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벌 일가들의 입장이 묘하다. 공적으로 한국의 경제를 책임지는 대기업 수장의 입장에서 보자면 환율·유가·원자재난에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체제의 붕괴, 전 세계적 경제위기와 경제 블럭 가속화 등 위기일발이다. 또 청와대의 강력한 의지 속에 은행·증권 등 채권 금융사들은 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MOU를 맺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재계의 한 인사는 “노사관계, 국내외 경기 등 어느 것 하나 마음 놓을 수 없다. 식은 땀이 날 지경”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반면, 한국 경제의 책임자적 위치를 떠나 단지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상위 1% 계층을 형성하고 있는 부자 집안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즐거울 때가 없다. 현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미명 아래 웬만한 부유층 및 재벌가의 건의 및 애로사항들은 들어주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사정 악화로 주식시장이 침체기에 있을 때는 마음놓고 지분 확보 및 경영권 증여 등을 할 수 있다. 또 재벌가에서 형제나 사촌인 오너의 그늘에서 탈출하고 싶은 멤버는 이번 기회에 계열분리 등 딴 살림을 준비하고 있다. SK그룹 - 계열분리가 ‘정답’ SK그룹은 SK를 정점으로 SK C&C·SK텔레콤·SK네트웍스 간 순환출자를 기본으로 관계사·자회사·손자회사로 구성돼 있다. SK그룹을 지배하려면 SK를 지배해야 한다. 이 같은 지배구조 체제를 최태원 회장은 아예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적어도 주력계열사 만큼은 SK 등 특정 회사를 통한 간접지배 방식이 아닌 직접적인 지분보유 방식으로 경영권을 확보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현 주식시장의 상황이 최 회장의 이 같은 시도를 좌절시켰다. 이 와중에 SK를 중심으로 한 일부 계열사들과 SK케미칼 중심의 일부 계열사들 간에 이합집산이 일어나면서 계열분리설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 SK는 현 SK그룹의 지주회사로 최태원 회장이 경영권을 소유하고 있다. 반면, SK케미칼은 최 회장의 사촌인 최신원 회장이 소유·경영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SK케미칼이 SK건설 보유지분을 SK에 팔았다. 이는 사실상 SK건설의 주인을 최태원과 최신원 중 최태원 회장으로 명확히 한 것이다. 또 최신원 회장은 SK건설을 포기하는 대가로 받은 4000억 원을 계열분리를 위한 실탄으로 활용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최태원 회장은 SK를 정점으로 SK텔레콤·SK네트웍스·SK커뮤니케이션즈와 SK건설 등 일부 계열사를 산하에 두게 된다. 반면, 최신원 회장은 SK케미칼을 정점으로 SK텔레식스·SKC·SK미디어·동신제약·SK유화·SK엔카네트워크 등을 산하에 두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신원 회장이 SK라는 이름을 버리고 별도의 그룹으로 떨어져 나가기보다는 SK의 브랜드와 사업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결국 SK그룹은 두 명의 오너 회장을 모시는 기형적 형태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효성 - “아들들아 싸워라” 효성그룹의 지배회사인 효성의 지분구조를 보면 조석래 회장의 후계구도에 대한 생각을 잘 들여다볼 수 있다. 효성그룹의 오너 조석래 회장 본인은 효성의 지분을 10.21%만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큰아들 조현준 효성 사장이 6.94%, 둘째아들 조현문 효성 부사장이 6.99%, 셋째아들 조현상 효성 전무가 6.73%의 지분을 보유했다. 이들 지분을 전부 합치면 30.87%여서 사실상 절대적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 현준·현문·현상 씨의 지분이 7.0%를 넘지 않는 선에서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경쟁하고 있다. 그리고 조 회장은 세 아들에게 자신이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경쟁에서 이긴 자를 중심으로 지분을 불평등 상속할 것임을 공공연히 천명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 중 둘째 조현문 부사장의 역할이 특히 재미있다. 그는 현준·현상 형제의 견제와 감시 역으로 후계자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현문 씨는 현 경영진의 사실상 거수기 역할에 불과하던 기존 감사의 역할과는 확실히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효성트랜드는 조 감사의 형 조현준 사장이 대표이사를 지낸 바 있으며, 현재도 실권 있는 등기임원으로 회사 경영을 사실상 책임지고 있다. 결국 조현문 감사의 역할은 조현준 사장 및 그 수족들의 회사 경영을 감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경영구도는 또 다른 계열사 효성 인포메이션시스템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결국 맏형 조현준 효성 사장을 감시 견제하는 임무가 조현문 부사장에게 주어진 것. 이 밖에, 효성에바라에서는 막내 조현상 효성 전무가 등기임원으로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와중에 조현문 부사장이 회사의 감사를 맡아 조 전무의 경영을 감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재계는 조 회장이 양육강식이라는 독특한 후계구도를 정립한 후 서로 간의 경쟁을 통해 우수한 경영능력을 드러낸 아들에게 그룹을 물려주려는 의도라고 전망한다. 실제로 효성그룹의 지주회사인 효성의 지분은 조현준 사장, 조현문 부사장, 조현상 전무가 각각 7%를 넘지 않게 보유하면서 누구도 서로에게 소유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들 중 누가 됐든 아버지이자 최대주주인 조석래 회장의 지분 10.2%를 물려받게 되면 바로 효성그룹의 황제로 등극할 수 있다. 두산그룹-지분은 2세가, 권력은 1세가 두산그룹의 지분구조는 상당히 독특하다. 두산그룹의 권력은 박용곤·박용성·박용현·박용만 형제들이 서로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박용성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 결과 승리한 박용현 회장이 현재 두산그룹의 오너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용현 회장에게서 그룹 대권을 빼앗아 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도 그의 형제들뿐이다. 그런데 두산의 지분구조를 들여다보면 용곤·용성·용현·용만 등 용자 돌림의 1세대가 가진 총 지분율보다 원자 돌림의 2세대 지분이 훨씬 많다.
또 두산의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 최대주주는 용자 돌림 1세대가 아닌 2세대 중 박정원 씨다. 그는 두산 지분의 4.15%에 해당되는 102만6842주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2세대 중 최연장자인 박정원 씨를 정점으로 진원·지원·태원·석원 등 5명이 뭉친다면 경영권 다툼으로 두산의 이미지를 추락시킨 아버지 세대 용자 돌림 1세대를 밀어낼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두산그룹은 특별히 2세대 후계자를 키우고 말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두산의 다음 세대 오너는 용자 돌림 형제가 아닌 원자 돌림 2세대가 스스로 정할 문제다. GS홀딩스-인화제일 문화로 일가 화합 GS그룹은 아직 포스트 허창수에 대한 논의가 없다. 내부적으로는 혹시 있을지 모르지만, 이 것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이는 허 씨 가문 특유의 가법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GS그룹의 계열분리 전 LG그룹의 기업문화 인화(人和)는 사실 구 씨 가문이 아닌 허 씨 가문에서 주도했다. 허 씨 가문이 사실상 LG그룹의 전신인 럭키와 금성전자의 자금줄임에도 불구하고 구 씨를 높이고 자신을 숙임으로써 인화의 LG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인화라는 기업문화는 세계 경영학계의 불가사의로 회자될 만큼 주목받는 특이한 케이스다. 그런데 허 씨 가문의 이 같은 인화 전통은 나름대로 엄정한 가법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 법칙 중 일단을 GS홀딩스의 지분구조에서 살짝 엿볼 수 있다. GS그룹 오너 일가의 GS홀딩스 보유 지분은 특이한 법칙이 있다. 차세대 주자인 40대 이하, 허창수 그룹 회장이 속한 현재의 주역인 50대, 전 세대인 60대 이상의 지분율이 30대40대30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40대 이전의 지분구조를 보면 미성년 세대인 만 18세 미만을 기점으로 20대·30대·40대의 총 보유지분율이 전 세대 대비 2배씩 증가한다는 점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지난달 25일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동생 허용수 GS홀딩스 상무의 차남인 5세 허정홍 군에게 27만3000주가 전격 증여되면서 40대 이전 2배 증가와 3대6대3 법칙이 한층 더 완성됐다는 점이다. 마치 허 씨 일가가 GS그룹 지분구조를 이 법칙에 따라 분배하기로 확정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지난달 25일 5세 허정홍 군은 GS홀딩스 지분 0.29%를 물려받았다. 이에 따라 GS홀딩스 지분을 소유한 미성년자는 정홍 군을 포함해 8세의 석홍, 10세 정현, 11세 선홍, 17세 성윤, 19세 원홍 등 6명. 이들이 보유한 GS홀딩스 지분은 모두 178만1959주로 전체 지분의 1.91%에 해당된다. 이는 허 씨 일가 20대 맴버인 진홍·태홍·주홍·치홍·두홍·수연·민경·지안 등 8명의 보유지분 3.0%의 대략 절반에 해당된다. 반면, 허 씨 일가의 30대 멤버가 보유한 총 지분은 6.0%이고, 40대 멤버는 모두 8.0%의 지분을 보유했다. 이를 모두 합치면 18.91%이다. 그리고 허창수 회장 이전에 LG그룹에서 허 씨 집안을 이끌었던 60대 멤버 허동수·허남수·허완구 형제의 지분은 19%이다. 이는 40대 이전의 지분과 동일하다. 살펴본 바에 따르면, 허 씨 일가의 지분구조는 LG 시절을 막론하고 일가 내에서 이같은 세대별 특정 법칙이 깨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LG그룹과 GS그룹의 전 세계적 연구대상이 되고 있는 인화와 화합의 기업문화는 사실 허 씨 집안이 만든 것”이라며 “바로 이 같은 내적 법칙에 따른 상호 협력이 재물·야망·욕심에 의한 불화를 피할 수 있는 힘일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