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폐쇄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으로는 박근혜가 아니라 박정희가 나와도 안 된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서울 양천갑. 3선)이 박근혜 전 대표에 기대고 있는 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당내 소장파로 꼽히는 원 의원은 지난 7일 유승민, 남경필 의원과 함께 최고위원직을 동반 사퇴했다. 원 의원은 이날 지도부를 사퇴하면서 “홍준표 체제와 박근혜 대세론으로는 안 된다. 상황을 만든 당사자의 처절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들어 원 의원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홍준표 대표는 물론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발언의 수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세의 깔대기’라는 생각은 착각” 박 전 대표에 대한 원 의원의 거침없는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30일에는 “박 전 대표는 ‘대세의 깔때기’가 아니다”며 “친박계가 지난 공천 때 피해를 입었고 정부의 정책기조에서 일정한 거리를 뒀기 때문에 국민들이 ‘차이가 있다’고 판단해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은 다 같은 한나라당이라고 본다”며 “시간을 더 놓치기 전에 큰 정치를 핵심으로 정면 승부를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의 거리감을 이유로 (박 전 대표) 스스로 과대평가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정치를 안 해서 문제였던 것처럼 박 전 대표도 큰 정치를 안 하고 작은 정치를 하고 있다”며 “정부의 인사 정책에 대해선 비판하면서 ‘대변인 격’이니 ‘비서실장 격’이니 하면서 의전 같은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울타리를 만들고 있는 모습도 깨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박근혜 전 대표가 폐쇄, 수동, 소극적인 모습으로 계속 나가다가는 구(舊)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상황이 계속 어려워질 수 있다”며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주문했다. 원 의원은 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다만 기존의 ‘박근혜 리더십’으로 안 된다. 박근혜 대세론과 한나라당 공천권 등 기득권을 다 내놓는 큰 틀의 자기희생을 전제로 기존 틀을 파괴하고 새로운 틀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 전 대표가 나서면 나름대로 고민해서 나올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일말의 기대를 접지 않고 있다”며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원 의원처럼 당내에서 박 전 대표를 직접 비판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안철수 바람’이 불기 전에는 더욱 그랬다. 대권 잠룡인 김문수 경기지사와 정몽준 전 대표가 종종 박 전 대표를 비판했지만 그 외 박 전 대표를 직접 언급하며 날을 세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원 의원의 발언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홍준표 사퇴 발언은 꼼수” 원 의원은 홍 대표에게도 ‘꼼수’라는 표현을 써가며 맹렬히 공격했다. 그는 홍 대표가 지난달 29일 쇄신연찬회에서 ‘조건부 사퇴’를 내건 뒤 재신임을 받은 것에 대해 “꼼수로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홍 대표가 7일 최고위원직 사퇴에 대해 “사표를 반려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착각도 유분수”라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홍 대표는 8일 쇄신안을 공개했다. 쇄신안에는 ‘재창당준비위원회’ 발족을 비롯해 ‘정책쇄신기획단’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홍 대표는 “공천 절차와 관련해서는 정당사에 일찍이 보기 어려운 수준의 엄격한 기준을 설정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자질이 미달할 경우 원칙적으로 공천심사에서 배제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에 원 의원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총선을 앞두고 당연히 하게 될 일들에 재창당이라는 형식을 씌운 것은 근본적 쇄신이 아니다”며 “막말, 책임회피 등 당대표로서 자격상실을 인정하는 것이 쇄신의 출발”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공천 작업하고 당 정책 다 바꾸고 당헌당규 바꿔 대선주자급 인물들 내세우는 교통정리 작업을 다하는 비상대권을 쥔 대표가 되겠다는 것인가”라고 비꼬았다. 그는 “홍 대표의 ‘욕심’과 실질적 영향력 있는 분의 ‘착각’이 두 바퀴를 이루어 한나라당을 늪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게 하고 있다”며 홍 대표와 박 전 대표를 한꺼번에 비판했다. 작심 발언 따라 ‘박세일 신당’ 참여설도 원 의원은 “개혁적 보수정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을 해체하고 재창당해야 한다”고 말해 수면 아래 떠돌던 ‘신당 창당설’을 끄집어냈다. 이 같은 ‘작심 발언’에 친박 이성헌 의원은 8일 MBC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구체적으로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과 목표가 무엇인지 제시하면서 얘기를 해야지, 무조건 ‘새 집을 지어서 새롭게 시작하자’고 한다면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원 최고위원이 ‘빠르면 1월 달에 반(反)박, 비(非)박, 연찬회 쇄신파들이 모여 창당이 가능하다’ ‘결혼은 시간이 걸리지만 이혼은 금방 된다’는 말을 했다는 얘기를 기자들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실제로 지금 당을 개혁하기 위해 최고위원을 사퇴하고 재창당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재창당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서 그런 말을 한 것인지에 대해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원 의원의 최고위원직 사퇴 배경에 의문을 품은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은 또 원 의원과 ‘박세일 신당’과의 연관성에 대해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박세일 교수가 어떤 것을 근거로 해서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고 하는지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몇몇 사람의 뜻이 맞아서 당을 만들 순 있겠지만 국민적인 명분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며 “보수 세력을 표방하면서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정반대로 나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 의원의 ‘신당 참여설’은 이미 제기된 바 있다. 대(大)중도신당을 표방하는 ‘박세일 신당’이 개혁성과 진정성을 갖고 있는 원 의원에게 합류를 제안했다는 설도 나왔다. 원 의원은 자신의 탈당설과 관련해 “다들 신당을 만들어 옮긴다면 저는 마지막 사람이 될 것”이라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원 의원의 ‘작심 발언’을 놓고 일각에서는 지난 전당대회 때 총선 불출마를 선언, 공천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발언의 수위를 높이는 것으로 분석했다. 인명진 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은 원 의원에 대해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뒤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보니까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어떻게 해야 한나라당이 다시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를 정확히 보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런 가운데 홍 대표는 9일 사퇴를 선언했다. 원 의원이 홍 대표의 사퇴와 함께 박 전 대표의 전면 등장을 촉구한 만큼 다음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