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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신, 수줍은 씨방의 생명과 컬러를 터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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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51호 왕진오⁄ 2011.12.05 10:45:33

화면 위를 가로지르는 굵은 백색의 선묘, 그것은 초겨울에 만난 풀꽃의 말라버린 씨방, 자연이 품은 진귀한 생명의 저장고다. 강렬한 색채로 보는 이의 눈길을 끄는 화가 심영신의 작품에선 씨방이 중심이다. 심 작가는 생명의 저장고인 씨방을 생명의 근원지로 여기며 따스한 색채로 표현한다. 자연이란 어머니의 품 안에서 모든 생명은 탄생, 성장, 소멸의 과정을 반복한다. 작가들은 밝고 순수한 빛으로 약동하는 생명을 표현하기도, 때로는 고요한 생명의 안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의 감성이 자극받는 장소는 이런 자연 순환의 시공간이며, 작가의 미의식이 작품을 지배한다. 씨방을 작업의 주요 모티브로 삼은 것에 대해 심 작가는 “나무나 꽃 같은 자연의 대상을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온실의 꽃이 아니라 야산이나 들판의 이름 없는 꽃들에 애정이 갔다”며 “산책 중 말라버린 작은 씨방을 보게 됐고, 미래에 아름다운 꽃을 피울지도 모르는 그 신비와 경이에 매료돼 씨방을 집중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꽃들은 저마다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내일의 생명을 잉태하고 사라진다. 혹한의 겨울이 되면 꽃들은 죽어 버린 듯 자취를 감추지만 씨방에 잉태된 생명은 봄이 오면 여지없이 “나 여기 있었다”는 듯 다시 뽐낸다.

꽃은 수많은 그림의 대상이 됐지만 대개는 활짝 피어났을 때의 모습만이 그려졌다. 꽃이 먼저 모습을 드러내면 화가가 그 뒤를 쫓아가는 모습이다. 활짝 피었을 때의 꽃이 “나를 봐 주세요”라고 아우성을 친다면, 엄동설한에 생명을 품은 씨방은 아무도 봐 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아무리 자연이, 환경이 자신을 괴롭히더라도 언젠가 올 봄을 기다리며 속으로 꽁꽁 힘을 모은 모습이다. “식물의 씨방은 사람으로 치면 여성의 자궁처럼 생명을 잉태하는 공간 같습니다. 생명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리 강한 저에게 소중함으로 다가온 이유입니다”라는 심 작가는 “요즘 세상이 생명과 자궁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 같아서 더욱 애착이 가는 대상”이라고 말했다. 씨방은 또한 방랑자이기도 하다. “꽃이라는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바람에 쓸려 어디론가 날아가야 한다. 이름 모를 낯선 그곳에서 씨방은 생명의 원동력을 뿜어낸다”는 이치다. 그리스 신화에는 자연의 순환을 상징하는 존재가 있다. 죽음과 재생을 반복하는 자연순환의 화신인 아도니스 정령이다. 아도니스는 해마다 죽었다가 부활하는 초목의 정령으로서, 항상 미소년 혹은 청년으로 그려진다. 심영신 작가의 화려하고 경쾌한 화면은 바로 그런 아도니스의 생동감과 생명력을 내포한다.

인류 역사에서 생명순환을 맡는 주역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다. 여자는 임신과 출산을 통해 자신의 몸으로 직접 생명을 탄생시키고 키운다. 심 작가가 그리는 씨방은 여성의 근원적 모습 또는 여성화가로서의 자신일 수 있다. 탄생과 성장을 보듬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은 세상을 직선 또는 원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자연 속에는 완벽한 직선이나 원형은 없다. 모두 조금은 일그러져 있지만 사람의 뇌만이 세상을 직선 또는 원형으로 파악한다. 그녀의 작품에 직선이 거의 없고 몽글몽글 피어나는 듯한 곡선이 화려한 색채로 그려져 있는 것도 자연을 닮았다. 그래서 그녀에겐 색이 중요한 요소다. “색은 선보다 열등하다는 근대 예술론이 있지만 감각주의 화가는 자유로운 감성의 수단으로 색을 택한다. 화가 심영신의 작업 역시 그런 맥락에서 멀지 않다” 그녀의 작품에 대해 미술평론가 서영희는 “근대 예술론에서 선이 이성이고 색이 감각의 요소라고 했을 때 감각적인 색이 논리적인 선에 비해 열등하다는 상대적 폄하가 있었다. 현대 화가들은 정확한 서술적 재현보다 왜곡과 변형을 수반하는 감각의 표현을 그리고 완결형이 아닌 진행형으로 체험되는 열린 감성의 상태를 선호한다. 감각주의 화가들이 자유로운 감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선택하는 것은 형태와 색의 두 조형 요소 중 당연히 색이다. 강렬한 색채를 구사한 야수주의로부터 전후 표현주의 추상에 이르기까지 주된 미학적 입장이 감각론이다. 화가 심영신의 작업 역시 그런 맥락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고 설명했다.

심 작가는 “나 자신의 확장을 위해 처음 잡은 붓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건강이 안 좋은 상태에서 그림을 시작했지만 이제 우울감도 치유됐고, 마음의 근심도 사라졌다”며 “마음의 상처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심영신은 오랜 경력의 화가가 아니다. 2002년 프랑스 파리의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공부한 데 이어 2006년부터 지금 같은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잔손질이나 재현 위주의 묘사에 마음을 두지 않고 색채 문제에 집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작업에서 색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볼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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