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임신 5개월까지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고 심지어 해외출장도 3번이나 갔다. 그 중 한 번은 의사가 만류했는데도 그냥 무시하고 간 것이다. # 우리 부서는 갑작스럽게 위에서 내려오는 일이 많다. 오후 4시가 넘어서 일을 받게 될 때는 정말 난감하다. 아이 봐주는 아주머니한테 사정해야 하고, 그마저도 안 되면 다른 친척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피가 마르는 느낌이다. 추석 같은 명절은 여자에게 가장 힘든 시기다. 특히 가정과 직장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이른바 ‘워킹맘(Working Mom)’에게는 명절 때만큼 힘든 때도 드물다. 오죽하면 명절 뒤 이혼 상담이 1.5배로 늘어난다는 통계도 있다. 이런 시기를 맞아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9월 8일 워킹맘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출산과 육아의 부담이 큰 30대 초반 여성이 일과 가사를 병행하기 어려워서 발생하는 ‘경력 단절’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남성의 70% 수준에 불과한 53.9%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OECD의 평균인 61.5%보다 8%가량 낮으며, 가장 높은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을 보인 아이슬란드보다는 20% 이상 차이가 나는 숫자다. 아울러 이 보고서는 여성이 계속해서 일을 하면 국민소득이 한 사람당 14% 가까이 상승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고 있다. ‘워킹맘’에 대한 지원이 시급한 이유다.
여성 경제인의 생산성이 가장 좋을 때는 30대 그러나 이때는 결혼-출산 시기이기도 해 ‘경력 단절’ 현상 일어나면서 경제적 손실 발생 2005년 산업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졸 이상 관리직은 30대 후반 연령대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으며, 그 뒤는 30대 초반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30대 여성들은 가장 생산성이 높은 이 시기에 대거 경제활동을 그만둔다. 특히 30~34세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런 현상을 ‘경력 단절’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이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육아 등 가사와 직장생활을 병행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이 보고서는 밝혔다. 통계청에 따르면 여성의 첫 결혼 및 출산 시기는 2009년 현재 각각 28.7세와 29.9세다. 경력 단절이 시작되는 시기와 첫 출산을 경험하는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30대 초반 기혼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비율은 미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인 78.8%의 절반에 불과한 44.4% 수준이다. ‘결혼하면서 직장 그만’이라는 경력 단절의 현실을 명확히 보여주는 숫자다. 게다가 일단 경력 단절을 경험한 여성이 다시 경제활동을 시작하더라도 예전보다 낮은 ‘고용의 질’을 요구받는 것으로 이 보고서는 밝혔다. 2009년 현재 30대 여성 취업자 중 경력 단절 경험이 있는 취업자의 임금은 그렇지 않은 취업자 임금의 74% 수준에 불과하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1인당 연간 770만 원이나 된다. ‘결혼-출산 뒤 사직’ 때문에 발생하는 손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1% 상승하면 1인당 국민소득이 1% 증가한다는 통계가 있는 만큼, 한국의 여성경제활동 참가율이 OECD 평균인 61.5% 수준으로 오르기만 해도, 2009년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9830달러에서 14% 상승한 2만 2626달러가 된다. 워킹맘들이 가장 바라는 점은 1. ‘임신-출산해도 직장생활에 문제 없었으면’ 2. ‘직장 상사-동료가 이해만 해 줘도 좋을텐데’ 또한 이 연구소는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21개 기업의 71명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설문조사를 해 총 1931명의 응답을 얻어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워킹맘’들은 가장 큰 갈등의 대상으로 회사의 제도-분위기를 꼽았다. 그리고 이어 직장상사-동료, 자녀, 남편 순이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운 조직 분위기’,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한 지원 부족’ 등 워킹맘의 대표적인 7가지 갈등(이하 7대 갈등)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일과 관련된 분야가 더 높았다.
우선 워킹맘들은 ‘임신과 출산에 따른 인사상 불이익’과 ‘만성적인 야근 같은 과다한 업무’ 등으로 가사와 일을 병행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특히 업무 성과와 상관없이 임신과 출산 때문에 평가와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만성적인 야근으로 가사를 돌볼 수 없게 만드는 기업 문화도 큰 문제로 지적됐다. 또한 설문에 응한 워킹맘의 44.4%(복수응답)가 조직 내부에서 자신이 성장하거나 경력개발을 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가 61.4%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관리자들은 같은 문항에 대해 37%만이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 때문에 워킹맘들이 조직에서 성장하기 어렵다’고 응답해 큰 차이를 보였다. 이들 관리자들 중 38%는 여직원이 경력개발에 방해를 받는 이유를 ‘출산-임신으로 인한 경력단절’ 탓으로 돌려 워킹맘들의 시각과는 많이 달랐다.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모성보호 제도’ 역시 워킹맘들의 갈등요소였다. 현재 ‘육아 휴직’ 등이 법으로 보장되지만, 실제 직장에서는 상사 눈치보기(44.1%), 인사상 불이익(37.5%) 등 이유로 모성보호 제도가 유명무실하다고 워킹맘들은 밝혔다. 한편, 워킹맘과 이들의 상사-동료는 워킹맘의 업무상 미흡점에 대해 인식하는 내용이 상당히 달랐다. 워킹맘들은 자신들이 업무에서 미흡한 점으로 ‘자기계발 소홀’(45.9%)을 가장 많이 꼽았다. 반면 상사들은 워킹맘들의 단점으로 ‘갑작스러운 업무 공백 발생(44.9%)’을, 동료들은 ‘야근이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업무를 회피하는 점(44.8%)’을 워킹맘의 문제로 꼽았다. 워킹맘들은 ‘내가 노력 안 해서 문제’라고 생각하는 반면,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은 결혼-출산으로 업무 공백이 발생하고, 야근 등을 회피하는 점이 가장 문제라고 보고 있다는 결과다. 가사와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면, 일단 워킹맘들은 자녀 학교생활에 대해 지원을 잘할 수 없다는 것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초등학생 자녀를 둔 워킹맘은 숙제를 도와주거나 준비물 챙겨주기를 잘할 수 없는 현실에 가장 큰 고충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급식이나 교실 청소처럼 학부모의 노동 봉사를 요구하는 학교에 대해서도 큰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워킹맘들의 46.3%(복수응답)는 가장 시급한 정책으로 ‘학교에서 엄마 노동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제도화하는 것’을 꼽았을 정도다. 학교에서는 오라는데 갈 시간이 없다는 현실이 골칫덩어리란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실 탓에 워킹맘의 44.4%(복수응답)는 △학부모로 구성된 집단에 끼지 못해 자녀의 학교생활이나 사교육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고 △자녀가 또래에서 소외될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보육기관의 질과 비용 문제도 워킹맘들에게 갈등 요소였다. 국공립 보육시설이 비용도 저렴하고 보육의 질도 높지만, 수요에 비해 숫자가 부족해 워킹맘들의 상당수가 ‘워킹맘 안식년제 도입(43.1%)’에 이어 두 번째로 ‘사내 육아지원 시설의 확대(41.7%)’를 희망하고 있다. 남편들이 가사 및 육아 분담에 소극적인 것도 갈등 요소 중 하나다. 전체 응답자 중 ‘배우자가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8.1%에 불과했다. 반면 ‘남편은 거의 하지 않거나 나보다 조금 덜 한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70.2%에 달해 남편들의 가사 분담 태도에 문제가 많다고 워킹맘들은 인식하고 있었다.
‘일-가정 양립의 고통’을 사회가 이해하면서 육아휴가 등을 눈치보지 않고 이용하게 하고 학교에 ‘학부모 봉사 동원’도 줄여나가야 2009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합계출산율이 1.15명에 불과해 OECD 국가 중 아기를 가장 안 낳는 나라다. 한편 소득 수준에 따른 평균 출생아 숫자는 가장 소득이 높은 1분위 계층에서는 1.73명에 불과하지만 가장 가난한 5분위 계층에서는 2.00명을 넘는다.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차원의 출산 지원이 시급한 이유다.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는 “국가나 기업이 워킹맘을 잘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실행한다면 저출산 문제는 물론, 조직 생산성 향상과 미래 인적자원 육성 등 여러 가지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워킹맘을 활용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 지역사회가 힘을 합쳐서 노력해야 하는 이유”라고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미국 포천지가 뽑은 500대 기업 중 여성임원 비율이 높은 상위 25% 기업은 하위 25% 기업보다 재무성과가 높게 나왔다. 그만큼 워킹맘에 친화적인 제도와 문화를 도입하는 기업일수록 기업의 생산성도 높아진다는 결론이다. 이번 조사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지원제도가 있더라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기업의 분위기가 워킹맘에게 갈등요소로 작용한다는 결과가 나온 만큼 관리자-동료-워킹맘 사이에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상호협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보고서는 기업이 워킹맘을 위한 정책을 ‘인력개발’ 관점에서 접근하되, ‘갈등 최소화 전략’ → ‘워킹맘 케어(Care)' → '워킹맘 역량 극대화 전략’ → ‘전 직원의 일과 가정 양립’ 등으로 단계적인 절차를 밟아 추진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부는 기업에 ‘일과 가정 양립’에 대한 인센티브를 더 많이 주고, 임금-보수 체계를 합리화해 △기업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 이용률을 높이는 방법을 고려하고 △공공보육지출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등 양육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이 보고서는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협력해 △지역 차원에서 긴급 돌봄 서비스를 운영하고 △지역 주민의 학교 봉사활동을 통해 학교가 필요로 하는 학부모 인력을 줄여야 한다고 추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