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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금리결정권 막는 ‘관치금융’ 12년만에 부활?

금통위에 기획재정부 차관 참석…금융권 “중앙은행 독립성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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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53호 김진성⁄ 2010.01.18 11:58:28

일부 경제 전문가들이 “시장은 뜨거운데 한국 정부의 정책은 차가운 겨울”이란 평가를 내놓으면서 하루빨리 ‘출구전략’(침체 기간 동안 시중에 풀린 과도한 유동성을 부작용이 생기기 전에 회수하는 전략)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문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아직도 위기상황”이라며 비상경제체제를 앞으로 6개월 더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국내 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에 12년 만에 기획재정부 허경욱 차관이 참석해 적지 않은 소동이 일고 있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금통위가 금리 인상 같은 출구전략을 실시하지 못하도록 기획재정부가 감시를 시작한 것이고, 이런 양상은 올해 6월 지방선거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며 “과도한 시중 자금을 회수하는 출구전략을 늦추는 관치금융이 계속되면 앞으로 한국 경제는 부동산값·주가 폭등으로 또 경제 거품이 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필승해야 한다는 정부·여당 입장과 ‘정치와 경제는 별개’라는 한국은행 입장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금통위의 가장 큰 역할은 통화신용정책 및 내부 운영에 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것으로, 중앙은행의 기능이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합의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금통위에 정부 기관은 ‘열석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열석발언권(이하 열석권)은 정부 고위 관계자가 금통위 회의에 배석해 정부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권리로, 기획재정부 차관과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만 행사할 수 있다. 지난 1998년 한국은행법 개정 때 도입된 제도지만, 지난 12년 동안 정부는 한 번도 이 권리를 사용하지 않다가 올해 처음 행사한 것이다. 2010년 1월 8일 금통위에서 무슨 일 있었나 기획재정부 허경욱 차관이 지난 1월 8일 금통위 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공항에서 곧바로 금통위 회의가 있는 남대문로 한국은행을 찾은 허 차관을 맞이한 것은 ‘관치금융 반대’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이었다. 시위를 하는 한은 노조원 들 중 일부는 허 차관의 승용차 진입을 막기도 했지만, 큰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허 차관은 10여 년 만의 정부 고위 관계자 참석임에도 ‘처음 왔으니 잘 부탁한다’는 말과 ‘통화정책은 금통위의 고유 권한’ ‘소통을 위해 왔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는 말 외에는 몇 마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금통위 회의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한편, 이날 허 차관과 함께 금융 관계자들의 관심을 받았던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역시 평소의 화려한 달변가 이미지와는 달리 말수를 최대한 아꼈다. 회의 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도 열석권에 관련된 질문이 이어졌지만, 이 총재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10여 년 만의 정부 고위 관계자 참석에 대해 이 총재는 “(금통위원) 일곱 분이 소화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해 금통위의 독립성에 대해 재차 확인하는 듯한 발언을 남겼다. 한편, 금통위는 이날 열린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00%로 동결하기로 의결, 11개월째 같은 금리를 적용하기로 했다. 또한 앞으로 금리 인상이 시작돼 정상적 금리 수준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지금 금리 수준보다 훨씬 높은 금리가 적용될 수 있다는 요지의 발언이 제시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동수 금융위원장 “필요하다면 금융위도 열석권 사용” 금통위에서 열석권을 사용할 수 있는 기관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 둘뿐이다. 이에 기획재정부 차관이 8일 금통위 회의에 참석한 이후 금융 관계자들의 초점은 금융위의 금통위 참석 여부에 자연스레 모아졌다. 이에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14일 “한국은행 부총재가 금융위의 정례회의에 참석하고 있고 지금 당장은 금융위 측이 금통위 회의에 가도 할 얘기가 없다”고 전제한 뒤 “법적으로 금융위의 열석권이 보장된 만큼 발언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이를 행사할 것”이라고 말해 금통위 회의에 참석할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했다. 진 위원장이 열석권을 행사해 금통위 회의에 참석하게 되면 열석권을 가진 기관은 모두 그 권리를 행사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열석권을 행사하는 기관들의 의도와는 별개로 각 금융기관과 금융업체들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경제단체 ‘열석권 행사는 관치금융의 부활’ 한편, 금통위 회의에 기획재정부 차관이 참석한 8일 이후 경제단체들은 일제히 이에 대해 ‘70~80년대 관치금융의 부활’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경실련은 ‘기재부 차관의 금통위 참석을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기획재정부 차관의 금통위 참석이 결국 관치금융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시했다. 경실련은 이 성명에서 기획재정부의 열석권 행사에 대해 “금융당국의 KB금융 회장 선임에 대한 개입 논란에 이어 현 정부의 구시대적 관치금융의 또 다른 행태”라며 “열석권으로 한국은행 독립성·중립성의 훼손, 관치금융의 부활, 보여주기 식의 경제성장 정책이 지속되면서 이에 따라 경제붕괴 등 묵과할 수 없는 경제 현상이 드러날 것”이라고 언급했다. 덧붙여 경실련은 “기획재정부 차관의 금통위 참석은 98년 한은법 개정 이전 재무부와 재경원(기재부 전신) 장관이 금통위 의장을 겸임하면서 통화정책을 정부 입김대로 통제해온 시대로 후퇴함을 의미한다”며 “기획재정부가 금통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무너뜨리고 관치금융 행태를 지속하면 경실련은 시민 행동을 통해 이를 바로잡는 운동에 착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개혁연대도 8일 발표한 논평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공조 체계 강화를 주장한 것은 결국 관치금융을 합리화하겠다는 것”이라며 “특히 기준금리 인상, 한은법 개정 등 민감한 사안을 앞둔 시점에서 열석권을 발휘하는 것은 정부 측의 ‘한은 길들이기’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마무리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재정부 차관의 금통위 회의 참석을 중단시키고 모피아(재무부 출신 인사가 정계와 금융계로 진출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의 관치금융 현황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이에 대한 문책을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같은 날 참여연대도 “정부의 열석권 행사는 한은법 개정안에 포함된 은행의 독립성 강화에 명백히 역행하는 것”이라며 “정책 논의는 한은 내부 기관에 참석해서 하는 것보다는 금융기관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또한 참여연대는 “열석발언권은 한은의 고유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와 한은 사이의 협의 수단이 퇴행하는 과정에서 나온 과도기적 장치”라며 “99년 6월 마지막 참석 이후 10년 동안 점차 퇴화하는 회의 열석권을 정부가 다시 주장하는 것은 결국 한국은행의 금융·물가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고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이에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법적으로 보장된 열석권을 사용하겠다는 것일 뿐 한국은행의 독립성 훼손과는 무관하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또한 출구정책에 대해서는 “아직은 이르다”고 말했다. 반면, 금통위 측 관계자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말 KB금융지주 회장 선출과 관련한 논란이 완전히 잠재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열석권까지 행사한 것은 정부에서는 아무리 다른 뜻이 없다고 해도 ‘오이밭에서 짚신 고쳐신었다’는 평가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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