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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집에 와서 치료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지”

[세브란스병원 가정간호사 동행 취재]마음과 몸 모두 치료받는 이희수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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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01호 김금영⁄ 2012.11.19 12:50:49

“넘어져서 이렇게 병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집 앞에 나가는 것조차 힘들어. 그래도 간호사가 직접 와서 치료해주니까 다행이고 고맙지.” 11월 7일 방문한 서울 상암동 이희수(93) 할아버지의 집. 집 앞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장경규(79) 할머니는 처음엔 “누구요?” 하면서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집 안으로 기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10평 남짓한 공간에는 할아버지가 눕는 침대와 걷는데 도움을 주는 기구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휠체어를 타고 동네를 산책하던 할아버지가 돌아왔다.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는 기자를 물끄러미 응시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못하고 사람도 잘 알아보지 못한다”며 할머니는 마치 익숙하다는 듯 할아버지를 침대에 눕히고 간호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순간 짧게 잠을 잤다가 다시 깨곤 하는 할아버지 옆에 앉은 할머니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은 듯했다. 이희수 할아버지는 3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젊어서 목수였던 할아버지는 어두운 밤에 화장실을 가려다 창문을 문으로 착각하고 걸음을 내딛다가 크게 넘어졌다. 출혈이 심해 근처 병원에 가니 갈비뼈가 부러지고 몸 안에 피가 찼다고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당시 상황을 회상하던 할머니는 “그렇게 피를 많이 흘리는 건 생전 처음 봤다”며 지금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뇌졸중으로 노인요양병원에서 보낸 고통의 1년 입원 치료를 받다가 노인요양병원에서 1년을 보냈지만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할머니가 집에 돌아가 없는 시간 동안 할아버지는 침대에 혼자서 쓸쓸히 누워있어야 했고, 매일 요양병원에 오기 위해 집을 나서는 할머니 또한 몸이 불편하다 보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요양원에 가는 차비나 병원비가 만만치 않았어. 비싸도 너무 비싸. 또 상태가 별로 나아지지 않더라고. 아무래도 여러 사람이 같이 있으니까 치료, 관리 받는 데 한계가 있었지. 석션기(가래침이나 피 등을 빨아들이는 기계)도 4층에 하나밖에 없어서 가래침을 빼려고 4층까지 가야했어. 이 사람(할아버지)도 힘들었지만 나도 다리가 아파서 너무 힘들었지.”

이때 가정방문 권유를 받게 됐다. 관절이 아파 바닥에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절뚝절뚝 걷던 할머니는 스스로 잘 움직이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온 힘을 다 쓰거나, 매일 요양병원에 가기 위해 무리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또한 할아버지가 눈앞에 보이지 않아 “설마 문제가 생기진 않았을까” 혼자서 마음을 졸였던 일들도 이젠 겪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생활에 지장을 줬던 비싼 병원비 부담도 덜었다. 지금은 자녀들이 보내주는 병원비와 생활비로 할아버지와 함께 가정방문간호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야기를 한창 나누던 도중 이미숙 간호사가 들어왔다. 이 간호사가 들어오자 할머니는 “왔냐”고 퉁명스레 말하면서도 내심 반가워하는 기색을 비친다. 매일 오전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고 있긴 하지만 역시 이 간호사가 와야 안심이 된단다. “요양보호사는 일찍 가버려서 마음에 안 든다”는 등 거침없이 말을 이어가 이 간호사를 폭소케 한 할머니는 “이 간호사가 방문한 지 1년 정도 됐는데 그동안 만났던 간호사들 중 가장 마음에 든다”며 “할아버지 치료도 잘 해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간호사 또한 “할머니, 날씨 추운데 커피 드세요”라며 커피를 좋아하는 할머니를 위해 손수 커피를 준비해오는 등 단순히 환자와 간호사의 관계라기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나러 온 딸 같은 모습을 보였다. 불편한 몸으로 아픈 할아버지를 간호하며 지친 할머니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까지 위로해주고 있었다. 이 간호사는 “처음엔 할머니가 많이 경계를 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픈 할아버지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간호했지만 나아지지 않는 증세에 병원과 의사에 대한 불신이 점차 싹텄고, 동네에서는 아픈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 전염병이 아닌데도 안 좋은 기운을 뿌린다는 냉대에 할머니의 마음은 굳게 닫혔다. 할아버지를 다치게 했던 창문도 원망스러워 지금은 아예 벽으로 메워버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가정방문을 받으면서 할머니의 마음까지도 치료받고 있다. 싹싹한 간호사 만나 마음까지 치료 받아 또한 할아버지도 적절한 치료를 바로바로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날도 할아버지의 코에 연결된 줄이 때마침 막혔었는데 이 간호사가 방문하면서 줄 교체가 즉각적으로 이뤄졌다. 가정방문간호가 없었다면 할머니가 코줄을 교체하기 위해 병원까지 직접 가야 했던 상황이었다. 코줄이 막히면 할아버지가 식사를 할 수 없기에 코줄엔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약이 필요할 때도 약국에 가려면 차를 타고 한 정거장을 가야 하는데, 늘 이 간호사가 약을 미리 챙겨온다. 치료하는 중간 중간에도 이 간호사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할머니를 안심시켰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몸에 며칠 전부터 갑자기 물집이 잡혔다며 보여줬고, 이 간호사는 터진 물집을 소독하면서 “언제든 문제가 생기면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제게 꼭 연락하라”고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고개를 돌리며 “뭣 하러 그러냐”고 툴툴대는 할머니지만 그 모습이 훈훈해 보인다. 세심하고 꼼꼼한 치료를 진행한 이 간호사가 돌아가고 난 뒤에도 할아버지가 요양병원에 있을 때보다는 마음이 편하다. 가정방문을 장기간 받으면서 간호하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니 어느덧 할머니도 전문 간호사가 다 됐다. 누워 있던 할아버지를 앉히는 기술도 터득했고, 어떤 약을 먹여야 하는 지도 알고, 석션기도 능숙하게 사용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은 몰라봐도 자신 만은 알아본다는 할아버지의 곁에 항상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든든하다. 투병 생활이 길어지면서 지쳤던 할머니지만 그래도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할아버지에 대해 예전보다 더 많이 알게 됐다. 19살에 시집와 60년 세월을 같이 보낸 할아버지지만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했다고.

“마지막까지 할아버지 옆에 있기를 바라” “아들이 셋이 있는데 다 몰라보고 나만 알아봐. 또 말은 못하지만 자기 의사 표현은 확실히 하더라고. 햇빛만 보면 그렇게 나가고 싶어 해서 침대에서 뛰어내리기도 해. 그래서 이마를 스무 바늘 꿰매기도 했다니까? 내가 휠체어를 밀고 밖에 나가면 손짓을 하면서 ‘나 여기 가고 싶다, 저기 가고 싶다’ 표현하지.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하기도 해. 침대에 누워 있기 싫으면 베개를 던지기도 하고 참 성질 대단해.” 할머니는 이제 할아버지가 더 이상 아파하지 않고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정성스레 할아버지를 보살폈다. 물을 데워서 음료수를 타주는 등 모든 것들이 할아버지를 돌보기 위한 습관이 돼있었다. 할아버지가 밥을 먹을 때 할머니도 밥을 먹고, 할아버지가 산책하고 싶어 할 때 할머니도 산책을 함께 한다. 할아버지의 수염도 깎아주고, 할아버지가 코줄을 빼버리면 다시 채워준다. 입술이 틀까봐 입술 보호제도 발라주고, 마사지도 해준다. 날씨가 추워진 요즘은 혹시나 감기에 걸릴까봐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고, 산책할 땐 담요를 덮어준다. 남들이 볼 때는 쓸쓸한 노년기를 보내고 있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할머니의 할아버지에 대한 애틋함과 사랑은 참 다정했다. 말을 못 하는 할아버지도 이따금씩 할머니가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았다. 몸이 아프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모두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가정방문 치료를 받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를 더욱 의지하고 있다. 할머니는 인터뷰를 마치고 나가는 기자를 따라나서면서 “차도 못 마시고 가서 어떡하냐”며 연신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집을 방문하기 전 이 간호사에게 ‘독특한 할머니가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왜 독특하다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겉으론 차갑게 대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미소 한 번 보여주지 않았지만 마음은 정말 따뜻한 할머니. 잘 가라며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인사를 하는 할머니를 보고 오래도록 할아버지와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할머니가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답한 말이 생각난다. “할아버지가 나으면 같이 뭐 하고 싶냐고? 그런 거 몰라. 그냥 하루하루 잘 보내야지. 마지막까지 편하게 가도록 옆에 있어주고 싶어.” 가정간호 제도란? 가정간호란 환자가 자신의 집에서 전문 간호사의 의료서비스를 받는 제도이다. 전문자격증을 가진 간호사가 환자를 찾아가 주치의의 처방 내용에 따라 각종 치료 및 처치, 교육, 상담 등을 하는 입원대체 서비스로, 세브란스병원은 1994년 4월부터 가정간호 시범 사업을 시작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주요 대상은 말기 암환자, 뇌혈관 질환, 욕창 치료, 재활치료와 영양장애, 당뇨, 고혈압, 폐질환 등의 만성질환자다. 가정전문 간호사들은 필요할 때 환자의 상처 부위를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해 외래 의무기록에 부착시키거나 직접 주치의에게 전달해 주치의가 환자의 상황을 보고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 증세 변화로 외래 진료가 필요할 경우 외래 진료를 원활히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입원비와 병원 왕복 수고를 덜면서도, 병원 치료에 버금가는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가정간호를 받고 싶으면 입원이나 외래에서 담당 간호사에게 신청하면 의료진이 가능 여부를 판단해 결정한다. 현재 세브란스병원에는 총 9명의 가정간호사가 있다. 1회 비용은 보험적용이 돼 1만370원 정도에 처치, 치료비, 약품비가 보험 20% 수가로 추가된다. 단, 한 달에 8회 방문까지만 보험이 적용된다. 세브란스병원의 가정간호 서비스는 현재 서울 전지역(강동구, 송파구, 강남 일부지역 제외), 인천, 김포, 일산 등 수도권 일부지역에 적용된다.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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