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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미술 칼럼]미술은 사치일 뿐인가?

21세기 전략산업을 이렇게 방치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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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59-260호 왕진오⁄ 2012.02.06 13:10:59

인간은 ‘살기’ 위해 빵이 필요하지만 ‘존재’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빵 즉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이 필요하다. 이것이 문화예술의 실용적 존재가치다. 우리가 숭례문 화재 사건 때 ‘오래된 빌딩’ 한 채가 불탄다는 물리적 현상을 넘어서 분노와 연민을 느끼고 자괴감에 빠져 눈물을 흘렸던 것은 남대문이 갖는 문화적 상징성, 민족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빵과 함께 인간의 존재 의미를 새기는 예술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무형의 것이 되고 만다. 하지만 미술은 시각예술이 갖는 유형적 속성 덕분에 다른 예술과는 달리 시간이 흘러도 원형 그대로 우리와 함께하는 비율이 높다. 이런 특징 때문에 미술품은 문화적 재화인 동시에 경제적 재화로서의 속성을 동시에 지니는 드문 예술장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운명적 속성 때문에 미술품 본래의 가치가 교환가치와 투자가치라는 세속적 가치에 치여 때로는 욕망의,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근본과 원칙이 무시되고 속물주의(snobocracy)와 배금주의(mammonism)가 만연하는 ‘저렴한 사회’일수록 두드러진다. 오늘날 한국에서 미술을 보는 시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공재로서의 미술품 특히 1990년 문화부가 생기고, 90년대 중반부터 문화를 ‘문화라 불리는 산업’ 정도로 치부하는 바람에 이런 왜곡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됐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건강성 회복을 통한 정의 실현을 위해서도 문화 예술 특히 미술에 대한 시각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경제 활동과 관련한 사회적 질서를 다루는 경제학은 인간의 모든 행동과 사고를 실용이라는 측면에서 계량화하고자 한다. 경제의 시각에서 문화예술 특히 미술품을 정의하면 미술품은 ‘공공의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경제학은 재화 혹은 서비스를 크게 사유재(private goods)와 공공재(public goods)로 나눈다. 공공재의 특징은 비경합성과 비배타성에 있다. 비경합성(non-rivalry)이란 소비에 참여하는 사람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각자가 소비할 수 있는 양에 전혀 변함이 없는 재화 또는 서비스를 말한다. 미술품은 한 사람이 보든 여러 사람이 동시에 보든 그 가치가 전혀 손상되지 않기 때문에 비경합성 재화다. 여러 사람이 일광욕을 한다고 햇볕의 양이 줄어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술은 한국에서 ‘부유층의 넋나간 사치재’ 정도로 인식되는 측면도 있지만 과연 그런가? 유명한 미술품이 주는 국민적 자부심, 교육 효과, 디자인산업의 부흥 측면은 왜 무시하나 비배타성(non-exclusive)이란 특정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소비할 수 있는 재화 또는 서비스를 말한다. 일광욕을 즐기려는 사람에게 햇볕을 쪼이지 못하게 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공공의 영역에 미술 작품이 포함돼야 할 이유는 간단하다. 미술은 ‘우리 자신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남에게도 행복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재로서의 풍성한 문화적 환경 특히 미술 환경은 국민 개개인을 철학과 미감을 소유한 자존심 강한 국민으로 만든다. 이렇게 개개인이 소유한 각양각색의 문화적, 예술적 감수성은 다양한 매력적 세계를 만든다. 그 구체적인 근거를 정리해 보자.

가. 후대에 물려 줄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는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인류의 집단적인 편익 요건을 충족시킨다. 특히 역사를 통해 확립돼야 하는 국가적 가치를 세우기 위해서도 미술의 의미와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부의 증가만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나. 시각 예술품 즉 그림이나 조각은 “우리 문화”라는 인식 때문에 국민통합, 민족과 인류라는 공동체 의식의 근간을 이룬다. 그런 점에서 미술품을 포함한 문화적 재화는 국민 통합, 지역-계층 간의 거리를 메우는 매우 정치적인 의미까지 지닌다. 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 출신 예술가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한편 중요한 인류의 문화유산을 내 나라가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긍지를 느낀다. 우리가 백남준의 존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일본인들이 자신의 집에 고흐의 ‘해바라기’나 ‘가셰 박사의 초상’을 소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본이라는 나라 안에 그 작품들에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것이다. 라. 예술은 그 지역은 물론 지역 바깥의 소비자를 모으는 데 기여한다. 스페인이나 프랑스가 관광 수입이 막대한 이유는 관광객들이 단순히 미술관이나 공연 입장권을 사기 때문이 아니다. 관광객들은 그 지역에서 식사와 숙박을 위해 지출하며 지역 상점에서 기념품이나 물건을 구입하며 지역 경제에 기여한다. 마. 일반적으로 예술 작품을 더 잘 이해하고 향유하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학습 욕구가 발생하며, 이에 따라 교육 산업이 뒤따른다. 교육 관련 소비는 사회적 편익을 발생시키는 대표적인 예로서 미술품의 공공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바. 예술 또는 문화 소비에 참여함으로써 각자의 감수성이 증대되는 것은 물론 자부심과 인간으로서의 긍지를 느끼게 된다. 또 주변 사람의 예술적 성취를 통해 인류는 ‘우리는 보통 이상의 존재’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이렇게 광범위하고 궁극적인 예술의 치유 기능은 개인을 넘어서는 외부 편익이다. 사. 창조적인 예술가가 예술 양식의 혁신적인 실험을 통해 변화를 이룩하면 모방으로 이어지고 이는 새로운 예술 분야나 기법으로 인정받는다. 일반적으로 산업 현장의 기술적 혁신은 특허제도로 보호받지만, 새로운 예술 양식은 무한대로 열려 있다. 예술가들은 물론 사회도 그런 변화된 인식과 가치를 수용할 의사만 있다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혁신적인 예술 작품의 형식이나 기법을 차용할 수 있다. 이것 또한 사회적 외부 편익이다. 아. 시각예술 즉 미술의 변화가 일반화되면서 독특하고 새로운 가치와 미감 또한 일반화된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새로운 상품과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이는 곧 새로운 수요와 시장을 창출하며 생산을 유발시키는 외부편익으로 나타난다. <다음 호에 계속> - 정준모 미술비평, 문화정책, 한국미술산업발전협의회 실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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