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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복지 칼럼]농민이 못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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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93호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2014.08.28 08: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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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파노라마에서 파헤친 친환경농업 지원사업의 부조리와 부정부패 행위가 보도되면서 우리 농정의 총체적 부실과 ‘농피아’에게 수탈당하는 농민의 모습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검찰이 발표한 친환경농산물 인증사업 관련비리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관련자와 현장 인터뷰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재조명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하향식 밀어붙이기와 여기에 기생한 이익집단들의 부정행위가 막대한 예산낭비와 친환경 농업의 몰락을 불러온 실상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친환경농업은 다량의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관행 농업과 농산물에 불안감을 가진 소비자들에게 좀 더 안심할 수 있는 식품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외국에서 밀려들어오는 값싼 수입 농산물에 대해 우리 농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으로 친환경농업이 크게 부각되었다.

그러나 농민은 준비되어 있지 않은데 정부와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무리한 목표치를 정하고 밀어붙이는 바람에 실무자들은 수치를 조작하고 공인 인증기관과 농자재 납품회사들은 이 일을 도우면서 농민에게 돌아 가야할 지원금을 가로채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놀라운 것은 동네 이장이나 작목반장이 주민들의 도장 꾸러미를 가지고 있어 농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친환경 농민으로 등록되고 농자재를 구입한 것으로 된 것이다. 서로 믿고 살던 농촌사회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니 민심은 사나워지고 불신만 커지고 있다.

매년 수조원의 농업지원 예산이 책정되는데 그 많은 돈을 쓰면서 전체 국민의 6%밖에 안 되는 농민 대부분이 저소득 영세민으로 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친환경농산물 인증사업 관련비리는 우리 농업 농촌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의 일면을 나타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많다.

몇 해 전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이 쌀직불금을 받아 챙긴 일이나 농민에게 지급되어야 할 지원금이 도중에서 엉뚱한 곳으로 새어나가는 사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나이 많고 정보에 어둡고 도장까지 이장에게 맡기고 사는 선량한 농민들을 보호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농업보조금 비정상의 정상화 추가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농업 보조금 부당사용이 3회 이상 적발되면 보조금 지원대상에서 영구 제외되고, 부정사용 금액을 환수하고, 보조금사업 집행 관리의 통합 정보관리시스템 구축, 보조금으로 취득한 재산을 임의로 처분하는 것을 막기 위한 부기등기제도 도입, 농기계 등의 고가 구매와 보조금 편취 횡령을 예방하기 위한 표준단가제 대상 사업의 확대 등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진 = 연합뉴스


그러나 우리 농촌사회에 만연해 있는 농정비리는 법이 없고 제도가 잘못되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관리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정직하지 못하고 신뢰할 수 없는 행위에 기인하는 것이다. 정부의 지원이나 복지 혜택은 신뢰가 쌓인 사회에서 가능한 일이다. 거버넌스가 결여된 사회에서 복지예산을 높여놓고 나라가 파산한 그리스의 예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제대로 쓰이지 않을 때에는 그야말로 독이 되는 것이다.

친환경 유기농은 식품안전에 불안감을 가진 현대인의 트라우마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이지만 국가의 식량안보를 공고히 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친환경 유기농을 강조하면서 관행 농업에서 생산 공급되는 식품에 대해 의도적으로 불안감을 부추기는 행위는 더욱 경계해야 한다. 국민의 대다수가 일반 농산물을 믿고 먹고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유기농을 국가의 주요 농업정책으로 몰고 가면서 각종 부정부패를 양산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행태를 보면서 농민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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