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손해보험시장이 일단 위기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달 손해보험사들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실손형 민영의료보험 시장에서 상당 부분 제약이 가해졌다. 금융감독원은 불완전판매가 가장 많이 의심된다는 손보 법인 대리점들을 급습 감사한데 이어, 급기야 보장한도를 본인부담금의 100%에서 90%로 줄였다. 더 타격인 것은 생명보험사의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의 보장한도가 본인부담금의 80%에서 90%로 늘었다는 점.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의 보장한도가 손보는 본인부담금 100% 전액인 반면 생보는 80%까지로 제한된 것은 지난 2000년 생보업계가 실손형 의료보험시장의 본격 진입을 위해 손보업계와 맺은 신사협정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협정이 지난달 무너졌다. 아직 현 정부와 경제관료들의 후원 속에 진행되는 의료보험 민영화 혹은 의료 선진화 작업이 남아 있지만, 전 국민의 반대와 감시, 미국의 국민건강보험제도 수입 움직입 등으로 인해 제동이 걸린 상태이다. 현대해상의 삼성화재 따라잡기 작전 여기에 삼성화재가 지난 1999년과 2000년 사이에 저지른 보험금 편취 사건도 지난달 대법원 유죄판결과 금융위의 해당 임원 스톡옵션 취소 등 추가 징계 권고가 내려지면서 아직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매출 부문에서 삼성화재가 점차 울상을 짓고 있는 반면, 현대해상이 점차 리딩 손보사의 자리 탈환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영업이익·투자이익(법인세 차감전 순이익-영업이익)·당기순이익 부문에서 삼성화재는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오히려 업계 2위사인 현대해상이 동부화재와 LIG손해보험에 밀리는 듯한 인상이다. 삼성화재와 ‘리틀 삼성화재’로 불리우는 동부화재가 수익성 위주의 경영전략을, 현대해상과 LIG손해보험이 외형 위주의 경영전략을 내세우고 있는 듯 보인다. 삼성화재의 입장에서는 업계 전체의 위기와 함께 자사도 위태로울 수 있는 총체적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하지만 업계의 위기와 불안정은 또한 업계 질서 재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 회사들은 호기로 삼기도 한다. 이로 인해 손해보험사들은 예전과 같이 손보업계의 권익 대처 등을 위해 단결하는 모습보다는 물밑에서 업계 질서 재편을 위한 영업·마케팅전에 더 치열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대해상, “업계 1위를 탈환하라” 현대해상의 행보에서 이 같은 움직임이 엿보인다. 현대해상의 최근 경영전략은 삼성화재가 현대해상과 LIG손해보험(당시 LG화재)에 밀리며 업계 3위~5위를 넘나들던 1990년대에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에 의해 업계 1위 기업으로 치고 올라갈 때 당시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지난 1995년 2월 이학수 당시 그룹 비서실장은 이건희 그룹 회장의 특명을 받고 삼성화재 사장으로 취임한다. 그리고 매출 및 외형중심주의적 경영전략과 끊임없는 영업 독려로 결국 보험료 수입 월 순위에서 현대해상을 제치고 업계 1위 자리를 차지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현재 삼성화재는 이건희 회장의 삼성 비자금 의혹, 황태선 전 사장의 고객 돈 횡령사건으로 의해 고객들에게 이미지가 현저히 실추된데다, 지난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회계상 거액의 투자손실을 봤다. 거기에 삼성생명과 금융 소그룹 내 주도권을 놓고 다투고 있다는 소문까지 겹치는 등 겹 악재를 만나고 있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생명의 연속된 악재가 오히려 현대해상에게는 기회일 수 있다”며 “이 기간 중 매출중심 영업을 통해 삼성화재와 현대해상의 업계 순위를 1990년대로 돌려놓겠다는 계산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현대해상의 한 관계자는 “결국 우리는 매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업계 1위 탈환도 실현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밝혔다. 삼성화재, 매출은 주춤 이익은 극대화 매출실적 측면에서 삼성화재가 2위 현대해상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는 이유는 황태선 전 사장의 횡령사건 이후 실추된 대국민 인지도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화재에서 벌어지던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난 것은 지난 2008년 3월 조준웅 특별검사팀에 의해서. 당월 삼성전자의 매출실적은 당시 한창 전 세계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금융위기와는 상관없이 매출이 13.5% 급등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고객 돈 횡령 사실이 드러난 다음달인 4월 매출이 0.1% 감소하더니, 5월 1.7%, 6월 0.5%로 감소세를 보였다. 더욱이 지난해 9월에는 현대·LIG·동부·메리츠·한화·흥국 등 대부분의 손보사들이 8월 매출실적 대비 0.6%에서 5.6%까지 증가세를 보인 반면, 삼성화재의 매출액만 유독 전월 대비 7.6% 감소세를 보였다. 이 같은 측면에서만 보면 현대해상이 바로 삼성화재를 따라잡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시장점유율 추이가 아닌 이익점유율 추이, 즉 영업이익률과 당기순이익률을 기점으로 본다면 여전히 삼성화재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시장점유율은 동종업계 경쟁사들의 매출액을 모두 합산한 후 합산 매출액에서 해당 회사의 매출규모가 몇 퍼센트나 차지하는가를 나타내는 수치이다. 이는 해당 시장에서 얼마만큼 고객을 더 많이 끌어모았는가를 보는 지표로 활용되기에 시장점유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반면, 이익점유율은 매출액이 아닌 영업이익을 모두 합산한 후 동종업계 전사의 총 영업이익에서 각사가 달성한 영업이익이 몇 퍼센트나 차지하는가를 계산하는 것이다 . 영업이익은 매출액에서 인건비·재료비·관리비 등 모든 비용을 뺀 이익을 말한다. 특히 보험사에서 영업이익이란 보험사 수익 중 자산운용 수익을 제외하고 보험영업을 통해 얻어들인 이익이다. 오히려 2위 현대해상은 3위 LIG손해보험, 4위 동부화재보다도 떨어지면 특정 월에는 중소형 손보사인 한화손해보험·메리츠화재 등보다도 이익점유율 면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특히 올해 6월 손보업계의 시장점유율을 살펴보면, 1위 삼성화재부터 시작하여 현대해상·LIG손해보험·동부화재·메리츠화재·한화손해보험·흥국화재 순으로 나타났다. 2000년 이후 4강 7중 구도에 변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익점유율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본 결과 삼성화재가 부동의 1위를 차지했고, 그 다음이 동부화재·메리츠화재·한화손해보험·현대해상·LIG손해보험 등이었다. 이와 관련, 현대해상은 “올해 6월, 2월, 1월에 GA 채널을 통한 매출이 20% 가량 발생됐다”며 “이 때문에 1년치 수수료를 한꺼번에 주기 때문에 사업비가 과다하게 나간 것처럼 보일 뿐 본래 영업이익률은 평균 10% 이상이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원래 영업 채널에서 보험을 계약하면 그 수당을 12월로 나눠서 월급처럼 주는 것이 보통인데, GA의 경우 1년치 수수료를 한꺼번에 주기 때문에 그달에는 사업비가 많이 나가지만 나머지에는 전혀 지출이 없다는 설명이다. 동부화재 이익점유율 기염 그런데 이익점유율 측면에서 유독 부각되는 곳이 동부화재이다. 동부화재의 이익점유율은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했던 올해 3월과 지난해 3월을 제외하고는 최하 12.5%에서 최고 33.24%를 기록했다. 지난 6월에는 30.8%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해 삼성화재를 제외한 현대·LIG·메리츠·한화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이 기간 중 흥국화재는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했다. 이와 관련, 업계는 “동부화재는 경영방침 자체가 이익 극대화”라며 이를 위해 “본부인원을 최대한 감축하는 등 모든 부문에서 영업활동에 직접 관여되지 않은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융업계를 중심으로 투자 활동을 영위하는 한 전업 투자자는 “보험사는 보험윤리, 직원복지, 보험금 지급 충실이 기본이 되어야 하지만, 투자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제조 및 서비스 업종들처럼 이익을 많이 창출하는, 즉 펀더멘털이 충실할수록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동부화재와 삼성화재에 대해 민원 발생률, 과다한 긴축, 고객 돈 횡령 등 여러 비난의 목소리를 날릴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 이익을 많이 낸다면 우리는 그 종목에 더 많은 투자금을 배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소업체들의 시장개편 움직임 반면, 삼성화재·현대해상·LIG손해보험·동부화재 등 대형 손보사를 제외한 메리츠화재·한화손해보험·흥국화재·그린화재·제일화재 등 중소형 손해보험사들은 실적경쟁이 아닌 M&A를 통한 시장 재편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선, 한화손해보험과 제일화재는 지난달 30일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김관수 한화손해보험 대표이사와 권처신 제일화재 대표이사가 만나 양사 합병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합병으로 제일화재해상보험이라는 이름이 사라지지만, 사실상 양사가 그룹의 주도 아래 한화손해보험이라는 이름으로 대등한 합병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 롯데손해보험은 지금까지 시장에서 계속 고전 중이다. 대한화재가 롯데그룹으로 인수되면서 사명을 바꾸고 새롭게 변신한 롯데손해보험은 롯데그룹의 품으로 들어간 이후에도 대규모 자본투입을 비롯한 그룹의 지원 없이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린화재의 경우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적 투자시장의 침체로 인해 매달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