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청의 전면적 쇄신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지난 5월 13일 출범한 한나라당 쇄신특위(위원장 원희룡 의원)가 계파 갈등의 프레임에 갇혀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쇄신위는 계파 갈등이 만연한 당내에 기대를 모으면서 출범해 한때 소속 의원들의 가감 없는 당내 비판 발언으로 활발한 당내 논의의 물꼬를 틔웠으나, 청와대의 불편한 기색 때문인지 국정 쇄신은 아예 손도 대보지 못하고 대신 당부터 손질 작업에 들어갔으나, 이마저도 계파 구도의 벽에 부딪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쇄신위는 지난 6월 4일 열린 의원 연찬회에서는 쇄신위의 초선 및 중진 의원들까지도 당·정·청의 문제를 다각적으로 심도 있게 지적해 일각에서는 덮어 뒀던 당내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도 이어졌지만, 난상토론 이후 정작 쇄신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진전은 없이 ‘동어 반복’만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곳곳에서 문제의 근원은 ‘일방통행’식의 청와대라는 지적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청와대의 부정적인 입장 때문인지 쇄신위는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는 거론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쇄신위는 당부터 일신하자는 논리로 지도부 용퇴 및 조기 전당대회, 화합형 당 대표 추대론 등 갖가지 카드를 들고 나왔으나, 그마저도 논의의 가닥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친이계-친박계 굴레에 갇혀 오히려 쇄신위 내부에서조차 계파별로 의견이 분분하면서 구체적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박희태 대표의 ‘조건부 사퇴론’에 대해서도 박 대표는 6월 10일 열린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내가 6월 말까지 어떻게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조건부 사퇴설을 부인했으나, 쇄신위는 박 전 대표의 퇴진은 이미 합의된 사항이라고 반박하는 등 양측의 해석이 제각각이었다. 쇄신위, 논의과정 중 혼선 시인하며 진화 나서 이처럼 쇄신안을 둘러싼 논의가 활로를 찾지 못한 채 당내 논란만 확산되자 쇄신위는 곤혹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쇄신위는 일단 논의 과정 중 있었던 혼선을 시인하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대안은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원 위원장은 11일 열린 쇄신특위 10차 회의에서 “중간에 안타깝게 여러 정국 충격이 있고 당내 여러 급격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특히 지도부와 관련한 급격한 문제 제기가 있는 것에 대해 쇄신위가 논의의 영향권에서 일부 혼선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논의 과정 중에 있었던 혼선을 시인했다. 그러면서 원 위원장은 “다시 명확히 말하지만 쇄신의 본질은 국정 쇄신”이라며 “국정과 당의 동반 관계에 의해 당이 함께 책임 지는 입장이므로 국정 쇄신은 당 쇄신과 함께 논의되는 것”이라고 쇄신의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원 위원장은 지도부 사퇴론을 둘러싼 논란을 의식한 듯 “당 쇄신도 지도부의 거취나 전당대회의 성격은 모든 쇄신의 논의 내용과 결과에 따라 자연스레 결론이 날 문제이지 결과를 미리 정하고 싸움으로 결정하려면 쇄신위의 존재 이유가 없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원 위원장은 사퇴 여부를 합의한 적이 없다는 박 대표의 반론에 맞서 “지난 8일 회의에서 대표에게는 ‘직을 건다’는 것이 사퇴를 의미하느냐를 확인한 것이고, 박 대표는 ‘당연한 것’이라고 해서 활동 재개를 결정한 것”이라고 박 대표를 거듭 압박했다. 또한 원 위원장은 “6월 말 사퇴를 못 박는다는 것은 ‘민본21’의 요구와 겹쳐져 혼돈이 온 것”이라며 “오늘 쇄신위의 입장은 시한을 못 박은 것 이외에 바깥 혼선에 대해 공식 입장은 전혀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 동안 친이계는 ‘화합’을 강조하며 조기 전당대회를 요구해 왔다. 친박계와의 화학적 결합으로 국민들에게 화합의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이는 당이 계파로 양분돼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게 당내외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반면, 친박계는 지도부 사퇴나 조기 전당대회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친이계 측의 ‘진정성’을 믿기 어렵기 때문에, 진정한 화합을 원한다면 계파 갈등의 오랜 숙원인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와의 화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친박계의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 3회 회의를 매일 회의 체제로 바꾼 첫 날, 회의 참석자 수는 7명에 불과했으며, 8일 회의에서는 친이계와 친박계가 날선 대립각을 보이던 도중 친박계의 이정현 의원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이 의원은 이날 오후 열린 쇄신특위 긴급회의에서 한 참석자가 자신의 발언을 저지한데 대해 항의의 표시로 회의 도중 회의장을 빠져나간데 이어, 당 대표실에 특위위원직 사퇴서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계파갈등 프레임 속에 ‘갈팡질팡’ 지적 앞서 이 의원은 “쇄신의 1순위는 국정개혁이 돼야 하며, 지도부 사퇴 및 조기 전대는 후순위”라면서 “조기 전대를 이슈로 몰아가는 것은 오히려 대통령과 정부가 변화할 기회를 막는 것이자 쇄신에 대한 방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원 위원장은 “사전 조율 없이 치열한 논의가 이뤄지다 보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박희태 대표든 특위 위원장인 나든 이 의원의 사의를 받아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따라서 이 정도 상황이라면 쇄신위가 계파 갈등의 프레임 속에서 자리를 못 잡고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다. 또한 박근혜 전 대표로 예상되는 ‘화합형 대표 추대론’을 둘러싼 해프닝도 계파 프레임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8일 원희룡 위원장이 최고위원회에 ‘화합형 대표 추대론’을 제시했다는 일련의 언론 보도에 대해, 쇄신위 김선동 대변인은 “분명한 오보”라며 공식적으로 이를 전면 부인하면서 진화에 나섰으나, 최고위의 한 참석자는 “원 위원장이 그와 같은 추대안을 제시했다”고 밝혀 실체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분분한 가운데, 당내 일각에서는 쇄신위는 그 존재로서 이제 역할을 다했다는 비난과 함께 쇄신위를 쇄신해야 한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쇄신위원인 김성태 의원은 6월 11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금 위기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사실상 지금 상황에서 배는 가라앉고 있다”며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이어 김 의원은 “당의 다음 선장이 누구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정운영 기조 쇄신이 주 목적”이라며 “이반된 민심이 당에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지도부가 더욱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김 의원은 “대화합을 저해하는 국정운영이 존치되는 한 한나라당이 하나가 될 수 없다”며 “무너진 민심을 수습하지 않고 단지 당내 단결만 해서 일을 풀어 나갈 수 있다는 논리는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의원은 쇄신위 무용론에 대해 “지리멸렬하다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사심 없이 쇄신위의 본질에 충실할 필요가 있고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우직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청와대를 향해서도 “지금 상황에서 대통령의 인사·측근·보좌 부분에 대해 넘어갈 일은 아니다”며 “지난해 ‘고소영· 강부자’ 인사의 실패 등 인사 난맥상을 쇄신해야 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중진 의원들 “예의 지키라”고 질타 한편, 한나라당 중진 의원들은 최근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박 대표에게 ‘당 대표 사퇴’ 등을 제시한 쇄신위를 두고 한 목소리로 “정치에서도 예의범절은 빠뜨리지 말자”며 “최근 몇몇 의원들의 언행은 참으로 지켜보기 힘들었다. 예의를 지켜야 한다”며 크게 질타했다. 홍사덕 의원은 “변화와 쇄신에도 집중과 선택이 필요하다. 가장 교묘한 쇄신 반대 운동은 10가지, 20가지 쇄신 과제를 내놓고 한꺼번에 똑같이 밀고 나가자는 주장”이라며 “결과적으로 쇄신을 반대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홍 의원은 “당 대표, 원내대표, 청와대 참모진, 대통령, 검찰을 포함한 행정부 다섯 중 책임의 크기를 순위로 매긴다면 당 대표는 아무리 가혹하게 보아도 끝에서 두 번째”라며 “변화와 쇄신의 요구는 그 순위대로 제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종근 의원도 “쇄신위가 쇄신안으로 확정되기도 전에 모든 일시적인 현안을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며 “쇄신안이 확정되면 당에 제출하는 것이 정도이지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은 쇄신위가 아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 의원은 또 “쇄신위는 당의 최고 의결기구도 아니다”라며 “중간보고하는 형식을 취해 최고위원회와 쇄신위가 협상하는 식으로 국민에게 보이는 것은 쇄신위의 정도가 아니다”라고 질책했다. 박 의원은 “당원 및 의원들의 총의를 담아 하는 이야기인지 분명치 않은 사안들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오는 것은 쇄신위의 할 일이 아니다”라며 “쇄신위의 한계와 정도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경재 의원 역시 “쇄신안의 관철 방법은 당의 의결기구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임에도, (쇄신위는) 관철이 안 되면 지도부가 사퇴하지 않으면 종결하겠다, 집단 행동하겠다며 떼를 쓰고 협박하는 식으로 목적을 달성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또 “화합형 대표가 매력적인 안처럼 국민들에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실체가 있어야 한다”며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마음을 털어놓는 정신이 있고난 다음에 화합이 있는 것이지 억지로 협박해서 화합이라는 것을 얼기설기 만든다고 화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렇듯 많은 지적 속에서도 쇄신위는 박희태 대표가 당내 화합을 위해 직을 걸겠다고 밝힌 만큼 6월 말까지 시한을 정해 쇄신위 활동을 본격화한다고 밝힌 상태여서, 청와대의 외면과 뿌리 깊은 계파 구도 내에서 쇄신위가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