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 저자 베아트리스 퐁타넬은 시인이자 도상학자이지만, 주부이기도 하다. 도상학자의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신만의 시각을 마음껏 펼쳐놓는다. 또한 그림 속 여성들은 남성 화가들의 눈에 포착되어 그려진 수동적인 모델이 아니라, 당대에 가장 유행하던 옷을 입고, 또 처음 접하는 물건들과 조우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몸짓을 선보인 인생 선배인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그림은 모두 잘 알려진 명화들이다. 하지만 저자가 불러낸 그림 속 여성들과 물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어느새 밤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난방이 형편없었던 중세 시대, 찬 기운이 가득한 방 안에서 막 일어난 부인에게 빨간 양말을 건네는 남편의 모습이 그려진 채색 삽화를 보면 그 시대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진다. 전혀 흥미롭지 않았던 중세시대 채색삽화가 사랑스럽다. 또 랭부르 형제의 그 유명한 호화로운 기도서의 2월 그림에는 추운 겨울 속옷을 입지 않은 중세인이 등장한다. 당시의 어느 한 순간이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전해진다. 베아트리스 퐁타넬 지음, 심영아 펴냄, 이봄 펴냄, 2만7500원, 258쪽.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