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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복지 칼럼]테크노크라트 시대를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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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0호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2014.05.29 08:49:06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온 국민이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권력형 부패와 불합리를 뼈아프게 느끼고 있다. 법과 규정을 앞세운 탁상공론으로 현장과 괴리된 오늘의 관리 행정으로는 글로벌화 되어가는 과학기술시대에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재난방제를 전담할 새로운 부처를 신설할 것을 제안하면서 관리 행정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순환보직제를 손질하여 공무원의 책임있는 전문직 제도를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문제의 핵심을 바로 보았다는 안도감이 든다.

사실 우리 사회가 고도의 과학기술 시대로 진입하면서 대형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1-2년이 멀다하고 자리를 옮겨 모든 것이 서툴고 책임감도 소명의식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업무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다음 자리를 신경써야하니 전문 지식이 쌓일 수도 없고 업무 인계도 부실해 진다.

선진국들은 이미 철저한 기술행정으로 틀을 바꾸어 ‘테크노크라트’들이 일생을 한 분야에서 보람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체제로 바뀌었다.

공무원의 순환보직제는 구시대의 유물로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들어난 여러 가지 병폐 이외에도 순환보직제로 인한 우리 정부의 실책과 국가적 손실 사례는 수없이 많다.

농산물 시장개방을 다룬 우루과이 협상 8년 동안 우리나라 농수산부 담당국장이 7번 바뀌었고 담당 서기관과 사무관도 2년 이상 담당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 결과 일본은 협상체결 5년 후 1244%의 관세를 적용하여 쌀시장을 개방하고 그들의 쌀농업을 지켜낸 반면 우리는 20년 동안 의무수입량만 년 40만톤으로 올려놓고 아직도 쌀시장개방을 놓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1996년 5월부터 2년 3개월간 진행된 한일어업협정에선 한국 측 협상대표가 2번 바뀌었으며, 1997년 12월부터 2년 10개월간 진행된 한중어업협정에서도 우리 측 대표가 2번 교체되었다. 노련한 상대측 전문가들 앞에서 우리 대표들은 독도문제를 잘못 다루었으며, 양쯔강 수역에서 우리의 조업권을 빼앗기는 등 엄청난 국가적 손해를 초래했다.

원칙없는 공무원 순환보직제는 공무원의 전문성 결여와 눈치보기, 복지부동의 원흉이며 책임행정이 실종되는 이유이다. 일부 정부부처의 국제협력과에는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공무원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도 안전관리를 맡은 담당기관의 전문성 결여와 하청을 맡은 산하기관이나 협회들의 주요 보직은 전문성 없이 법과 규정만 다루던 퇴직 고위공무원들이 차지하고 기술 행정은 뒷전이고 로비와 이권 챙기기에 몰두하는 모습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고쳐야 한다. 공무원의 권력이 큰 만큼 책임도 져야하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법과 규정 제정에 대한 실명제, 국제 협약에 대한 실명제, 안전관리에 대한 책임제 등을 엄격히 시행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제 식구 감싸기로 법은 있으되 처벌받는 공무원을 보기 힘든 사회, 전관예우를 당연시하는 관행들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 국민의 안전과 법질서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범죄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사회가 안전하고 믿을 수 있고 법이 지켜지는 선진사회가 되려면 공직자의 국가 경영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무원 보직순환제를 철폐하고 기술 현장을 아는 책임있는 테크노크라트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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