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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보수 삭제’ 논란…새로운 이합집산 계기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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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58호 최정숙⁄ 2012.01.25 11:15:54

지난 4일 한나라당에서는 난데없는 ‘보수’ 표현 삭제 논란이 벌어졌다. 근원지는 김종인 비대위원. 김 비대위원이 한나라당 정강·정책에서 ‘보수’ 표현을 삭제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당내에 큰 파장이 일었다. 박근혜가 당 대표를 맞았던 지난 2006년 개정된 한나라당의 정강·정책 전문(前文) 첫머리에는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하는 한편 퇴행적 잔재를 청산하여 문명사적 전환기를 주도하는 미래지향적 국민정당으로 거듭 태어남을 선언한다’고 명기돼 있다. 김 비대위원은 ‘보수’ 표현 삭제 이유로 “달라진 시대 상황”을 들었다. 보수냐 중도냐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정강·정책도 시대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보수라는 특정 이념을 지향한다고 못 박는 것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것. 김 비대위원은 “요즘 20~40대가 보수란 단어에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守舊)를 떠올리며 거부감을 갖는 상황이고, 총선과 대선에서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대해 승리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다른 나라 보수 정당도 정강·정책에 ‘보수’라고 써 넣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주장했다. “보수 표현은 한나라당 뼈대…당 정체성 흔들어” 그러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조전혁 의원은 4일 “보수라는 단어를 빼 물타기를 하겠다는 건 대단히 위험한 정치공학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김종인·이상돈 비대위원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친이계 의원들 역시 “한나라당의 뼈대나 다름없는 보수 표현을 삭제하자는 것은 당의 정체성을 흔드는 일”이라며 적극 반대했다. 정옥임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정강·정책을 아무리 읽어도 뭐가 잘못됐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고 전여옥 의원은 “한나라당에서 보수와 반포퓰리즘을 삭제하겠다는 김종인 비대위원은 아예 한나라당 철거반장으로 왔다고 이야기하시지”라고 비꼬았다. 진수희 의원도 “김종인 비대위원은 ‘외국 어느 정당도 스스로 보수 정당을 표방한 나라가 없다’고 했는데,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한 영국의 경우에는 당 이름이 보수당”이라고 말했다. 김종인 “발전적 보수, 개혁적 보수라는 식으로 형용사를 써서 보수를 유지할 바에야 차라리 보수 가치를 확실히 지키는 쪽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게 옳다“ 친박계 인사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구상찬 의원은 “당 정체성과 관련된 사안은 전체 의원들의 뜻을 물어보고 결정하는 것이 옳다”며 김 비대위원의 발언이 다소 성급했음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박 비대위원장의 비서실장인 이학재 의원은 “김 위원의 개인 생각을 말한 것으로 박 위원장의 뜻과는 상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비대위 정책쇄신 분과위원인 권영진 한나라당 의원은 5일 국회에서 브리핑을 갖고 “정책쇄신 분과회의에서 보수 용어 삭제 문제에 대해 국민적 의견수렴을 계속해나가면서 더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비대위가 ‘보수’ 표현 삭제와 관련해 계속 논의할 뜻을 비치자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겠다고 했으면서 보수의 가치는 지키지 못하고 진보만 끌어안겠다는 것이냐, 보수가 인기가 없다고 버린다면 그게 무슨 정당인가”라고 비판했다.

김문수 경기지사도 7일 “정체성 없는 비리 인사의 주장에 불과하다”며 김 비대위원을 비난한 뒤 “지금 논할 것은 디도스 사태, 고승덕 의원 고발 문제 등의 해결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정몽준 전 대표 또한 8일 “한나라당을 아끼고 사랑하는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며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 내일 후회할 일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원희목 의원은 “옳다, 그르다를 떠나 당의 정체성과 관련된 사안으로 함부로 얘기할 게 아니다”며 “어느 정도로 얘기가 됐는지 몰라도 그런 얘기를 언론에다 하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의원들은 ‘도덕성 회복이 먼저’라며 보수 표현 삭제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홍준표 전 대표는 “부패한 보수, 탐욕적 보수가 문제지, 참보수가 왜 문제가 되는 것이냐”며 “참보수 운동을 해야지 왜 보수를 삭제하느냐. 이러면 당 정체성이 사라져 보수도, 진보도 아니게 된다”고 말했다. 친박계인 김용갑 전 의원은 “민주통합당 2중대와 똑같이 만들려는 것인가”라며 “60년 이상 이어온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부정하다니 성(姓)을 바꾸자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의 개혁이 중요한 것이지, 이제 와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 가치와 전통을 부정한다면 박근혜 위원장은 아버지가 이뤄낸 박정희 시대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격분했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정태근 의원도 9일 “보수는 특정 이념이 아니라 사회 변화를 합리적으로 수용해 안정적으로 변화시키자는 것이다. 그래서 책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그동안 한나라당은 굉장히 무책임하고 시장경제만 강조해서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보수 삭제 논쟁에 앞서 한나라당이 뭘 잘못했는지 충분히 반성하고 국민에게 고백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 용어가 문제 아니라 도덕성이 문제” 정두언 의원은 11일 트위터에서 “국회의원도 정강정책을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지금도 더 고칠 것도 없이 충분히 진보적이다. 양극화, 비정규직 대책, 유연한 대북정책 등 다 있다. 문제는 사람”이라고 했다. 정병국 의원은 “문제는 한나라당 정강의 보수가 아니라 행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정강의 근간인 보수를 바꾼다면 재창당을 해야 한다” 말했다. 조전혁 의원은 “보수 하면 꼴통이 연상돼서 정강·정책에서 보수란 단어를 뺀다는 것은 붕어빵에 앙코가 잘 쉰다고 앙코 빼자는 격”이라며 “문제는 쉰 앙코를 안 쓰는 것이지 붕어빵에서 앙코를 뺄 일은 아니다”고 했다. 권영세 의원은 12일 “개인적으로는 모든 면에서 외부적 형식보다는 실질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라며 “이념적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 보수 가치에 대한 표현을 삭제하는 부분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수 표현 논쟁보다 도덕성 회복이 우선임을 강조한 부분이다.

보수 표현 논란이 비박·반박계 의원들에게 ‘보수 신당’ 창당을 위한 탈당 명분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실제 친(親)이재오계로 분류되는 장제원 의원은 트위터에 “급기야 중도보수 가치마저 표에 팔아치운다니 내가 마음을 접어야겠다. 이제 정말 떠나야겠다”며 탈당을 시사했다. 이런 가운데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수 표현 삭제에 찬성하는 의견이 54.6%, 반대 의견이 17.6%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보수 삭제 논란이 비박·반박계 의원들로 하여금 ‘보수 가치를 지키는 신당’으로의 창당과 탈당을 부추기는 명분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와 당내 반발이 극심해지자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우려의 뜻을 표시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5일 비대위원회의를 통해 “(정강·정책을) 고쳐갈 필요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국민 삶에 관한 내용이 먼저 나온 뒤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정강·정책의 개정이 국민을 위한 정책의 쇄신보다 앞서는 우선순위는 아니라는 것으로 풀이됐다.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보수 표현 삭제 논란은 11일 비대위 소위가 당 정강에서 보수 표현을 삭제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다시 불거졌다. 이에 박 비대위원장은 “전혀 논의된 것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정강정책에 관한 건 신중해야 한다”고 말해 보수 표현 삭제에 부정적인 입장임을 내비쳤다. 특히 비대위의 보수·선진화 표현 삭제는 사실상 이명박 정부와의 단절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여권의 분열위기도 감지됐다. 파장이 커지자 비대위는 당분간 관련 논의를 유보하기로 했다. 정강·정책개정소위 공동위원장인 권영진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각 위원들이 토론 자료로 만들었을 수는 있지만 보고받은 적도 없고 소위 차원의 공식적인 논의 자료도 아니다”며 보수 표현 관련 논란을 진화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16일 “시대에 맞춰 정강·정책을 다듬을 필요는 있지만, 김종인 비대위원도 사견이라고 했고 국민의 삶이 고달픈데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이 먼저 나와야 한다”며 그간 벌어진 ‘보수’ 표현 삭제 논란을 최종 정리했다. 김종인 “보수 삭제 논란 보며 한나라당 변화 회의” 당초 보수 표현 논란이 촉발됐을 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원희룡 의원은 비대위가 보수 표현을 삭제하지 않기로 하자, “당이 추구할 가치에 대한 자기성찰과 대국민 약속이라는 결과물을 낳지 못한 토론 풍토의 한계와 리더십이 아쉽다. 국민은 보수, 중도, 진보 등 다양한 성향이고, 또 정책마다 보수·진보가 상대적이거나 잣대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정당 스스로 보수라면서 제한되고 고정된 틀로 규정하는 것은 하책”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삭제 의견을 최초로 내놓은 김종인 비대위원은 13일 각종 논의에 대해 “보수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발전적 보수, 개혁적 보수라는 수사를 써서 보수를 유지할 바에야 차라리 보수 가치를 확실히 지키는 쪽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치라는 것은 변화를 따라갈 수밖에 없기에 어느 때는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그러나 당사자인 한나라당이 죽어도 할 수 없다고 하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뜨거운 감자였던 보수 표현 삭제는 논란 끝에 일단락 됐다. 하지만 김 비대위원은 18일 “보수 삭제 논란을 보며 한나라당 변화에 회의를 느꼈다”고 밝혀 또 다른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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