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1호 최영태⁄ 2012.07.03 22:07:28
“경제민주화는 학술적으로 문제가 있는 용어”라는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발언에 정치적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79.9%가 경제민주화를 원한다는 새누리당 자체의 여론조사 결과가 있는데도 ‘문제있는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만 하기 때문이다. 이 원내대표는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학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렇다면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org)에 들어가 ‘economic democracy'라고 한 번 쳐 보시길 바란다. 읽기 벅찰 정도로 많은 양이 영어로 빼곡히 쓰여 있다. 흔히 영-미 자본주의를 ‘주주 자본주의(1달러 1표를 원칙으로 하는)’라고 하지만, 영미권에서도 경제민주화를 놓고 엄청난 논쟁이 이뤄졌음을 위키피디아 항목이 말해준다. 1달러 1표냐, 아니면 정치에서처럼 경제에서도 1인1표냐? 한국 사회의 양극화, 재벌독점 등은 모두 1달러 1표라는 주주자본주의 주장이 한국인의 뇌를 장악한 결과다. 올 연말 대선에서 “가진 돈 만큼만 투표권을 주자”고, 즉 100억 원을 가진 사람에게는 투표권 100장을 주고, 1억 원도 못 가진 사람에게는 투표권을 박탈하자는 주장을 어느 정치인이 내놓는다면 아마도 피바람이 불 것이다. 돈 없는 것도 서러운데 투표권을 박탈하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똑 같은 소리를 회사 안에서 하면 지당하신 말씀이 된다. 1주1표의 원리에 따라, 즉 가진 돈의 양에 따라 투표권의 숫자가 달라지며, 주식을 못 가진 노동자 등은 자기가 다니는 회사가 망하게도 또는 흥하게도 할 수 있는 중요 결정에 말 한 마디 섞지 못한다. 단어는 '경제민주화'라고 같이 쓰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들어가면 우파와 좌파의 입장이 완전히 다르다. 위키피디아에 엄청난 분량이 입력된 것은 그만큼 주장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차이가 난다 해도 경제민주화의 기본개념은 “정치에서 1인1표의 원칙이 지켜지듯, 경제에서도 1인1표의 원칙을 확대해나가자”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른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즉 회사 주식은 하나도 없어도 회사의 중요한 이해 당사자인 근로자, 하청업체, 소비자 등도 회사에 발언권을 갖도록 하자는 것도 경제민주화의 중요한 한 가지다. '절대 소수' 입장인 김종인 선대위원장의 의지 관철될 수 있을까 이렇게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경제민주화를, 자신에게 낯설거나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있는 개념’이라고 매도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 무리(당)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사람들이 다수 포진한 새누리당에서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 등 극히 일부 인사들만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가 과연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박근혜 캠프가 문을 열자마자 벌어지는 경제민주화 갑론을박에 대해 국민 일부는 벌써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3일 ‘박근혜 경제민주화 대선까지 간다’라는 기사가 나오자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것은 “기사 제목을 사실대로 수정해라. ‘박근혜 경제민주화 대선까지만 간다’로”였다. ‘경제민주화는 문제있다’는 새누리당 일부의 주장이 "새누리당에 문제있다"는 반론을 자아내고 있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