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7월 1일 시한 내 비정규직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됨으로써 다가올 후폭풍을 예의 주시하면서도, 시행 첫날부터 일부 사업장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해고사례가 나오고 있는 것과 관련해 긴급 처방을 내놓으면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여야 공히 비정규직 해법에 대한 기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서로 ‘네탓 공방’으로 책임을 전가하며 치열한 비방전을 펼치는 등 정치적 이해득실에만 치중하는 바람에 해법 모색에는 등한시한 채 유리한 국면 조성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비정규직법의 2년 고용기간 제한이 이날부터 시행됨으로써 앞으로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불안이 가중될 전망인 가운데, 과연 정부 여당에서 주장하고 있는 ‘100만 실업대란설’이 현실적으로 일어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만약 ‘100만 실업대란’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이는 여야 정치권과 국회의 책임으로 고스란히 남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승수 국무총리는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일을 하루 앞둔 6월 30일 오후 국회를 찾아와 김형오 국회의장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등을 차례로 만나, 계약기간 2년이 지난 비정규직 근로자는 7월 1일부터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을 경우 대량해고 사태가 우려된다며 관련 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법 개정에 대한 협력을 당부한 바 있다. 노동계 “‘100만 실업대란설’은 정부의 자작극” 이 자리에서 한 총리는 “오늘이 지나면 비정규직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며 “경영상태가 나빠서 70만∼100만 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 전환이 안 되면 대량해고 사태가 벌어지며, 당장 2만∼3만 명의 실업자가 늘어나면 사회적 부담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총리는 “경제가 그렇잖아도 어려운데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추가로 실업이 너무 많아진다”며 “이는 비정규직 문제라기보다 온 국민의 문제이니 국회에서 시한 내에 좋은 결정을 내려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김형오 국회의장은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최선의 방안을 찾는 게 기본입장이지만 워낙 민감하고 미묘한 문제라서 정당은 물론 이해당사자 간에도 쉽게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다”고 말했으며,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100만 실업대란을 막아보려고 엄청나게 노력하고 또 민주당도 설득하고 있지만 진전이 없다. 실업대란이 일어나는 게 뻔한데도 눈을 감으려고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2년의 고용기간 제한 조항이 적용된 지 이틀째인 2일 당초 우려했던 ‘실업대란’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 노조 모임인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물론 비정규직법 적용 첫날인 7월 1일에 해고된 노동자도 일부 있었지만 정부 여당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실업대란 수준은 아니었다”며 “이는 2년 전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이후 현장에서는 3개월이나 6개월, 10개월 등 단기계약직을 많이 고용했다가 계약 해지나 재계약을 되풀이해왔기 때문에, 이번에 일어난 계약 해지 사례도 이 같은 일상적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 관계자는 “물론 다들 긴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확인한 바로는 몇몇 사업장에서 계약기간 2년이 넘은 근로자들이 회사로부터 계약 해지나 정규직 전환 등 아무런 통보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변함없이 출근해 일하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민주노총은 노동부가 지방관서의 행정력을 동원해 비정규직 기간제한이 적용된 7월 1일부터 해당 사업체를 조사하고 있지만 7월 2일 현재까지 사례로 발표한 계약해지자는 5곳 28명에 불과해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민주노총은 “이 같은 수치는 정부가 마치 ‘휴거론’을 앞세워 협박하듯 ‘71만 해고설’과 ‘100만 실업대란설’등의 괴담을 힘줘 말하던 때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 모습”이라고 비꼬면서, 현재 쏟아져 나오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근로자의 실직에 대해 “비정규직법의 허점과 공기업 선진화 방안이 빚어낸 정부의 교묘한 자작극”이라고까지 주장했다. 한나라당, 교섭단체 3당 ‘6인회담’ 제의 현재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보훈병원과 산재의료원·KBS·서울시립보라매병원·토지공사·주택공사 등 계약 해지 사업장들은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공공기관이며, 민간 부문의 계약해지는 실증자료가 거의 없다는데 대해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정부가 공공기관을 통해 법 적용에 맞춰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실업대란’을 우려하는 셈”이라며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내세워 예산·인력 감축을 명령해놓고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니 피해를 비정규직에 덮어씌우는 격”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노동부는 비정규직법에 따라 기간제한이 적용되는 근로자는 개인적인 계약일에 따라 개별적으로 정규직 전환과 계약 해지의 기로에 서기 때문에 실직이 한꺼번에 불거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비정규직 근로자를 대변할 목소리가 없어 ‘조용한 실업대란’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어 일정 부분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정규직 전환을 계획했던 사용자들마저 실업대란설이 나오는데다 비정규직법 개정이 무산된 상황이어서 관망세 내지는 계약 해지 상태로 돌아서 정부 여당의 ‘실업대란설’이 오히려 해고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비정규직법 시행 첫날 비정규직법 해법에 대한 기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잔인한 민주당’ ‘무책임한 한나라당’이라며 서로 책임전가에만 몰두하던 여야는 일부 사업장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해고사례가 나오자 뒤늦게나마 긴급처방을 내놓으면서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한나라당은 고위당정회의를 통해 근로자들의 해고를 유보하도록 해당 기업에게 당부하는 한편, 안상수 원내대표는 “비상국면에 들어서 이제는 원내대표들과 정책위의장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며 “3개 교섭단체의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의 6인회담 제의를 정식으로 요구한다”고 밝혀 국회 3개 교섭단체 원내대표-정책위의장이 참석하는 ‘6인회담’을 제안했다. 안 원내대표의 이 같은 제안은 국회 여야 3당과 노동계가 참여하는 ‘5인연석회의’가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이유 때문이지만, 비정규직법을 다뤄야 할 국회환경노동위원장인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유예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상정불가’ 입장을 밝힌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날 박희태 대표는 “민주당이 비정규직법과 관련, 국회에서 보인 추태는 정말 수준 이하의 한심한 작태였다”며 “국회도 안중에 없고 더욱이나 길거리에서 실업으로 고통받을 근로자들도 전혀 개의치 않는 그야말로 정쟁욕에 사로잡힌 막가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민주당을 맹비난하는 등 대야 공세 수위를 격상시키기도 했다. 또한 안 원내대표도 “민주당은 참으로 잔인한 정당”이라며 “30만 명의 채용이 저절로 되지 않겠느냐는 그분들의 사고방식에 경악을 금치 못 하겠다”고 질타했다. 민주당 ‘발목잡기’ 비판여론 차단에 전력 반면,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6인회담 제안에 대해 “양대 노총이 반드시 의견을 개진해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만 비정규직 문제의 대안을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일축하면서 기존의 5인연석회의 틀에서 논의를 이어 간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정부 여당의 ‘100만 실업대란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에 따른 역풍 차단에 주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정세균 대표는 “2년 전에 정부가 제안하고 여야가 합의하여 만든 비정규직법을 시행하기 위해 정부의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과정이 미흡했다”며 “‘100만 실업대란설’로 야당을 압박하면서 개악을 시도하려는 노력을 중단해야 한다”고 정부 여당을 비난했다. 이어 정 대표는 대안으로 “법 시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비정규직 해고 문제와 차별 철폐, 사용사유 제한, 특수고용자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사·정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의 태도 변화 없이는 추가 협상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며 “노사문제·고용문제는 사회적 합의와 조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에 민주당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어려운 입장을 감안해 양대 노총이 참여한 5인연석회의 협상 정신에 따라 추가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밝히면서 협상 재개를 촉구했다. 특히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터무니없는 ‘100만 실업대란설’을 유포해 실업사태를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부 여당의 대책 부실을 쟁점화하는데 주력할 태세다. 이는 정부 여당에서 주장하고 있는 ‘100만 실업대란설’이 확산될 경우 자칫 여론의 화살을 고스란히 맞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이 법 시행 주체인 이영희 노동부 장관에 대해 사퇴 카드를 꺼내들고 공세를 강화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은 대량해고설을 부추겨 해고를 촉구할 게 아니라 예산 집행 등을 통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정부를 유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송영길 최고위원은 “이명박 정권은 법치를 강조해 온 대로 법을 지켜야지 맘에 안 든다고 법을 안 지키도록 선동하면 안 된다”며 “비정규직법 시행에 따라 법 집행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김진표 최고위원도 “비정규직법은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에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과 합의해 만든 법”이라며 “4대강 살리기 예산을 줄여 올 하반기에 4800억 원 정도만 지원금에 편성하면 아무 문제 없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민주당은 정부 여당의 ‘100만 실업대란설’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법 적용이 시작된 이날부터 해고 현황 등을 철저하게 분석해 정부 여당의 실업대란설에 대한 정면 반박에 나선다는 전략을 세우고 당 차원의 비정규직 현장 투어도 검토하는 등 대책 마련에 착수키로 했다. 이와 함께 차별 시정, 특수고용직 보호 등에 대한 입법 정책 마련 작업에 속도를 내는 등 주요 외부연대 대상인 노동계와의 공동보조를 살려 나간다는 복안과 함께, 또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자금 확충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부각시켜 ‘발목 잡기’라는 비판 여론을 차단하는데도 힘을 쏟기로 했다. 한나라당 기습상정이 갈등 증폭시켜 이러한 상황에서 국회 환경노동위 한나라당 측 간사인 조원진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8명은 1일 오후 3시 33분께 비정규직법을 포함한 총 147개 법안을 기습상정하는 바람에, 이후 추미애 위원장이 이날 오후 9시 10분께 상임위 전체회의를 열고 한나라당의 기습상정에 대해 무효를 주장하는 등 비정규직법을 둘러싼 여야 간 갈등이 더욱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를 두고 조 의원과 민주당 측 간사인 김재윤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나란히 출연해 각각 ‘정당한 상정’과 ‘상정 원천무효’를 주장하는 등 뜨거운 장외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조 의원은 “추미애 환노위원장에게 상임위 소집 요구를 했지만 추 위원장이 거부했고, 이후 사회를 거부한 것으로 알겠다는 통보를 했지만 아무 연락이 없어 5시간 33분을 기다리다가 회의를 진행한 것”이라며 기습상정이 정당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어 조 의원은 “이 법이 그만큼 절실하고 지금 개정되지 않으면 많은 피해가 올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기 때문에 배수진을 친 것”이라며 “상정을 해서 문제가 생기면 한나라당과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조 의원은 추 위원장과 민주당을 향해서도 “독선과 아집이라는 부분을 알고 있다”며 “국회가 상임위에 법안을 상정하면 위원장은 상정할 의무가 있다. 상임위원장이 법안 상정을 못하게 하는 법은 없다”고 비난했다. 반면, 김 의원은 “한나라당의 기습상정 회의는 모의 상임위를 열어본 것일 뿐 불법적 회의이기 때문에 무효화된 것이고 법안도 상정되지 않았다”며 기습상정의 원천무효를 주장했다. 그리고 김 의원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로 약속을 하고 나서 조 간사가 일방적으로 혼자 기습상정을 시도한 것”이라며 “부끄럽고 그래서 정치권이 욕을 먹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비판했다. 또 김 의원은 “국회 상임위가 한나라당의 놀이터도 아니고, 이성을 잃고 이런 행위를 했다”며 “이는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일이자 불법행위이기 때문에 국회의 존재를 아예 부정하는 행위”라고 규탄했다. 이울러 김 의원은 “상임위는 하루에 한 번 여는 것이 원칙”이라며 “어제 한나라당이 연 회의는 가짜 회의였고, 우리가 연 회의가 진짜 회의이며 공식적인 상임위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지루한 공방전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야 공히 비정규직법을 계속 방치하다 시행시기 유예라는 미봉책에만 매몰되어 해법을 찾지 못한 정치력 부재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비판과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데 있다. 즉, 책임론 공방과 이해득실 계산 속에 정치를 실종시켰다는 비판도 고조될 전망이어서, 어떻게든 벼랑 끝 타결이 예상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