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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 융합작가 홍순명]판화·설치미술 넘나들다…회화와 세상사에 꽂히다

메모리 스케이프 연작 2000여점 선보여, 예쁜 풍경보다 사회사건 주변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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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86호 왕진오 기자⁄ 2014.07.10 09:28:32

▲전시장에서 작품과 함께한 홍순명 작가.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왕진오 기자) 밀양 송전탑, 여수 기름유출, 포천 포격연습장 폭발사고…편가르기와 안전불감증이 부른 사회의 난맥상이다. 이곳에서 직접 수집된 오브제들은 현장의 생생한 역사이자 예술이다. 중진작가 홍순명(55)이 이 같은 일련의 기억을 예술로 승화시켜 6월 28일부터 8월 28일까지 경기도 파주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전관을 통해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전시장의 유기적 공간을 하나의 커다란 캔버스로 삼아 지난 10여 년 동안 그려온 2700여 점의 보도사진의 주제 곁 풍경연작 ‘사이드스케이프(sidescape)’와 사고 현장에서 수집한 물건들을 오브제로 만든 신작 ‘메모리스케이프(memoriscape)’ 풍경화를 펼쳐낸다.

“사이드스케이프 작품은 보도 사진에서 발췌된 이미지이다. 작품 속 이미지는 보도 사진의 주제가 아니라 주제 곁 풍경이다. 이런 풍경들은 화면 안에 있지만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 단지 그 안에 있기만 한 풍경이다. 이런 풍경들을 화면의 중심으로 가지고 와 실존 시키는 것이 내 작업이다”

홍순명 작가는 20대에 판화, 30대~40대 중반까지는 설치 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했다. 이후 2004년경부터 회화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 계기가 이채롭다. 

“늘 회화의 매력에 끌렸다. 2002년 무리한 일정으로 전시를 하다 허리를 다쳤다. 작업실에서 보낼 시간이 많아졌고, 그림 그리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풍경화를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온 세상의 구석구석을 돌며 그리는 대신 컴퓨터를 켜고 풍경을 찾게 됐다. 예쁜 풍경보다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더 흥미로워서 인터넷에서 보도 사진을 뒤지기 시작했다.”

▲파주 미메시스 아트뮤지엄 ‘메모리스케이프’ 전시 전경.


그의 연작 ‘사이드스케이프’는 보도 사진의 주제가 아니라 주제 곁 풍경이다. 화면 안에 있지만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 단지 그 안에 있기만 한 풍경이다. 이런 풍경들을 화면의 중심으로 가지고 와 ‘실존’시키는 것이 작가의 작업이다.

홍 작가는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 역할 혹은 사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배경 등의 역할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관념이 부여한 유용성이나 기능성마저 파기시켜 어떠한 목적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순수한 풍경화가 바로 사이드스케이프입니다.”고 말했다.

이어 “1985년부터 파리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의 삶을 시작했고, 1990년대 초 독일의 물리학자인 하이젠 베르크의 책 ‘부분과 전체’를 읽고 크게 감동받아서 이를 작업의 제목으로 쓰기 시작했죠. 이 책은 세상의 중심인 유럽의 백인과 그곳으로 공부하러 온 동양인의 관계를 콤플렉스 없이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작은 것과 큰 것, 중심과 주변, 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 등은 어떻게 규정지어지며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등은 이후 계속되는 내 작업의 화두가 된 것입니다”고 말했다.

최근 시작한 작업 ‘메모리스케이프’는 홍 작가의 작업 주제에 있어 인간과 인간의 삶이었음에도 정작 우리 삶에 밀착되어 있는 일상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은 작가 자신의 반성의 차원에서 나오게 된 작업이다.

▲아쿠아리움-1402, 60x50cm, 캔버스 91개, 2014


홍 작가는 ‘사이드스케이프’작업을 통해 지난 10년간 수많은 사건들의 정보를 얻게 된다. 그 중 송전탑 문제가 있었던 밀양과 전남의 봉두마을, 기름 유출 사고가 있었던 여수, 폭발사고가 있었던 포천의 포격 연습장 등 여러 곳을 다니며 뒹굴고 있던 다양한 물건들을 수집했다.

쓰레기에 가까운 물건들을 얼기설기 엮어 천을 씌워서 그 위에 현장의 한 부분을 그렸다. 한 지역의 사건이나 풍경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오브제가 바로 ‘메모리스케이프’인 것이다.

하나의 진실만을 요구하는 세계에 대응하는 홍순명의 예술은 단 하나의 고정된 리얼리티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작가에게 인간이란, 변화하는 세계를 포착하는 주체이며, ‘지금 이곳’ 즉 변화하는 개개인의 시점과 장소가 리얼리티의 기준이 된다.


허위적 진실의 시각화, 그리고 판단

홍순명의 세계관이 여실히 반영된 그만의 회화 스타일은 아카데미즘에 기반을 둔 정통적 회화 스타일을 전복한다. 19세기까지 전통적 회화가 손으로 만져질 것만 같은 꼼꼼한 실체 묘사를 통해 대상의 모방적 재현을 추구했다면, 홍순명의 회화는 손으로 쉽게 만질 수 없는 형체가 뚜렷하지 않는 상태를 형상화하고 있다.

캔버스는 부주의하고 피상적으로 대상을 파악한 듯 보인다. 얇은 붓질, 아무렇게나 그린 듯 한 형태들, 빛과 공기가 떠도는 분위기. 이러한 테크닉은 모든 것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해 간다는 작가의 현실 인식을 드러낸다. “견고하고 단단한 것에는 거짓이 있기 마련”이라는 자신의 말처럼, 홍순명의 회화 속 이미지는 끊임없이 부유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업들은 매스 미디어가 일상을 점령한 현대 사회에서 스펙터클한 이미지의 이면을 담는다. 작가는 매스 미디어가 전달하는 ‘객관적 사실’이란 실은 재구성된 가공 현실임을 폭로한다. 홍순명의 ‘메타-풍경’은 허위적 진실을 시각화하여, 객관적 사실이 갖는 환상에 대해 우리 스스로 자문하게 한다.

- 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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