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날아라, 잡상인>으로 제33회 ‘오늘의 작가상’에 선정된 작가 우승미(35). 그는 200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빛이 스며든 자리>가 당선되며 문단의 주목을 받은 무서운 신인이다. 그가 내놓은 첫 장편소설 <날아라, 잡상인>은 웃기지 못하는 전직 개그맨 철이가 ‘지하철 잡상인계’에 입문하고부터 만나는 인물들의 소소한 이야기와 그들로 인해 점차 성숙되어가는 철이의 모습을 코믹하면서도 철학적인 통찰력으로 담아내고 있다. <날아라, 잡상인>의 등장인물들 가운데 평범한 캐릭터는 단 한 명도 없다. 방송국에서 퇴출당한 꽃미남 전직 개그맨 철이를 비롯하여 지하철 잡상인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미스터리한 판매 실적을 자랑하는 미스터 리, 수치심을 파는 농아 미혼모 수지, 농(聾)·맹(盲)·아(啞) 삼중고의 소유자(?)이자 언어 천재 작가인 수지 동생 효철, 효철의 약혼녀이자 몸도 마음도 지나치게 건강한 ‘참견쟁이’ 지효,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전직 미모의 배우 조지아 여사, 순도 90%의 뻥을 자랑하는 해롱이 아저씨, 부부는 닮는다는 말을 100% 실천 중인 해롱이 아저씨의 아내 달롱이 아줌마 등은 무언가 한 가지 이상씩 결여된 인물들이다. <날아라, 잡상인>은 장애인과 낙오자 등 우리사회에서 소위 ‘소외계층’으로 분류된 이들의 이야기를 신파가 아닌 웃음으로 승화시켜 보여줌으로써 “행복의 잣대는 남이 아닌 우리들 자신만이 세울 수 있다”는 점을 느끼게 해준다. <날아라, 잡상인>의 우승미 작가와 강남의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나 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날아라, 잡상인> 엿보기 주인공 김철이는 인생에 대한 목적도 책임감도 없는, 요즘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심한 20대 무직자이다. 그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조지아 여사의 성화에 못 이겨 지하철 잡상인계의 판매왕 미스터 리의 수제자가 된다. 언젠가 미스터 리의 판매 노하우를 깨우쳐 부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철이는 지하철 잡상인으로서 지하철의 질서를 깨우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던 중, 농아 미혼모 수지를 만난다. 화를 내도 모자랄 판에, 구걸을 하는 차림새가 영 엉망인 수지에게 자신이 그날 번 전 재산 1,000원을 건네는 철이.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잡상인과 바람잡이로 환상의 콤비를 이루면서 발전한다. 그리고, 수지보다 더 딱한 동생 효철이와 그의 약혼녀 지효, 미스터 리의 정체 등을 알게 되면서 점차 세상을 향해 닫았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철이는 지하철에서 수레를 끌고부터 사람들이 자의로 감각을 닫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수지를 알고부터는 귀머거리도 노래를 들을 수 있고 벙어리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수치심과 동정심이 상대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수단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교훈을 깨닫는다. <지하철>이 될 뻔했던 <잡상인> <날아라, 잡상인>의 원 제목은 <웃음>이었다. 그러나, <웃음>은 너무 포괄적이어서 제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과 심사위원들 그리고 출판사로부터 들은 작가는 결국 생각을 고쳤다. 그리고, 에디터가 제안한 제목들 가운데 <날아라, 잡상인>이 최종 제목으로 채택됐다. “저는 <날아라, 지하철>이 좋겠다고 했어요. 지하의 의미와 ‘날아라’라는 상승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거든요. 하지만, 중론이 지하철보다는 잡상인이 낫다는 거였어요. 뭐 잡상인도 지하에서 활동하는 이들이니, 이 사람들이 날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기로 했습니다.” 제목을 <웃음>이라고 지었을 정도로 소설 속 웃음의 비중은 상당하다. 소설은 철이를 ‘나’로 두고, 다른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와 ‘나’의 감정을 전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話者)가 전직 개그맨이니 웃길 수밖에. 때문에, 작품을 읽는 동안 “작가가 얼마나 재밌는 사람일까”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작가는 굉장히 차분하고 조용한 숙녀였다. 시선을 상대와 마주하기보다는 아래를 향해 혼잣말하듯이 흘리는 모습이 굉장히 잘 어울렸다. 이런 류(類)의 작가가 어쩌다 지하철 잡상인의 이야기에 눈을 돌리게 됐을까? “미스터 리와 수지 캐릭터는 출퇴근하면서 직접 본 실존 인물이었어요. 특히, 미스터 리는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와 아주 흡사했어요. 늘 정장을 입고, 랜턴 종류만 팔았죠. 그가 파는 랜턴을 보면서 문득 ‘저 사람이 파는 랜턴이 평범한 랜턴이 아니라 빛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수지는 딱 한 번 만났던 사람인데, 그녀 역시 농아이고 미혼모인데다 깔끔한 옷차림, 예쁜 외모 그리고 쪽지를 돌리는 방식까지 극중 수지와 똑같았죠. 그 밖의 인물은 다 허구이지만, 제 주변인들의 성격이나 삶을 참고했구요.” 소설에 나오는 지하철 잡상인들에 대한 이야기의 대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탄생됐다. “못 팔았다고 절대 기죽지 말 것” “상품을 판다고 말하지 않는다” “분할의 오류를 이용하라” 등 ‘잡상인의 규칙’ 편에 나오는 지침도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 남들보다 관심을 가지고 잡상인을 바라보고, 지하철 잡상인 관련 웹사이트와 블로그, 르포기사 등을 참고한 것을 빼고는 그 흔한 대화도 나눠보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많은 분들이 제가 (잡상인에 대해) 취재를 했거나, 잡상인의 경험이 있을 거라 기대하고 물었다가 아닌 걸 알고 많이들 실망하시더군요. 그렇지만, 제 소설을 자세히 읽어보면 디테일하거나 전문적인 이야기도 없어요. 처음에는 저 역시 다른 작가들처럼 직접 만나 부딪히고 취재를 했지만, 막상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 기대에도 못 미치고 상상력이 제한돼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그 후부터는 일부러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일을 피하고 있어요.”
그의 말대로라면, 극중 철이가 시도 때도 없이 풀어내는 코미디와 서춘일 선생이 하는 슬랩스틱 코미디도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왔다는 말이 된다. 코미디언이 되지 못한 한(恨)을 작품에서 푼 것일까? 궁금해하자 작가는 부끄러운 미소를 지어보인다.
“전적으로 제 남편의 모습에서 따왔어요. 그 사람이 38살인데, 행동은 18살처럼 하거든요. 맨날 춤추고 까불고, ‘움까까 쌥쌥이’도 그 사람이 자주 하는 말이구요. 그리고, 서춘일 선생의 모델은 원로 코미디언 고 서영춘 씨예요. 제가 그분 팬이었거든요.”
특히, <날아라, 잡상인>은 소위 ‘지지리궁상’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웃음’의 코드로 풀어냈다는 데에서 심사위원들로부터 큰 점수를 따낼 수 있었다. 제33회 <오늘의 작가상> 심사위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미현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는 “웃음은 인간의 삶 자체가 비극일 때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마지막 포즈이자 제스처임을 진솔하게 보여준다”고 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피붙이가 아닌 철이를 친손자로 받아들여 키우는 조지아 여사,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수지의 남편이 되어 한가족을 이루고자 하는 주인공 철이를 창조함으로써 혈연이 아닌 비혈연 관계로 뭉친 ‘대안가족의 형성사’를 그리고 있다고 소설가 정미경은 지적했다.
하지만, 작가는 ‘소외계층’이라는 말에 대해 살짝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그는 “나 역시 가난하게 자랐고, 주변인들도 모두 이런(가난한) 사람들밖에 없다”며, “이 책을 읽고 잡상인이나 장애인에 대한 독자의 생각이 변화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소외계층’이라고 명명하는 사람은 자신을 ‘소외계층’과 딱 떨어뜨려 생각하곤 한다. ‘나는 대학도 나오고 배웠으니까, 잡상인이 아니니까, 노숙자가 아니니까’라면서 말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소외계층’이어도 스스로 소외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우리들 역시 그들과 다를 바가 없고,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불행하진 않다”고 열변을 토했다.
후속 작은 트럼펫을 불 수 없게 된 트럼펫 주자 이야기
<날아라, 잡상인>이 다른 소설과 차별되는 부분은 등장인물들을 묘사할 때 나오는,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 긴 문장이다. 이를테면, “엄마는, 칫솔을 열 세트나 사주는 대박 손님으로 만난다 해도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는 나의 엄마는, 아빠가 먼 나라로 떠나자마자 이웃집 애꾸 아저씨와 눈이 맞았는지 등이 맞았는지,…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애 아범이 누군지도 모르는 애를 뱄다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9줄)와 같은 식이다. 짧고 압축적인 문장을 추구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독특한 문체이다.
“단편을 쓸 때는 저 역시 다른 작가들처럼 단문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소설의 내용과 인물이 건조해지고, 분위기도 딱딱하고, 다 읽고 나면 황량한 기분마저 들더군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긴 문장을 써봤습니다. 사실 이런 문체는 우리나라 전통소설의 문체이기도 해요. 이러한 문체가 제 소설의 내용과도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죠. 또 한편으론, 신파인 등장인물들의 삶을 구구절절 이야기하면 신파가 지나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문장은 길지만 최대한 핵심 정보만 전달하는 방식으로 긴 문장을 의도했어요.”
앞으로 어떤 작가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냐는 질문에 필명 이야기를 꺼낸다.
“제 이름이 우승미다보니, ‘오빠 이름이 우승기냐 우승팀이냐’라는 둥 우승과 관련된 놀림을 받곤 했어요. 그래서 필명을 지었고, 처음에 지은 필명이 ‘석연’이었어요. 저녁 석(夕)자에 연기 연(煙), 밥 짓는 연기라는 의미였죠. 저녁에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를 때처럼 독자들이 내 소설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었던 거예요. 그런데, ‘석연치 않다’고 해서 그냥 우승미로 돌아왔어요(웃음). 독자들이 제 소설을 읽고 따뜻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근황을 묻자, 우승미는 “<날아라, 잡상인>과 비슷한 분위기의 경장편 집필 작업에 들어갔다”면서, 천식에 걸려 더 이상 트럼펫을 불 수 없게 된 트럼펫 주자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왠지 “웃기지도 못하면서 웃기는 소설을 쓰려는 소설가라는 타이틀이 붙을 것 같다”는 우려를 덧붙이면서 즐거운 듯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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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미 작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