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호 박현군⁄ 2009.07.14 15:27:22
최근 정부와 청와대의 민생행보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실용성과 진정성 여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국가 최고 통수권자와 정부 수뇌들이 정치적 시늉일지라도 민생을 논한다는 것은 일단 그 자체로 바람직한 일로 평가된다. 정부 특히 금융 당국은 민생과 관련하여 보험 질서 바로잡기에 유난히 관심을 많이 쏟고 있다. 보험 민원에 대한 전례 없는 관심과 모집조직에 대한 비리 조사, 보험사 횡포 여부에 대한 감사 등 올해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보험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지난 정부들과 작년까지의 현 정부를 통틀어 유례가 없다. 이 같은 관심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든 간에, 보험이 점차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의 조치가 모두 소비자 편향적인 것은 아니다. 때때로 보험산업의 유지 발전을 위해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주기도 하고, 자동차보험이나 민영 의료보험 등의 경우 재정의 안정성 차원에서 보험사와 보험 소비자의 바람을 조금씩 저버리고 정부가 이익을 취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관심이 민영 의료보험과 모집조직에 집중되고 있다. 정부의 민영 의료보험 손보기는 사실상 지난 3월부터 시작됐다. 동월 26일 보험소비자연맹 조연행 부회장이 손해보험업계의 실손형 민영의료보험에 대한 의도적 모럴 해저드를 지적한 것이 금융감독원·국회·정부에 그대로 받아들여지면서부터 여러 가지 조치가 나오기 시작했다. 민영 의료보험 손보기 올해 초부터 시작된 프로젝트 당시 보험소비자연맹은 보도자료를 통해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의 가입시 생명보험사들은 가입 전 중복 체크를 의무화하여 실손 중복 가입을 제한하고 있지만, 손해보험사들은 고객의 적극적인 요청이 있기 전에는 별다른 설명 없이 가입시키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와 관련, 조연행 부회장은 “일반적으로 소비자는 내가 다쳤을 경우 각 보험사에서 사고에 대한 약정금액을 모두 탈 것으로 기대하고 여러 개의 보험상품에 중복 가입하지만, 실제 사고를 당하면 모든 중복가입 보험을 합쳐서 실제 사고수습 비용만을 산정해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실손형 상품 광고시 5000만원 보상이란, 보험사고로 실제 손해를 본 것으로 산정된 금액이 6000만 원일 경우 5000만 원까지만 보상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실제 손해액으로 산정된 결과가 500만 원일 경우 그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은 500만 원이 전부라는 설명이다.
조 부회장은 “그러나 손해보험업계 설계사들은 가입자가 가입하는 상품이 정액형 보상 상품인지 실손형 보상 상품인지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청약서 작성을 권유하고, 손해보험사들은 청약서 작성자가 적극적으로 요청하지 않는 한 중복가입 여부에 대한 검사 없이 가입시키고 있다”며 문제점을 제기했다. 그로부터 수일 후인 30일 손해보험협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회원사들이 실손형 손해보험 모집시 언더라이팅(보험사가 모집조직에서 고객이 작성한 보험청약서를 받은 후 보험가입을 허가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단계 과정에서 중복 가입 여부를 반드시 체크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조연행 부회장을 중심으로 보험소비자연맹이 제기한 실손형 보험상품 중복 가입에 대한 문제는 이미 금융감독원·청와대·기획재정부 등 부처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 마침 여당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민생중심·중도주의 주장에 맞물려 민생현안 찾기에 나서던 도중이라, 조 부회장이 제시한 실손 보험 문제가 당국으로부터 심각하게 다뤄지기 시작했다. 칼 빼든 금융당국 강경 입장 아예 한나라당은 조문환 의원을 통해 의원입법 형식으로 실손형 의료보험에서 비슷한 보장의 여러 보험사 상품에 중복 가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지난 5월 7일자로 국회에 제출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만약 실손형 의료보험에 중복 가입한 고객이 보험사고시 실손형 보상에 문제를 제기하고 정액형 보상을 요구할 경우, 보험사가 보험모집시 계약자에게 실손 상품의 특징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고 그에 대한 동의를 받았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정액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조 의원이 제출한 이 개정안은 새로 삽입된 95조 2의 1항에서 “보험회사는 의료실손보험계약을 체결하기 전에…다른 의료실손보험계약의 가입 여부를 확인해야 하며 확인한 내용을 보험 계약자에게 바로 알려야 한다”고 규정했다. 동조 2항은 “보험회사 또는 보험의 모집에 종사하는 자는 다른 의료실손보험계약에 가입하고자 하는 의향에 적합하지 않는 경우 이를 권유하여서는 아니된다”고 적시했다. 이와 관련, 손해보험업계는 “보험사들이 일부러 권유 혹은 강요해서 계약자의 피해를 유도해서는 안 되고, 그 같은 일이 있었다면 하루 빨리 반성하고 고쳐 나가야 한다”며 “하지만 고객이 더 좋은 상품으로 판단해서 굳이 들겠다는데 이를 법적으로 규제하겠다는 것은 시장원리에 한참 어긋나는 부당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조 의원의 법률은 여러 논의절차를 거치는 동안 우리의 의견을 충분히 개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정부·여당에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조문환 의원실 관계자는 “실손형 보상 여부에 대한 계약자의 인지 여부가 보험 분쟁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보험사가 이번 개정안으로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고객에게 실손형 상품의 의미에 대하여 명확히 설명한 후 설명받은 사실에 대한 확인서에 사인 혹은 도장을 받아 오면 된다”고 말했다. 또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도 “사실 손해보험사 실손형 가입에 대한 민원은 전 금융권 민원 주제 중 가장 높은 비율 중 하나”라며 “이제는 질서를 바로잡을 때”라고 말했다. 상당히 강경한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은 아예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달 26일 손해보험사의 실손형 의료보험 가입자를 모집하는 손해보험 법인대리점 4곳을 시작으로 모집조직들을 향해 불완전판매와 민원 정도에 대한 불시 검사에 들어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보험대리점 4곳을 우선 조사한 이유와 관련하여, 금감원 내 민원조사실에 접수된 보험 민원에 대한 분량 정도와 내용 분석 결과 가장 문제가 많다고 판단되는 곳부터 검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의 이번 조사는 모집조직에서 가입 대상자들에게 '”중복 가입했을 경우 보험사고시 이중으로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고지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만약 불완전 판매 사실이 적발되면 현행법에 따라 제재할 계획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금융감독원은 “모집조직들의 불완전 판매 혐의가 적발됐을 경우 보험사의 관리부실 및 은근한 압박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보험사를 조사할 것”이라며 “만약 보험사의 책임이 드러나면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론은 민영의료보험 보장한도 축소 여기까지는 소비자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어쨌든 손해보험사의 잘못된 영업관행에 일침을 놓고 약자인 보험소비자들의 권익을 살리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손형 민영 의료보험의 불완전 판매 관행을 시정해 나가면서 정부는 이 상품의 보장 축소를 추진했다. 손해보험업계의 민영 의료보험 보장한도 축소는 사실 지난 2005년부터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주장해 온 사안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에 선정한 정책과제 중 하나이기도 했다. 손해보험사에서 판매하는 민영 의료보험의 경우 총 진료비 중 환자 본인부담금의 100%를 보험에서 보장해줘 왔다. 어린이 보험이나 감기 혹은 가벼운 질병 등을 보장하는 보험상품에 가입한 사람들은 병·의원에서 입원 혹은 외래로 진료받을 경우 전체 치료비의 60%는 국민건강보험에서 책임지고 나머지 본인부담금 40%는 전액 해당 보험사에서 대신 내주면서 환자가 병원에 내야 할 돈은 한 푼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은 “손해보험사가 본인부담금 모두를 내준다면 물파스만 발라도 될 만큼 가벼운 상처에도, 재채기 몇 번 하다 마는 가벼운 감기에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병원을 찾는 등 과잉 진료가 넘치게 되고, 이는 국민건강보험의 보험금 지출 증가로 이어져 국가 의료보험의 재정악화로 발전하게 된다”는 논리를 펴 왔다. 이에 대해 현 정부는 동의를 나타냈다. 그리고 실손형 민영 의료보험에 대한 다른 문제가 이슈화된 이 시점에서 아예 보장범위 축소도 함께 결정한 것이다. 실손상품 놓고 생·손보 감정 싸움, 생보 완승 실손형 상품에 대한 이 같은 규제는 다분히 손해보험사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보험소비자연맹도 손해보험사의 민영 의료보험 상품을 특정 지어 말했고, 금융감독원의 불완전 판매 검사도 생명보험 법인대리점(GA)이 아닌 손해보험 전문 대리점이 한순간에 침투당했다. 이 때문에 손해보험업계는 충격 속에 분주한 대책 마련을 강구해 왔다. 언론 및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팀은 아예 기자들을 찾아다니며 자신들의 억울함을 기사화해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일 정도이다. 이 같은 손해보험사의 자기 영역찾기 총력전 상황에서, 생명보험사는 오히려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의 보장범위 확대를 요구하는 등 영역 키우기 작업에 돌입하면서 손해보험사와 감정대립이 심각했었다. 이 와중에 손해보험 금융 당국과 정치권의 실손형 보험상품 규제책 추진이 생명보험업계와 손해보험업계 간의 영역 싸움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손해보험사에서 판매하는 민영의료보험의 경우 보장 범위가 본인부담금의 100%였지만, 생명보험사의 민영 의료보험은 본인부담금의 80%밖에 보장을 못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 치료하고 치료비가 1000만 원이 나왔다면, 이 중 60%인 600만 원은 국민건강보험에서 책임져 주고 나머지 400만 원을 환자가 책임져야 한다. 지금까지의 경우 만약 손해보험사의 의료보험에 가입한 상태라면 나머지 400만 원을 보험사에서 책임져 주기 때문에, 환자는 옷을 갈아입고 퇴원하면 됐다. 하지만 생명보험사의 실손보험에 가입했다면, 본인부담금 400만 원 중 80% 한도인 320만 원만 보험사에서 책임져주고 나머지 80만 원은 환자가 내야 했다. 당연히 민영 의료보험은 손해보험사의 생명보험 상품으로 쏠리기 마련. 이 때문에 생명보험사들은 협회를 중심으로 “이 참에 생명보험사의 본인부담금 상한선을 올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보장범위를 손해보험이 10% 낮추고 생명보험이 10% 높혀서 공히 본인부담금의 90%로 통일하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