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5일부터 3박4일간 미국을 다녀오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과 저탄소 녹색성장 협력, 투자확대 등 경제 현안을 챙겼다. 하지만, 외교 안보 분야에서 미국의 적극적인 공조를 확약받은 것에 비해 경제 분야의 성과는 미진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상 한미 FTA는 양국 간 쟁점의 꼭대기에 서 있는 경제현안이었지만, 외교안보상 이슈에 가려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2007년 협상 타결 이후 답보상태를 거듭하며 FTA의 돌파구를 열지 못했다. 한반도 정세는 이 대통령이 주도한 방향대로 대화가 진전됐지만 FTA와 관련해서는 미국 측의 입장이 존중됐다는 게 청와대의 평가이다. 자동차 부분 등의 쟁점은 향후 한미 간 실무협의에서 검토될 예정이다. 하지만, 저탄소 녹색성장 및 투자확대와 관련해서는 상당 부분 성과가 있었다. 저탄소 발전으로 주목받고 있는 원전, 지능형 전력망인 스마트 그리드 등 에너지 분야의 협력을 약속한 것과 JP모건으로부터 녹색산업에 대한 1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받아낸 성과 등이다. 한미 자동차 추가협상 사실상 합의 우리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전략’에서는 미국 측의 포괄적 동의를 얻은 반면, FTA에서는 미국 측 입장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6월 16일 한-미 간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 마무리된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의 모두발언에서 이 대통령은 “우리 한미 두 정상은 한미 FTA를 진전시키기 위한 실무회의가 협의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앞으로 두 정상은 협정의 진전을 위해서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며 협상의 진전을 예고했다. 6월 17일 한반도 전문가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한미 FTA를 거론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대선 전후에 한미 FTA에 대해 다소 유보적 입장을 보였으나, 어제 정상회담 과정에서 FTA 진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면서 “세계 경제대국으로서 미국이 자동차 산업 하나에 집중하기보다 미국 산업 전체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FTA와 관련한 모두발언을 하지 않았다. 다만 기자의 질문에 “미국의 국익이 보장되어야 한미FTA 비준안 상정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같은 경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쟁점이 될 수 있고, 미국 같은 경우 자동차와 관련돼서 과연 동등한 교역이 될 것인지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며 “이 대통령이 한국민을 위해 옳다고 생각하고 제가 미국민을 위해 괜찮다고 생각할 시점에 의회에 비준안을 상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준에 앞서 양국 간 ‘걸림돌’을 제거하고 반대자를 설득하는 일이 전제돼야 함을 명확히 한 것이다. JP모건, 한국 녹색산업에 대규모 투자 이 같은 결과는 지난 4월 1차 회담에서 두 정상이 FTA 문제의 본격적 논의를 합의했던 점을 고려해본다면 아쉬움이 적지 않다. 이는 이번 회담을 계기로 FTA 추진의 모멘텀을 얻을 것이라는 정부 측 기대와는 배치되는 것.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이 미국 내 상황을 고려한 정치적 수사라는 해석도 없지 않지만,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FTA 연내 비준이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특히 내년은 미국의 중간선거와 한국의 지방선거가 각각 예정돼 있어 연내 비준이 어려워지면 FTA 문제는 기약 없는 장기화의 길로 접어들 우려도 없지 않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JP모건은 10억 달러 규모로 ‘한국녹색펀드’를 조성해 이르면 하반기부터 우리나라의 태양광, 풍력, 발광 다이오드(LED), 탄소배출권, 그린 카, 바이오 연료 등 녹색 관련 분야 투자에 나설 예정이다. 한국의 녹색산업 및 기술 관련 기업과 인프라 건설 등의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과 월리엄 달리 JP모건 자산경영 부회장은 6월 16일 워싱턴 시내의 한 호텔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JP모건의 한국녹색펀드 투자의향서(LOI, Letter of Intent)에 서명했다. 펀드의 30~40% 자금은 JP모건이 직접 출자하거나 해외투자자를 모집하는 방식으로 조성되고, 나머지는 한국 내 기관투자자 등을 통해 조달한다. JP모건이 제시한 투자계획에 따르면, 조성된 펀드는 녹색산업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신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 등), 에너지 효율(LED 등), 녹색 인프라(탄소배출권시장 등), 녹색건축(그린 홈 등), 녹색기술 (그린 카, 바이오 연료 등) 등의 프로젝트에 투자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녹색산업 육성에 외국계 펀드가 대규모로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첫 사례라는 점에서 다른 글로벌 기업들의 연쇄적 투자를 유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이번 JP모건의 한국녹색산업 투자결정을 계기로 하반기에도 외국인 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신재생에너지 등 녹색성장 관련 투자유치 활동을 집중적으로 전개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스마트 그리드 등 녹색기술 공동개발하기로 한국과 미국이 함께 미래 녹색기술을 개발하기로 한 것도 성과로 꼽힌다. 양국은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와 발전소·공장 굴뚝에서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 등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스마트 그리드는 집이나 사무실에서 5~10분마다 전기요금 단가가 바뀌도록 하는 기술이다. 집안에 있는 지능형 전력계가 전기단가가 내려가면 세탁기 같은 가전기기가 작동하도록 명령을 내려 낭비를 줄인다. 이명박 대통령과 미국에 다녀온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6월 16일 스티브 추 미 에너지부 장관과 ‘에너지 협력 의향서(SOI)’에 서명해 저탄소 발전으로 주목받고 있는 원전, 지능형 전력망인 스마트 그리드 등 에너지 분야 협력을 통해 기후변화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이 의향서에 따라 향후 양국은 기존의 한미 에너지 실무협의회를 활용하여 스마트 그리드를 포함, 탄소포집기술(CCS), 원자력, 메탄 하이드레이트, 지열발전 등의 분야에서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스마트 그리드 분야의 협력은 한미 양국의 이해관계를 절묘하게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은 송배전 과정의 전력손실률이 6.7%에 달하고 연평균 정전시간이 138분(2003년)에 이르는 등 전력망 개선이 절실한 상황. 반면, 한국의 전력손실률은 4.5%, 연평균 정전시간은 17분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역시 세계적인 정보통신(IT) 기술력을 보유한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해외시장 진출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는 셈이다. 정부는 한국형 스마트 그리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제주도를 시범단지로 선정해 약 810억 원을 투자, 2011년부터 실제 운영에 들어가기로 했다. 일반 주택과 상가와 같은 상업시설,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등이 혼합되는 형태로 3000세대 규모의 거주지역이 개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