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호 박현군⁄ 2009.07.21 15:30:16
지난 1999년 6월부터 2002년 11월까지의 기간 동안 삼성화재에서 감행됐던 보험금 편취 비자금 사건이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사건은 경제개혁연대·경제정의실천연합 등 시민단체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삼성화재가 회사 차원에서 형성한 불법 비자금으로 인지했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 상황. 하지만 현재 이 사건은 검찰 수사에서부터 황태선 사장이 개인적으로 착복하기 위해 벌인 공금유용으로 수사가 진행됐고, 최종 판결도 개인 비리로 확정됐다. 이 정도면 예전에 비춰 “삼성공화국, 삼성의 힘”이라는 비판과 자조 섞인 푸념이 조금 흐르다가 결국 조용히 묻혀져야 했다. 그런데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교수가 새로운 사실을 폭로하면서 삼성화재의 고객 돈 횡령 사건은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경제개혁연대가 띄운 한 장의 공문 지난 9일 경제개혁연대는 삼성화재를 향해 한 장의 요청 공문을 공개 발송했다. 공문의 내용은 삼성특검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된 전직 임원에 대한 스톡옵션 부여 취소 요청의 건. 경제개혁연대는 “삼성화재가 황태선 전 대표이사와 김승언 전 전무의 스톡옵션을 취소하지 않았다”며 “이는 명백한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삼성화재와 함께 언론사에도 배포한 공문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황태선 전 대표이사는 2000년 5월 30일 귀사로부터 4만 주의 스톡옵션을 부여받아 2009년 3월 31일 현재 1만8166주의 미행사 잔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라고 적시했다. 또 “같은 날 대법원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김승언 전 전무 역시 2001년 9월 6일 귀사의 스톡옵션 9000주를 교부받아 2009년 3월 31일 현재 7899주의 미행사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라고 폭로했다. 이 공문은 또한 “지난 2008년 6월 17일 상기 2인 등에 대해 스톡옵션 부여를 취소할 것을 요청한 바 있으나 현재까지 스톡옵션 부여 취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는 “그러나 스톡옵션을 부여받은 임직원이 횡령 및 이를 은닉하기 위한 증거인멸 등 법령위반 행위를 한 것은 경영진의 유인구조를 회사의 이익과 일치시키는 장기 성과보상 제도인 스톡옵션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으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이상 마땅히 취소되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의 집계에 따르면, 황태선 대표는 지난 2000년 5월 30일 삼성화재 주식 총 4만 주를 스톡옵션으로 받았고 이 중 2만1834주를 행사하고 1만8166주에 대한 권리가 남았다. 이 권리는 원칙대로라면 내년 5월 30일까지 행사할 수 있다. 또 김승언 전무는 2001년 9월 6일 9000주의 스톡옵션을 받았다. 그는 이 중 1101주를 행사했으며 2011년 9월 6일까지 나머지 7899주에 대하여 스톡옵션을 행사할 권리를 가진다. 스톡옵션은 행사기간 중에 사용하지 않으면 권리는 자동 소멸된다. 이와 관련, 경제개혁연대는 “경영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해서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해줄 것을 기대하며 만들어낸 장기 성과보상 제도가 바로 스톡옵션”이라며 “황태선 대표와 김승언 전무는 비록 인신구속은 면했지만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판결이 남으로써 회사에 손실을 끼친 점이 확정된 이상 스톡옵션 취소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대법원 최종 확정판결의 내용 김상조 교수의 말에 따르면, 경제개혁연대는 황태선 전 대표와 김승언 전 전무가 검찰에 기소되는 순간부터 스톡옵션의 향배에 대해 예의 주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삼성화재에 보낸 공문에도 나와 있다. 공문은 “지난 2008년 6월 17일 귀 이사회에 공문을 보내 상기 2인 등에 대해 스톡옵션 부여를 취소할 것을 요청한 바 있으나…”라고 적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개혁연대가 하필 현 시점에서 삼성화재의 스톡옵션 문제를 건드린 것은 두 사람에 대해 최종적으로 대법원 유죄 판결이 났기 때문이다. 대법원 1부는 지난 11일 삼성화재의 보험금 횡령 재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항소심의 판결은 정당하다”며 원심을 최종 확정했다. 검찰은 황 전 사장이 삼성화재 CEO 직을 수행했던 기간 중 1999년 6월부터 2002년 11월까지 회사의 미지급 보험금 9억820만원을 고객에게 지급한 것처럼 빼돌려 이 중 3억2000만 원은 회사를 위해 쓰고 6억6200만 원을 개인적으로 횡령한 혐의로 기소했다. 이와 관련, 대법원 재판부는 “미지급 보험금을 빼돌려 회사 비자금으로 관리한 행위를 곧바로 횡령죄로 볼 수 없고, 개인적으로 사용한 돈만 횡령한 것으로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결정했다. 스톡옵션 두 번째 이야기 그런데 경제개혁연대는 삼성화재가 황태선 사장과 김승언 전무에게서 스톡옵션을 회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어떻게 인지했을까? 삼성 특검이라는 초유의 이슈 속에서 스톡옵션을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생뚱맞다. 그런데 경제개혁연대가 이 점을 주시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경제개혁연대의 한 관계자는 “삼성에서 대외적 비리 혐의 임원들의 스톡옵션을 회수하지 않은 사례는 삼성화재가 처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의 경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나가면서 확인했는데 역시나였다”고 밝혔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은 삼성증권에 대한 실사 부문 검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동사가 1993년부터 2007년까지 금융실명법과 특정금융거래보고법을 위반했다고 말했다. 이때 금융감독원은 삼성증권의 임직원 179명 중 39명 정직, 9명 감봉, 131명 견책을 요구했었다. 이들에 대해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요구한 조치들이 취해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개혁연대는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요구받은 임원들에게 스톡옵션 회수는 당연하지만 전혀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황태선 사장이 빼돌린 것으로 결정 난 9억8200만 원은 삼성화재의 에니카 자동차보험 가입자들을 위해 사용될 보험료 중 대차료(차량의 수리가 끝날 때까지 랜트카를 빌릴 수 있도록 주는 보험료) 등 고객들이 존재조차 잘 알지 못하는 보험료를 마치 준 것처럼 허위 기재한 후 빼돌린 금액이다. 이 때문에 현대해상·LIG손해보험 등 다른 손해보험사들도 같은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왔다. 이와 관련, 손보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든 보험료는 단돈 1원도 통장을 통해서 보내야 하며, 보내지 못한 보험료는 휴면보험금으로 잡히고, 그 모든 내역은 금융감독원의 검열을 받기 때문에, 시중은행 중 한 곳이 금융실명법 등 현행법 위반을 감수하고 공모하지 않는 한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삼성화재의 경우 당시 삼성증권 황영기 사장이 우리은행장으로 취임하면서 도와주지 않았게느냐고 추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