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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 - 정산 김연식]존재하는 모든 건 그 진실을 말한다

미국 화단에서 호평 ‘불립문자(不立文字)’ 시리즈, 심오한 내면세계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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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4호 왕진오 기자⁄ 2014.06.26 08:51:45

▲김연식 작가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왕진오 기자) 2년 전 ‘칼의 이중성’을 설명하기 위해 면도날 7만 개를 꽂아 완성한 구스타프 말러의 몽유도원도를 선보여 화랑가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가 있다. 정산 김연식(68).

작가는 면도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일반적으로 칼에 대해 터부시 하는 부정적인 인식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칼이라도 강도가 들면 죽음의 칼이요, 요리사가 들면 맛있는 칼이고, 의사에겐 생명의 칼, 여인의 가슴 속에 담기면 순결 정조의 칼이겠지요.”

독일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에 대해 그 동안의 일방적인 편견을 뒤집었다. 어떤 이에겐 죽음의 음률이 다른 이에겐 장엄하고 희망어린 메시지로 들릴 수 있는 것 같은 의미를 전달하려 한 것이다.

“면도날은 결코 죽음의 칼이 아닙니다. 죽음이란 것 자체를 나는 열반에 초점을 둡니다. 새로운 완성이자 소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말러가 당시에 이백의 시를 노랫말로 삼아 ‘대지의 노래’라는 엄청난 곡을 작곡했습니다. 이 분은 굉장히 동양적이고 이백을 알면 불교사상도 들어 있지 않나 싶어 말러의 9번 교향곡을 해석하는 데 몽유도원도가 가장 적합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산김연식전, 쿠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8번(부분), 2012,


올해 초 한지에 먹으로 글씨를 쓴 다음, 그 종이를 여러 번 자른 조각들로 만들어낸 ‘불립문자(不立文字)’ 시리즈를 선보였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진정한 진리는 말이나 글을 써서 전할 수 없다는 ‘불립문자’를 주제로 무와 공의 세계를 선보이는 작가는 한국보다 미국 화단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말아야겠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 지금은 말이 많은 세상이다. 말로 포장된 세상에 내 작품을 글로 보지 말고, 그 본성을 들여다보자는 의미이다. 말보다 마음을 보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김연식, 불립문자, 혼합기법, 210x90cm, 2014.


김 작가는 “서양에서는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분위기에 따라, 시간에 따라 잘라지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씨를 써서 분해하고 재조립해보니 엉뚱한 것이 나오게 됐죠. 동양적 사고를 가져야 이해할 수 있는 의미에 매력을 갖게 됐고, 대단히 현대적이고 동서양의 범위를 뛰어넘는 작품으로 평가해준다.“ 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한국에서의 작품 활동보다 해외로 진출에 힘을 많이 할애하는 이유에 대해 들었다. “국내에서 덜 평가되고 있는 것 같다. 1년에 한 번 정도 개인전을 열고 있는데, 제도권에서 작가를 판단할 경우 선입견이 많다. 특히 학벌을 따지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작가의 작품만을 가지고 평가를 해주어야 하는데, 미국에서는 내 작품을 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차이다”고 밝혔다.

▲김연식, 불립문자, 혼합기법, 210x90cm, 2014.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소통에 관한 해석을 시각화한 ‘불립문자’는 소통의 가장 보편적인 수단인 말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연식 작가가 야심차게 선보이는 ‘불립문자’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소통의 상징인 문자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동시에 그 문자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이 완성되기 위해 한국의 전통종이인 한지에 먹으로 붓글씨를 쓴 다음 그 종이를 여러 번 자르고 다시 그 작은 조각들로 작품을 구성한다.

▲김연식, 불립문자, 혼합기법, 210x90cm, 2014.


‘침묵은 우뢰와 같다’

이로써 글자에 의존해 소통을 하고 있지만, 진정한 소통과 교감을 이루려면 글자의 형식적인 면 그 너머의 원성(原性)에 주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셈이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것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꽃이 빨갛고 잎사귀가 푸른 것도 그대로 진실을 말하고 있으므로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물고기와 새도 그 나름으로 자기가 존재하는 체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것들과 접하면 자연히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산김연식전-면도날을 활용한 지름 1.5m 설치작품. 쿠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부활, 서울 인사아트센터 1전시장, 2012.


이어 제작의도에 대해 “꽃은 말없이 피어납니다. 그래도 인간은 거기서 뭔가를 느낍니다. 그야말로 유마의 ‘침묵이 우뢰와 같다’는 말이 맞습니다. 우뢰와 같은 큰 음성이 침묵이라는 것은 위대한 가르침입니다. 사실은 무언이 아니라 진실의 목소리지만, 음계(音階)가 다르므로 들어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고 말했다.

▲김연식, 불립문자, 169x167x11cm, 혼합기법, 2014.


이처럼 작가의 작품은 외형적인 형식보다는 내면적인 상징성을 먼저 이해할 때, 작가의 메시지를 더욱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그동안 발표되고 있는 작품 전체에 일관되게 보여주는 철학적 배경이 바로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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