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국면 이후 국정 쇄신 요구에 화답하는 외길수순의 수세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국정장악력 강화를 위한 사실상의 집권 2기 체제의 개편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져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야당이나 한나라당 쇄신위에서 요구하는 ‘대통령 사과’나 ‘전면개각’ 등과 같은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중도강화론을 바탕으로 한 정책 ‘삼각화(triangulation)’를 통해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어 그 배경과 의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구상은 지난 6월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좌·우와 진보·보수로 나뉘어 이념적 구분을 하고 있지만, 사회적 통합은 구호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고 ‘중도강화론’을 주장한데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은 6월 25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도강화론’과 관련해 “중도강화론은 1996년 미국 대선 당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정치참모 딕 모리스가 마련한 균형예산과 탈규제 등 우파의 어젠다를 선거공약에 채택한 ‘삼각화’ 전략을 국정에 도입하겠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중도강화론’ 첫 번째 메시지는 ‘사교육비’문제 이 대통령은 ‘중도강화론’의 첫 번째 메시지로 교육문제, 그 가운데에서도 ‘사교육비’ 문제를 콕 찝어서 지적했다. 이는 국민 대다수가 사교육비 문제에 동의하는데다, 모든 가정에 해당되는 서민층의 고민 중의 고민이 바로 교육문제이고, 이 가운데 우리 사회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슈가 사교육비 문제라고 판단한데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6월 24일 16개 시·도 교육감을 초청하여 오찬간담회를 열고 “가난으로 사교육을 받지 못해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며 공교육 강화와 대학입시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23일 국무회의 자리에서도 “과거에는 없는 사람들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을 해서 이른바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었지만, 사교육 부담이 커지면서 점점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며 “서민계층이 체감할 수 있는 확실한 로드맵을 갖춘 사교육비 경감 방안을 마련하도록 속도를 내 달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이 대통령 스스로가 가난 속에서도 공부해서 꿈을 키우며 대학에 들어가 기업인으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입신한 ‘성공스토리’를 가진 만큼 자신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되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사교육 관련 집단세력이 세다는데, 그래서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 잘 안 되는 것 아니냐”며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피부에 와 닿는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5월 교육과학기술부가 ▲교과 교실제 ▲교원능력개발평가제 ▲EBS 강좌 질 개선 ▲방과 후 학교 ▲사교육 줄이기 캠페인 등을 내용으로 하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내놨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정책적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인 셈이다. 특히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이 지난 4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과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추진했다가 교육과학기술부와 여당 내 일부 반대로 좌초된 ‘오후 10시 이후 학원 심야교습 금지’ 방안에 힘을 실어주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교육문제에 이어 서민경제·사회통합 등 양극화를 해소하고 중산층과 중도세력을 복원하는데 지속적으로 역점을 둔다는 계획이다. 이 대통령의 이처럼 달라진 국정운영 스타일은 최근 단행한 인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깜짝 개각’이나 ‘국면전환용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MB식 인사 스타일로 볼 때, 국정 쇄신을 위한 ‘근본적 처방’의 핵심은 개각보다는 체제 개편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정부부처 인사 분권화도 가시화 따라서 6월 21일 전격적으로 단행한 검찰총장과 국세청장 인사를 살펴보면 이 대통령의 개혁과 변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기수와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검찰 분위기를 감안할 때 사시 19기인 임채진 전 검찰총장에 이어 3기수나 아래인 사시 22기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의 검찰총장 임명은 검찰 조직에 의미심장한 ‘신호’를 던진 인사였다는 점에서 검찰의 인사 태풍을 예고했다. 권재진 서울고검장(20회)과 김준규 대전고검장(21회)이 벌써 사퇴 의사를 표명한 상태이고, 10여 명의 검찰 수뇌부가 줄지어 옷을 벗을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 대통령은 “법치를 확고히 지켜 나가면서도 기존의 수사관행에 무엇이 문제였는지 되돌이켜볼 필요가 있다”고 부연설명까지 곁들여 검찰 조직을 ‘긴장’시키고 있다. 백용호 국세청장 내정자의 경우도 세무공무원 출신이 아닌 민간 국세청장의 임명이라는 점에서 국세청 ‘개혁’ 바람이 예고되고 있으며, 특히 백 내정자는 이에 부응하듯 “국세청이 4대 권력기관 중 하나라고 하는데 이 단어가 적절한지 늘 고민해 왔다”며 “다른 행정부서와 마찬가지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정부 기관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 스스로 기업 CEO 시절에 피부로 느꼈던 국세청의 ‘고압적 자세’와 ‘권력화’에 대해 분명한 체질개선을 주문한 것으로 보이며, 특히 끊임없는 비리 양산에 대한 근본적 처방과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문턱’을 낮추라는 이 대통령의 무언의 압력이 국세청에 전달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대통령은 “앞으로 장차관 등 정무직을 제외한 각 부처의 실무 간부 인사를 장관에게 맡길 생각”이라며 “임기 초반에는 정권이 바뀌었던 만큼 청와대가 불가피하게 조율한 측면도 있었지만, 이제는 장관의 책임 아래 인사를 하도록 하겠다. 다만, 장관들도 본인의 인사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해 각 정부 부처 인사의 분권화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는 부처의 실국장과 공공기관장 인사에 청와대가 일일이 관여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장관들에게 그 권한을 대폭 넘김으로써, 지금까지 꼼꼼하고 세세한 것까지 직접 챙기던 집무 스타일에서 선택과 집중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도 한 주의 시작과 함께 정국의 주요 이슈와 정책 현안을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의미에 따라 수요일에서 월요일로 앞당겼다. 이처럼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 강화론’이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서민·중산층 대책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자정권’이라는 왜곡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서민·중산층을 위해 부단히 정책을 개발하고 경제 살리기에 매진한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보수·진보라는 이념 코드에 갇히지 않고 지지층의 외연을 확대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서민 속으로 뛰어들어 목소리 직접 들어 이 대통령이 6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의 초점을 서민생활에 둬 우선적으로 배려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서민·중산층 정책에 시동을 건 이슈는 앞서 지적한 교육개혁 문제이며, 다음으로 절실한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도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노력은 지난달 20일 경기도 안성에서 모내기를 한데 이어, 한 달여 만인 6월 25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한국외국어대 근처의 골목 상가를 찾아 대형 슈퍼(SSM)의 골목상권 진출과 경기침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챙기려는 취지로 연결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께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홍석우 중소기업청장,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 등과 함께 한 할머니가 운영하는 10㎡ 남짓한 동네 슈퍼와 찹쌀 도너츠 가게, 과일 좌판 등을 방문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지역 상인 및 상인 대표자들과 함께 골목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대형 슈퍼의 무분별한 개점을 막아줄 것을 요구하는 상인들의 건의사항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경제가 어려우면 제일 먼저 고통받는 사람이 서민층”이라며 “경제가 좋아지기 시작해도 서민이 제일 마지막까지 고통받는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이) 세계에서 제일 빠르다고 해도 기업하는 분들이 바로 혜택을 볼 것”이라며 “서민들은 앞으로 1, 2년을 더 고생해야 하니,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4년 동안 재래시장에서 환경미화원을 했는데, 시장 상인들이 등록금을 보태줬다”며 “힘들지만 용기를 갖고 끈질기게 해야 한다”고 소상인들을 격려했다. 이 대통령은 “여러분도 한 단계 발전을 해야 할 것”이라며 “농촌에 전부 인터넷이 들어가 있어 인터넷으로 거래를 하는 등 유통구조가 발전해 있는데, 재래시장은 내가 젊을때보다 별로 발전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대형 슈퍼와 영세상인 간의 갈등에 대해서는 “상생과 신뢰사회를 지향하는 선진일류국가의 기본 상도에 해당하는 문제”라며 “민간자율이 우선돼야 하지만, 정부도 구체적 지원정책 외에 사회 분위기 통합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또 영세상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 하반기 중 소상공인 보증을 위해 3조3000억 원의 재원을 추가 확보하고, 사업조정제도 등 영세 상공인의 건의사항에 대해 관계부처에 대책마련을 지시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골목시장 방문 중 새마을금고를 찾아 ‘마이크로 크레딧’(소액서민금융) 관련 보고를 받고는 “소액이지만 어려운 분들에게는 굉장히 필요한 돈”이라며 “금융감독원을 방문했다가 사채를 100만 원 빌렸다가 한 달에 60만 원씩 1년을 갚았는데 1500만 원의 빚이 남았다는 사람을 만나 하소연을 듣고 불법이기 때문에 정식 조사를 시켰는데 어제 고맙다는 편지를 받았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골목 누비며 ‘서민중심’ ‘중도강화’강조 이 대통령은 이날 골목시장 방문에 앞서 이문1동 주민자치센터를 찾아 ‘희망근로 프로젝트’ 참여 근로자들을 격려하고, 센터 내 어린이집에서 어린아이들과 ‘배꼽인사’를 나눴으며, 서예교실·탁구교실에서는 주부들과 시합을 하는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희망근로 프로젝트가 생산적이어야 한다”며 “담배 꽁초를 줍고 하는 그런 일만 맡겨서는 안 되며, 제대로 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골목상가 방문은 ‘서민중심’과 ‘중도강화’를 강조하고 있는 이 대통령의 친서민행보의 일환으로,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논쟁을 넘어 서민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는 정책을 펴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가운데, 이 대통령은 “서민 입장에서는 어려울 때일수록 정부가 따뜻하게 챙겨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장관들도 더 자주 현장에 나가 확인하고 격려하며 용기를 주는 것이 좋겠다”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이처럼 중도실용의 강화를 통해 그 동안의 정국혼란과 지지층 분열을 딛고 집권 2기를 준비하는 국정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중도실용은 상당 기간 여권의 화두로 기능하면서 국가정책과 국정운영을 좌우하는 기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이 530만 표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따뜻한 보수’와 중도실용을 표방하여 보수뿐만 아니라 중도 계층의 표심을 잡았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지만, 지난해 취임 초기 ‘강부자(강남 부자)’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출신인사)’ 등의 인사파동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장기간 촛불시위 등은 이런 상황에 변화를 가져왔다. 심지어 보수·진보의 이념 대립이 심화되고 대선 당시 지지층이 분열하면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했으나, 이 대통령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집토끼’인 보수층에 호소하면서 위기를 넘기고 지지율도 30%대로 회복했지만, 문제는 ‘중도보수’였던 이 대통령의 이미지가 ‘보수’로 각인됐으며, 여기에는 야당 등 진보 세력의 집요한 ‘낙인 찍기’의 여파가 많았다고 판단하고 당시의 지지층을 회복해 국정운영의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대통령은 집권 2기에 대비하고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통해 한나라당의 재집권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산토끼’인 중도 내지 유동 계층의 지지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로 다가왔고, 이런 필요에 의해 중도실용 강화론이 탄생했지만,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변화’가 탄력을 받아 과연 집권 후반기의 기틀을 다질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