, 현재 대검 차장으로 재직 중이라는 점에서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이귀남 차관은 전남 광흥 출신으로, 고려대를 졸업했다. 서울지검 특수3부장, 대검 공안부장, 대검 중수부장, 대구고검장을 역임했다. 특히 업무에 대한 집념이 강하고 정치적 판단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1999년 서울지검 특수부장 때는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을 수사했다. 한편,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검찰 책임론’이 거세지면서 과거에 제기됐던 ‘대검 중수부 폐지론’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가운데, 수사를 총지휘했던 임 총장이 퇴임함에 따라 이인규 중수부장, 홍만표 수사기획관 등 중수부 수뇌부도 조만간 교체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뒤따르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나 대기업 총수 등에 대한 수사 때면 으레 등장하는 대검 중수부는 정권이나 대통령,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아 권력형 비리사건을 처리하는 최고의 수사팀이다. 이로 인해 중수부는 정치적 편향성이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었고, ‘표적수사’ ‘정치검찰’이라는 말로 폄훼되기 일쑤였기 때문에 중수부의 폐지는 검찰 개혁의 단골 메뉴가 됐다. 실제로 DJ정부 때는 직접 대검 중수부를 없애는 방안이 논의됐고, 참여정부 땐 검찰 수사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를 설치하는 방안이 논의된 바 있다. 그러나 DJ 정부는 중수부를 그대로 뒀고, 참여정부는 검찰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법무부에 감찰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견제장치만 마련한 뒤 폐지 계획을 접었다. 한편, 현재의 대검 중수부는 올해 초 인사를 통해 ‘강성’으로 변모했다. SK 비자금, 불법 대선자금 수사 등을 거치면서 '기업 저승사자'로 불린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표적이며, 이 중수부장을 도와 사실상 수사를 진두지휘한 홍만표 수사기획관도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수사, 김현철 씨가 연루됐던 한보사건 등 대형 사건을 겪으며 잔뼈가 굵은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직접 돈을 받은 적이 없는 노 전 대통령의 포괄적 뇌물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온 가족의 흠결을 들춰내고 결국 전직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오명을 쓰게 됐지만, 이 중수부장은 “수사를 마무리 짓겠다”며 수사팀 교체 등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새 검찰 수장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