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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 거리] 전통 살아있는 북촌 vs 상업화 쑥쑥 삼청동

전통과 현대 오가며 눈·입 즐기는 화랑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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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7호 김대희⁄ 2012.04.02 09:59:14

3월도 막바지에 접어든 가운데 봄이 온 듯 싶지만 아직은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하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오후, 햇살에 이끌려 밖에 나가보지만 찬바람이 여전히 쌩쌩 불어온다. 하지만 봄은 왠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설렌다. 장거리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도심에서 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마음에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지역별 화랑가 산책을 지난호의 통의동-효자동-사간동에 이어 이번에는 도심 속에 한옥마을이 보존돼 있는 북촌, 삼청동 지역으로 가본다. 인사동과 경복궁에서 가까운 북촌과 삼청동은 걷기 좋은 곳으로 서로 이어져 있어 한 번에 둘러볼 수 있어 좋지만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천천히 둘러보길 권한다. 삭막한 도심 속 전통의 향기 ‘북촌’ 우리가 흔히 북촌이라고 부르는 곳은 종로구 재동, 가회동, 계동, 삼청동 등에 걸쳐 있던 마을을 통틀어 말한다. 이곳이 청계천과 종각의 북쪽에 있는 동네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족이나 고위 관직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거주했다고 하는데 ‘매천야록’ 권1 상은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 하는데 소론 이하 삼색이 섞여서 살았다”고 기술했다. 즉 북촌이 권세 있는 양반들이 주로 모여 살았던 것과 달리 남산 기슭을 중심으로 한 남촌은 관직에 오르지 못한 양반들과 하급관리, 상인들이 모여 산 동네라는 소리다. 북촌은 경복궁 옆 동네라고 볼 수 있는데 KBS 프로그램 1박2일에서 한옥마을 등이 소개되면서 대중적으로 더욱 많이 알려졌다. 북촌은 워낙 넓은 지역이어서 한적함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의외로 골목 속속들이 갤러리와 맛집들이 많이 포진해 있어 눈과 입이 즐겁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스타벅스를 끼고 오른쪽 골목으로 올라간다. 이 길은 북촌길 중 하나다. 왼쪽으로 사이아트갤러리가 보이고 조금 더 올라가면 갤러리송아당이 있다. 바로 위쪽에는 윤보선 대통령을 배출한 유명한 윤보선가를 볼 수 있다. 이 가옥은 2002년 1월 29일 사적 제438호로 지정됐다. 1870년(고종 7년)에 지은 것으로 윤보선 전 대통령의 아버지가 1910년 무렵에 사들인 뒤 윤보선 전 대통령이 거주했다. 특히 한국 최초의 민주 정당이었던 한국민주당의 산실 역할을 한 장소다. 윤보선가를 지나 바로 정면으로 작은 전시 공간을 가진 갤러리비원과 2층에 갤러리가비가 있다. 오른쪽으로는 마치 돌담으로 지은 듯한 갤러리담이 보인다. 갤러리담에서는 3월 14~31일까지 ‘박진홍 개인전’이 열린다. 박진홍은 2000년에 시작한 첫 전시 이후 이번 전시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얼굴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 자화상에는 작가뿐 아니라 현대인의 고뇌가 여실히 드러난다. 왼쪽으로 내려오면 갤러리 아트링크와 그 맞은편에 이제는 프라이빗 공간 및 개인 오피스텔이 된 PKM갤러리가 철창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다. 조금 더 내려와 아래쪽으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삼청점과 이화익갤러리가 있다. 아라리오갤러리에서는 3월 22~4월 29일까지 ‘김한나 개인전’이 열린다.

위로 올라가는 길에는 많은 음식점이 즐비하며, 왼쪽으로 아트선재센터가 있다. 아트선재센터에서는 다양한 예술가들의 단계적 협업을 통해 수많은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오면서 보기만 하는 관람이 아니라 듣는 관람이라는 독특한 방법을 제시한 ‘김소라 프로젝터 2012’(3월 10~4월 22일), 그리고 남한의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들이 풀어낸 북조선 펑크 로커 리성웅의 일대기를 그린 ‘오픈 콜 #1: 북조선 펑크 로커 리성웅’(3월 17~4월 15일)이 펼쳐지고 있다. 아트선재센터에서 나와 왼쪽으로 소격동, 위쪽으로 삼청동 가는 길과 정독도서관이 있다. 오른쪽 길로 내려오면 동국제강그룹 산하 송원문화재단의 ‘송원아트스페이스’가 한창 마무리 공사 중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동국제강이 송원문화재단을 통해 2006년 25억 원을 출연, 연건평 90평 규모의 2층짜리 양옥집을 전시공간으로 개조한 송원아트센터가 있었지만, 재단 측은 앞으로 이 공간을 갤러리 형태로 운영한 뒤 장기적으로는 미술관으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기업의 비자금 세탁 논란 등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서미갤러리도 이곳에 있다. 그 뒤 골목으로 원앤제이 갤러리와 북촌미술관이 있다. 원앤제이 갤러리에서는 ‘스컬럽쳐 바이 아더 민즈 전’(3월 22~4월 27일)이 열린다. 아래쪽으로 헌법재판소 옆 갤러리에뽀끄에서는 색한지를 일일이 붙이고 잘라서 자연풍경을 만드는 ‘전경호 개인전’이 3월 28~4월 7일 진행된다. 이외에도 가회동60, 이도갤러리, 디아갤러리, 아트스페이스에이치, 인사미술공간 등이 있다.

안국역 2번 출구로부터 시작되는 북촌의 또 다른 볼거리로 북촌한옥마을을 지나칠 수 없다. 특히 북촌8경은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사진 찍기 좋은 카메라 존을 지정해 놓은 북촌8경을 찾아 골목골목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북촌8경을 돌아보던 중 만난 북촌관광 안내도우미는 “북촌이란 이름은 오래된 지명으로 현재 정식으로 쓰이는 지역 명칭은 아니지만 ‘안동 하회마을’이 실제 지명이 아니듯 ‘북촌한옥마을’도 대중적으로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한옥마을은 크게 가회동 31번지와 11번지로 나눌 수 있어 31번지 한옥마을, 11번지 한옥마을로도 부른다”고 덧붙였다. 도심 속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북촌은 자주 찾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고전적인 운치 넘치던 ‘삼청동’ 이제는 쇼핑거리로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 및 아기자기한 카페 골목, 그리고 맛집과 갤러리까지 오감을 만족시키는 삼청동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편안한 거리다. 하지만 최근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나 각종 상업화 매장들이 늘어나면서 삼청동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지고 있다. 얼핏 보면 강남역이나 신사동 가로수길이 연상될 정도로 변했다. 삼청동에서 만난 이지혜 씨(33)는 “삼청동 특유의 고전적인 분위기가 좋아 자주 찾곤 했는데 요즘에는 유명 브랜드 매장이 늘어나면서 거리 분위기가 너무 변하고 있어 실망스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삼청동이란 이름은 도교의 태청·상청·옥청 3위를 모신 삼청전이 있었던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다른 유래로는 산과 물이 맑고, 인심 또한 맑고 좋아 삼청이라고 전해졌다는 설도 있다. 삼청동은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와 큰길 따라 풍문여고 정문까지 와서 옆길로 쭉 올라간다. 왼쪽으로 덕성여중, 오른쪽으로 덕성여고를 지나 더 올라가면 아트선재센터와 정독도서관이 보인다. 여기서부터가 삼청동 카페골목의 시작이다. 아트선재센터 왼쪽길로 소격동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며 그 길 따라 갤러리조선과 트렁크갤러리(김미루 개인전, 3월29~4월30일), 빛갤러리가 있으며 큰길로 나와 아래쪽으로 사간동, 위로는 삼청동길이다. 위쪽으로 학고재갤러리와 갤러리선컨템포러리, 국제갤러리가 있다. 갤러리선컨템포러리에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가볍고 보잘것없는 소재를 사용해 강렬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그 인상의 여운을 잔잔하게 남기는 작업을 보여주는 ‘조소희 개인전’이 3월 8~4월 1일 전시된다.

국제갤러리에서는 ‘에바 헤세 개인전’이 2월 28~4월 7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1960년 에바 헤세가 예일대학교 졸업 직후 뉴욕으로 건너가 첫 스튜디오에서 제작했던 페인팅 작품 중 20점, 그리고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제작한 실험적인 소품들이 국내 처음으로 공개된다. 국제갤러리는 본관과 신관에 이어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제3관 프로젝트갤러리의 개관을 앞두고 있다. 4월5일 3관의 개관과 함께 미국 작가 폴 맥카시의 최근 작품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국제갤러리를 지나면 갤러리진선(김단비 윈도우전, 3월24~4월13일)을 사이에 두고 청와대와 삼청동길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청와대로 올라가는 팔판동에는 갤러리인, 김현주갤러리, 갤러리도스와 공근혜갤러리 등이 있다. 팔판동은 조선시대에 8명의 판서가 이곳에 살았다는 데서 유래됐지만 8명의 판서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삼청동길에 들어서면 많은 차들과 각종 매장들 탓에 상업화에 물들어 몸살을 앓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일단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선아트스페이스와 가모갤러리, 갤러리빔(신하림 개인전, 3월 13~4월 1일), 한벽원갤러리, 갤러리도스(임도원 개인전, 3월 28~4월 5일), 갤러리피프틴, 갤러리예담컨템포러리 등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각종 카페와 옷가게, 음식점 등에 묻혀 갤러리를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이곳의 한 갤러리 관계자는 “삼청동 길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만 갤러리로 들어오는 관람객은 드물다”며 “사실 갤러리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아 마음먹고 찾아오는 사람이 아닌 이상 대부분 스쳐가는 사람들일뿐”이라고 전했다. 카페골목으로 유명한 삼청동답게 여기저기 골목을 돌다보면 예쁘게 꾸민 카페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대형 브랜드와 프랜차이즈 매장이 줄줄이 입점하면서 소규모 상점들은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삼청동 거리의 특색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걷기 좋아서 삼청동길을 자주 왔다는 오정순 씨(29)는 “삼청동의 매력 중 하나가 서로 다른 가게들의 개성과 그에 어우러진 아기자기함이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맛을 느끼기 힘들다”며 “더 이상 변하지 않고 이대로라도 유지됐으면 좋겠지만 이미 너무 많이 변해서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삼청동길 뒤편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가회동 31번지(한옥마을)와 이어지는 곳에 삼청동 전망대가 있다. 삼청동 골목길 관광 제3코스 중 하나인 이 전망대에 오르면 삼청동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여기서 북촌한옥마을로 가거나 길 따라 쭉 내려가면 세계 장신구 박물관과 정독도서관, ‘화개길’ 벽화골목을 볼 수 있다. 사실 삼청동은 미술전시를 감상하기보다 쇼핑이나 카페 및 음식점을 찾아오는 이들이 많은 만큼 혼자보다는 친구나 연인끼리 길을 걷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점점 상업주의에 물들어가는 삼청동에선 이미 예전의 향수를 느끼기 어려워졌다. 봄 햇살은 따뜻해도 추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삼청동길은 앞으로 더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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