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마트에 밀려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소 슈퍼들이 최근 대형 유통업체의 슈퍼마켓 확대로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이마트는 서울 상도동 브라운스톤 아파트 상가 1층에 240㎡(73평) 규모의 ‘이마트 에브리데이’ 1호점을 오픈했다. ‘이마트 에브리데이’는 유통 대기업인 신세계가 이번에 도입한 동네 슈퍼의 새로운 브랜드로, 유통업체의 브랜드를 상호로 단 대형 슈퍼마켓(SSM) 중 하나이다. 신세계 이마트가 1000㎡(330평) 미만 소형 점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열하고 있는 상품도 신선식품이 30%, 가공식품이 50%, 생활용품이 20%이다. 일반 슈퍼마켓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마트는 이번 개점을 시작으로 7월 안에만 10개 정도의 소형 점포를 더 열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홈플러스와 롯데슈퍼도 역시 최근 한 달 새 5~6개 점포를 새로 여는 등 빠르게 매장을 확대하고 있어 대형 유통기업들과 중소 영세상인 간의 분쟁은 한층 더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2000년에 전국 196개에 그쳤던 SSM은 2007년 354개, 지난해 477개로 증가한데 이어, 올해 700개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대형 마트의 포화로 성장세가 주춤거리자 SSM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세계 이마트 SSM인 ‘이마트 에브리데이’는 6월 30일 현재 점포가 4개에 불과하지만, 올해 말까지 SSM을 30∼40개 추가로 개점할 계획이다. 홈플러스도 SSM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152개에서 올해 말 220개 안팎으로 늘릴 예정이다. 대형 유통기업의 동네 슈퍼 시장 잠식이 시작됐다. 기업들이 점포 출점을 서두르는데 대하여 “규제를 피해 개점을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정부가 6월 30일 ‘사전조정협의회’를 설치해 ‘중소기업의 사업영역 보호에 관한 운영세칙’을 유통 부문에도 적용하기로 한데 따른 분석이다. 이 세칙에 따르면, 대기업의 사업진출이 중소기업 경영에 위협이 될 경우 한시적으로 사업진출 유예를 권고할 수 있다. 하지만 유통기업들은 중소 상점들의 경영에 아랑곳 않고 SSM 출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전국에 산재한 대형 마트는 385개이고, 기업형 대형 슈퍼마켓은 530여 개에 달한다. 여기에 신세계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SSM 확대 계획을 세우고 있어 그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SSM-중소상점 경쟁, ‘다윗과 골리앗’ 형국 대형 유통업체들의 이 같은 슈퍼슈퍼마켓(SSM) 확장에 골목상권은 거의 초토화 상태이다. 과거 대형 마트에서 셔틀버스를 운영하면서 대다수의 고객을 끌어 가자 중소 슈퍼마켓에서 이에 반발해 셔틀버스 운행을 중단하는 규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최근 대형 마트에서 규모를 줄인 기업형 슈퍼마켓을 선보이면서 양측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오른 형국이다. 기업형 슈퍼마켓이 동네 곳곳에 생기면서 동네 슈퍼의 매출에 또다시 문제가 생기는 탓이다. 대형 마트 슈퍼마켓의 갈수록 작아지는 규모도 동네 슈퍼에게는 실로 대단한 위협이다. 대형 마트와 같은 가격경쟁력과 마케팅 기법을 가진 이들 SSM이 동네 구석까지 파고들면 인근 슈퍼마켓의 정상적인 경쟁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도 된다. 일반 슈퍼는 개별적으로 상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어 대형 마트보다 가격경쟁력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어느 지역의 동네 슈퍼는 인근 SSM에 손님을 뺏기는 바람에 4000원짜리 간장을 3500원에 팔기로 했다. 하지만 납품업체가 가격을 내리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고 한다. 주변 슈퍼가 가격을 내릴 경우 SSM에서 납품거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대형 슈퍼마켓에서하는 무료배달 서비스 등을 1인 사업자가 대다수인 동네 슈퍼는 할 수 없다. 결국, 다윗과 골리앗을 같은 링 위에 올려놓고 싸움을 붙이는 형국이다. SSM 주변 상점 41% “6개월 못 버틴다” 6월 30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발표한 ‘SSM 주변 소매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형 슈퍼마켓(SSM) 주변 상점 10곳 중 4곳은 경영난으로 앞으로 6개월도 버티기 어려울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SSM 주변 중소 상점 226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41.2%가 ‘경영난 때문에 앞으로 6개월을 못 버틴다’고 응답한 것이다. ‘3개월도 못 버틴다’는 응답도 24.1%, ‘3개월~6개월 정도’라고 답한 점포도 17.1%나 있었다. 이들 업체 중에는 SSM 입점 이후 하루 평균 매출액이 49.7만 원(30.8%)이나떨어진 곳도 있었다. 이들 중 87.2%가 향후 경영환경을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중소 상인들은 과도한 호객행위와 무차별 전단지 배포가 경영을 힘들게 하고 있다고 꼽았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에서 SSM 매장 유치를 위해 건물주에게 2배 이상의 임대료를 제시하여 기존 슈퍼마켓이 내쫓길 형국에 처하거나, 아파트 주민을 대상으로‘입점 찬성 서명’을 받는 경우, 대형 슈퍼에서 손님을 끌기 위해 특판상품 패키지를 구성해 매일 순번에 따라 덤핑 가격 수준으로 할인판매를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삼겹살 100g을 동네정육점에서 1670원에 판다면, SSM에서는 870원에 가격을 대폭 낮춘다. 게다가 야채/청과는 요일에 따라 혹은 선착순 할인 등의 방법으로 싸게 판다. 음료·과자는 하나더 판매, 반값 판매 등을 벌인다. 특판상품으로 선정될 경우 주변의 동일업계 상점은 개점휴업 상태가 되는 사례도 있었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에서는 SSM이 무차별적인 덤핑 판매로 동네 상점을 고사시킨 뒤 상권을 독점해서 수익을 올리겠다는 계획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7월에 오픈될 서울의 한 SSM에서는 개점 두 달 전부터 수십 명의 호객직원을 채용, 인근 주택가에서 행인에게 포인트카드 회원 가입신청을 받고 있다고 한다. 장바구니 사은품도 준다. 가게 앞까지 와 연일 고객카드 모집행위를 하는 통에 경찰에 영업방해 신고를 하는 소동도 빚어졌다고 한다. 당정, SSM 입점 개설등록제 도입하기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부는 SSM을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바꾸는 대책을 마련했다. 지식경제부와 한나라당은 최근 당정협의회를 열어 매장면적 합계가 3,000㎡ 이상인 점포에 적용돼 온 ‘개설 등록제’를 규모와 무관하게 ‘대규모 점포 및 대규모 점포의 직영점’으로 확대한다는 골자의 개정안을 이달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등록신청 과정에는 ‘지역협력 사업계획’을 지자체에 제출하도록 했다. 정부는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바뀌면 지자체가 조례 등으로 출점 제한을 하거나 유보할 여지가 생겨 제한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은 대형 마트의 등록제가 실효를 못 거두는 상황에서, 신고제를 등록제로 전환한다고 SSM에 대한 규제가 제대로 이루어질지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조합 측은 SSM의 영업시간·의무휴업일 지정, 품목제한에 대해 규제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슈퍼마켓 업주들은 지역 소상공인과 시민단체, 관계부처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를 통해 SSM 입점심사를 할 수 있는 허가제 도입을 요청하고 있다. SSM-동네 슈퍼, 상생방안 없나 그렇다면, 대형 마트에서 나온 SSM과 골목상권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국회에는 이와 관련된 법안들이 여러 개 제출돼 있다. 지난해 11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규제가 자의적이고 불공평하지만 않으면 현행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도 충분히 대형 마트와 슈퍼슈퍼마켓(SSM)을 규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대형 유통업체들의 무차별 공격에 중소 상인들의 몰락 위기가 심각해지자 각 당 의원들이 대형 마트 허가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낸 이용섭 민주당 의원도 “우리나라 헌법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를 존중한다’고 규정하면서도 ‘시장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며 “이 대통령의 말처럼 대형 마트 규제가 불가능한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민주당 이시종 의원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개정안에 나오는 영업품목 및 영업시간 제한, 의무 휴무일수 지정이 관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SSM과 공정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존의 신용카드 수수료를 3~4%에서 SSM 수준의 1~2%로 내려 달라는 요구도 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허가제와 영업시간 및 품목 제한 요구는 ‘세계무역기구의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위반한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어 정부와 중소 상인 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SSM 입점은 골목상권에 핵폭탄” 김경배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 인터뷰
대형 마트와의 경쟁에서 밀려 온 동네 슈퍼들이 최근 대형 유통기업들의 대대적인 SSM 확장으로 더욱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 1996년 전후로 대형 마트가 400개 가까이 늘어났다. 대형 마트 하나가 들어설 때마다 주변 상권의 매출액이 600억에서 800억 원씩 미뤄지고, 재래시장은 6개 이상 문을 닫아야 한다. 자영업 상점 2000개 정도가 어려움을 겪는 ‘쓰나미’ 현상이 일어난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걸 ‘대형 마트가 들어서면 그 지역에는 핵폭탄이 터진 것 같다’고 말한다. 해당 지역경제에서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소상공인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면 지역 내에 돈이 돌지 못해 지역경제가 피폐해지는 방식으로 악순환이 시작돼 정부가 지역경제를 살리려는 정책을 펴도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 된다. 근본적으로 SSM과 중소 상점이 상생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 있지 않다. 특히, 공정 경쟁할 수 있는 체제가 안돼 있다. 상인들은 타의에 의해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OECD에 가입한 나라 중 시내 한복판에서 24시간 365일 아무 제재 없이 무작위로 영업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재벌이 독과점 형태로 백화점·슈퍼·할인점·인터넷 쇼핑몰·홈쇼핑을 다 싹쓸이하는 나라가 있는가 말이다. 조만간 독과점될 것이고, 사회 혼란을 가져올 소지가 있다. 400개의 대형 마트로 경영난 ‘폭탄’을 맞은 골목상권이 이제 숨을 돌리고 겨우 재정비했는데, SSM을 무한정 확장하려는 태도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사실, 동네 슈퍼와 대형 마트 간 갈등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이전에 대형 마트에서 셔틀버스를 운행해 소비자가 대거 쏠리면서 동네 슈퍼들의 반발이 심하게 일기도 했다. 그 시작을 1996년 시장개방으로 보는가? “정부가 1996년 유통시장 개방 이후 좀 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여러 상황에 대한 대책과 방안 및 전략을 강구했어야 했다. 하지만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통시장을 전면 개방했다. 유통시장이 개방되면 시장변화가 어떻게 벌어질지 외국 사례 등을 포함해 예측 가능한 상황을 충분히 설명했어야 하지만 정부가 미흡했다. 중소 유통 지원 정책을 지금과 같은 ‘사후약방문’식이 아닌 사전 지원책을 썼다면 상당한 진전이 있었을 것이다. 국가의 지원정책이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대형 매장의 지나친 입점경쟁으로 적자를 보는 현상이 결국 한국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이렇게 급작스레 변화와 몰락이 몰려 오는 것은 전체 사회에 절대 도움이 될 수 없다. 내가 알기로는 대형 마트의 3분지 1이 없어져야 흑자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경쟁적으로 출점한 대형 마트가 현재 포화상태이다. 적자를 보는 매장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생기는 적자를 SSM으로 충당하려는 것은 재벌이 자기 발등을 찍는 것과 같다. 동네 슈퍼들도 어렵게 만들고 자신들도 경영난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소비자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대형마트로 가는 손님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미국에서는 대형 마트가 국가에 이익을 준다고 생각했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지역경제를 황폐화시키고 제조업도 어려워지게 만든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제조업자들은 대형 마트의 가격경쟁으로 원가 이하의 수입을 얻고 있다. 그러다가 이제는 유통 브랜드 자체적으로 PB 상품을 개발하기 시작해 제조업체들은 더욱 경영이 힘들어지게 됐다. 정부나 사회 등 어딜 가나 한국의 선진화를 강조한다. 그러나 많은 이가 길에 내몰리고 영세민이 돼 가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건강하게 진입할 수 있겠는가? 사회는 크고 작은 무리가 어우러져 선의의 경쟁으로 공생할 수 있어야 한다.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말이다. 뿌리가 튼튼하지 않은 건물은 언젠가 무너지고, 실핏줄이 막히면 전체 조직이 썩을 것이다. 중소 슈퍼마켓이 유통분야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가 SSM을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바꾸는 등의 대책을 마련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연합회에서는 지역 소상공인과 시민단체, 관계부처 등으로 구성된 ‘유통발전심의기구(가칭)’를 설립해 SSM 입점 심사를 할 수 있는 허가제 도입을 요청하고 있다고 들었다. “문제는 SSM 입점 허가를 등록제로 실시한다 해도 전체적인 시장장악 속도를 늦출 뿐, 근본적인 상생 대책은 아니다. 그보다 허가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SSM 입점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평가를 해서, 도움이 될 경우에는 유치를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입점을 막아야 한다. 또, 전문가로 구성된 사전심의제도가 있어야 한다. 입점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지자체 소속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미 영업 중인 500여 개의 SSM에 대해서도 영업시간·품목 제한 등으로 동네 슈퍼마켓과 상생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서울 이문동 재래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형 마트를 못 들어서게 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안 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 말이 SSM 진출에 힘을 실어줬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대형 유통업체 SSM과의 상생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안다. 당시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대통령의 발언은, 재래시장에 와 보니 민생경제 상황이 심각하고,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사전조정제도는 한시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이고, 장기적인 대책은 아니라고 본다.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갖고 자영업자들이 경쟁할 수 있는 툴을 만들어줘야 한다. 법에 영업시간·휴무일 등을 명시해 상생할 수 있는 틈새를 만들어야 한다. 독일의 경우에는 품목제한을 통해 공정경쟁을 이끌어내고 있다. 헌법에는 국가가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대기업들은 그에 맞는 영업을 해야 한다. 그들은 축적된 마케팅 노하우로 해외에서도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하다. 이들이 마지막 골목상권까지 피폐화시키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