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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들, 창업정신 배워라”

재벌그룹, 기득권 계속 유지하려면 사회적 책임 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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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128,129호 박현군⁄ 2009.07.28 23:29:05

지난 2008년 현 정권이 공식 출범한 이후부터 줄기차게 추진해온 친기업정책, 비즈니스 프렌들리 기조에 조금씩 균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현 정부는 재계에 편향적이라고 할 만큼 배려하고 있지만, 정작 재벌 그룹들은 한국 경제가 어렵고 정부가 난감한 이 시점에서 투자확대 등으로 보조를 맞춰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경제부처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개발독재’, ‘강부자 정부’ 등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재벌기업들의 편의를 봐줬고 지금도 확장적 경제정책 기조 아래 기업에게 더 많은 혜택을 베풀어주고 있는데도 재계 수장들 즉 재벌 오너들은 정부의 투자협조 요청에 투자심리 위축만을 외치며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강만수·윤증현·김종창 등으로 이어지는 경제개발론자들의 입지가 정부와 정치권에서 더욱 위축되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 70년대까지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정부가 특정 재벌에게 혜택을 몰아준 것도 사실이지만 혜택을 받은 재벌 오너들도 한국 경제의 미래라는 대승적 앞날을 위해 때로는 그룹의 도산을 각오할 정도로 리스크를 무릅쓰고 스스럼없이 몸을 던지기도 했다”며 “하지만 현 정부에서 재벌들의 태도는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고 개탄했다. 정치권 진보진영의 한 관계자는 “현재 재벌 그룹 오너 일가의 마인드가 지난 1970년대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보여주는 현상”이라며 “지금의 기업들은 국가 경제 발전이라는 대승적 마인드가 부족한 이상 현 정부와 같은 정책으로는 결과적으로 서민을 등쳐 재벌을 살찌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사실 정부의 움직임은 절박하다. 재벌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고 국가 외환보유고의 3월 대란설, 6월 대란설, 9월 대란설 등이 흘러나올 때만 해도 정부는 여유로웠다. 재벌 구조조정도 김대중 대통령 시절 이헌재 부총리가 하던 것처럼 정부의 적극적인 주도보다는 금융권을 앞세워 한 발 물러선 듯한 모양새를 취했었다. 정부, 재계에 “투자하라” 압박 외환위기설, 모라토리움 선언설 등이 다음 아고라를 중심으로 인터넷에 유포될 때에도 정부는 적극적으로 해명은 했지만 공권력 투입 등의 움직임은 뉘앙스조차 없었다. 롯데그룹의 숙원사업인 서울시 송파구 제2롯데월드 부지의 초고층빌딩 허가를 내줄 때에도 흔쾌했고 거침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명박 대통령이나 정부가 롯데그룹에 대하여 반대급부를 요구한 것도 아니다. 이는 정부가 정부로서 가지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이후 정부의 태도는 많이 달라졌다. 초조감이 엿보였다. 아예 정부가 민간 재벌들에게 제발 투자 좀 해 달라는 요청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 7월 15일 윤증현 경제부총리는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정부로선 할 만큼 다했다. 하반기엔 민간이 나서줘야 한다. 정부의 노력에 상응하는 움직임을 보여라”고 주문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도 최근 반월시화단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상반기에 정부의 예산으로 경기를 회복시켰다. 이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민간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하반기에 정부가 실제 투입할 수 있는 재정 여력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본예산 및 추경예산을 합쳐 정부가 하반기에 운영할 수 있는 재정여력은 101조3000억 원으로 국회가 승인한 본예산과 추경예산 총 272조8000억 원 중 43%에 불과하다. 이를 가지고 상반기와 같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치기에는 불안한 것이 사실. 재계의 엄살과 콧방귀 그런데 재계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일단 정부가 강력하게 나오고 국가적·국민적 고통을 나눠 져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군소리를 하지 않고 있지만, 맘에 들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재계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금융 당국을 활용하여 은행 채권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M&A를 압박하는 것도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현재의 불안정한 투자환경에서 과감한 투자를 감행하라는 것은 한술 더 뜨는 무리한 요구”라고 주장했다.

재계의 대표적 싱크탱크 기관인 삼성경제연구소의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현 경제상황은) 최악의 관점에서 보면 회복이 분명하지만 정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심각한 위기”라고 지적했다. 전경련의 배상근 상무도 정부의 움직임과 관련하여 “중견기업들의 정상화 몸부림에도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재계의 한 고위 인사는 “삼성그룹의 복제약 분야 진출 결정 등 미래 생존과 사업방향을 위해 그룹 차원에서 투자를 감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환율·국제경기 등에 비춰 내부적 위기상황에 있으면서도 반 강제적으로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그룹도 있다”며 “이러다가 멀쩡한 기업이 더 부실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다른 그룹의 또 다른 고위 인사는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실적이 좋았다고 알려진 기업들도 결국 투자축소·예산절감 등 비용 축소의 결과일 뿐 실질적으로 영업이익이 증가한 곳은 몇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계뿐 아니라 시민단체 그리고 노동계 일각에서도 자본의 입장에서 자본투자 대비 이익률과 리스크만을 고려할 때 지금은 투자하기보다는 움켜쥔 채 관망해야 할 때이며, 윤증현 부총리까지 나선 정부의 투자 압박 요구가 과도하다는 주장이 잘못된 것만은 아니라고 동의한다. 하지만 재계의 이 같은 논리는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재계가 투자환경을 이유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경제침체로 인한 국가적 고통을 분담하지 않겠다는 이기적인 모습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사실 현 정부가 지금가지 재계를 얼마나 많이 배려해줬느냐. 올해 초부터 이명박 대통령과 윤증현 부총리가 주창하고 이끌어오고 있는 적극적 재정투입정책도 결국 기업가들을 배려한 것”이라며 “그만큼 배려를 받았으면 양심과 사회적 신의를 고려해서라도 그러면 안되는 것”이라고 질책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또 다른 관계자는 “현 정권의 정경유착은 지난 개발독재 시절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라고 지적한 뒤 “하지만 당시 재벌들은 나름대로 국가경제 발전이라는 대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있었다”고 말했다. 한강의 기적 일으킨 창업주들의 일대기 전 세계로부터 한강의 기적,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경의와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는 1960년대 이후의 대한민국 경제발전은 현재의 재벌 가문을 일군 창업주들의 자기희생 정신에 기인한 바 크다. 서울대학교의 박효종 교수는 국가경영전략연구원 강연에서 “우리 기업가들 중에서 정주영·이병철·박태준 씨 같은 창업주들을 보면 이윤 극대화를 위해 기업을 했다기보다 민족주의를 위해, 말하자면 한국의 도약을 위해 목숨을 걸고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재벌 창업주들의 애국심과 자기희생, 대승적 관점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범 현대가문의 시조인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다. 정 회장은 1970년대 후반 미국 스티븐슨 대사로부터 현대자동차가 국내 최초의 독자적 기술로 만들어낸 포니의 생산 포기를 직접적으로 요구받았다. 이날 정 회장의 영어 통역으로 동행했던 박정웅 씨는 회고록을 통해 “당시 스티븐슨 대사는 정 회장이 만약 포니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현대그룹의 모든 해외사업에 제동을 걸겠다는 협박을 해왔었다”고 밝혔다. 박 씨의 회고록에 따르면, 이때 정 회장은 “한 나라의 국토가 사람의 몸이라면 도로는 혈관이고 자동차는 혈관에 흐르는 피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 좋은 피를 생산해내는 일은 나의 사명이며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또 현대중공업은 사실 박정희 대통령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사업이고, 1988년 올림픽의 서울 유치단장을 맡은 것은 전두환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더불어 애국 창업자로 손꼽히는 인물이 바로 포스코를 만든 박태준 회장. 사실 박태준 회장이 포항에 제철소를 창업한 배경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였다. 박태준 씨는 그의 회고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제철소 창업을 지시할 때 ‘철은 산업의 쌀이다’라고 한 말을 계속 품었다”고 밝혔다. 또 모 언론사는 지난 1995년 박태준 씨와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포항제철 창업 당시 우리나라는 산업발전을 위해 국가적 힘을 모으고 있던 시점이었지만, 그에 소용되는 철강을 100% 일본 등에서 수입해야 하는 입장이라 한강의 기적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경제개발을 위해서 가장 먼저 제철 및 조강 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에 실패하면 안 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당시 포항제철의 말단 여직원까지도 공통된 인식이었다”고 밝혔다. 한진그룹의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이 망해가기 일보 직전의 부실기업인 대한항공공사를 흔쾌히 떠맡은 것도 결국 애국심이었다. 조 회장의 당시 회고에 따르면, 대한항공공사는 수천억 원의 부실이 매년 쌓여가는 부실기업이었다. 만약 이곳을 그대로 떠안게 되면 한진그룹 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던 상황. 하지만 조 회장은 대한항공공사를 떠맡았을 뿐 아니라, 인수하자마자 그룹의 전 유동성을 동원하여 빚 청산과 신규 비행기 구입을 포함한 사세 확장에 나섰다. 대한항공을 지금의 세계적 항공사로 키운 것은 바로 조중훈 회장의 애국심이었던 셈. 이와 관련, 뉴라이트와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을 되돌리려면 그에 걸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진보세력으로부터 국가 주도권을 가져온 뒤 자신의 분야에서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의 투자는 비단 해당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며, 지금은 국가적 차원에서 기업의 투자가 절실히 필요한 때”라면서 “경제위기로 움츠렸던 기업들도 상황이 좀 나아진 만큼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보수진영에서 말하는 재벌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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