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전시]가슴드러낸 모나리자부터 치맛바람 마릴린 먼로까지
“한 번 웃어보자”는 변종곤 ‘리:콜렉션’전
▲변종곤 작가가 자신의 작품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 = 더페이지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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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금영 기자) 고고한 모나리자가 한쪽 가슴을 드러낸 채로 신용카드를 품에 안고 미소 짓고 있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여배우 마릴린 먼로 조각상의 치마를 들척이는 작은 선풍기 작품이 놓여 있다. 이밖에도 슈퍼맨 복장의 예수, 샤넬 향수병을 들고 있는 인디언 등 익숙한 인물들이 낯선 자세와 복장, 품행으로 턱턱 쉬지 않고 나타난다. 더페이지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변종곤 작가의 개인전 ‘리: 콜렉션(RE: COLLECTIONS)’의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는 주로 뉴욕에서 활동해온 작가가 30여년 만에 한국에서 선보이는 첫 대규모 전시회다. 2014년 광주와 포항 시립미술관에서 각각 전시를 갖기는 했지만 큰 규모의 개인전은 33년 만이라 더욱 주목받는다.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난 작가는 1978년 제1회 동아일보 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며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유신 시절 철수된 미군 공항의 모습을 그렸다는 이유로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힌 뒤 도망치듯 미국 땅을 밟았다. 미국에서 “호주머니에 죽음을 넣고 다녔다”고 할 정도로 가난하고 힘겨운 생활을 했지만 창작의 자유를 만끽하며 창조한 작품 60여 점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고 있다.
▲가슴을 훤히 드러낸 모나리자가 신용카드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그의 작품은 해학과 풍자가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서 유독 화제가 되고 있는 벗은 모나리자 시리즈도 그렇다. 미국에서 생활한 작가는 물질만능주의에 회의를 느끼고 이를 해학과 풍자로 풀어보고자 했고, 그 대상으로 우아하고 고결한 이미지의 모나리자를 택했다. 순결하고 깨끗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나리자가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돈을 끌어안은 모습 자체가 파격적이라 전시장을 찾은 대부분 관람객들은 이 작품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이 같은 방식으로 작가는 자신의 눈에 비친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보다 해학과 풍자로 위트 있게 풀어낸다. 세상살이도 힘든데 눈살을 찌푸리기보다는 오히려 보고 한바탕 크게 웃어보자는 식이다. 아니면 작품을 보고 깊은 생각에 빠져도 괜찮다. 그건 관람객의 몫이다.
전시는 크게 여섯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갤러리에 들어서면 접견실에 ‘샤넬 넘버5’ 향수를 들고 있는 인디언들의 모습을 그린 ‘굿모닝 아메리카’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고가의 샤넬 향수를 힘없이 들고 있는 인디언 노인의 모습을 통해 가식적인 세상을 풍자했다. 샤넬 회장이 그림을 보고 당장 사겠다고 했지만 거절했을 정도로 작가가 애착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선풍기 앞에 설치돼 있는 마릴린 먼로 조각상이 유명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 = 김금영 기자
고가 샤넬 향수 든 인디언 노인 등 가식적 세상을 풍자
신선한 충격 담은 작품 위주로 선보여이 작품을 시작으로 바이올린,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에 그림을 그린 ‘악기 시리즈’의 방이 이어진다. 버려진 악기에 그림을 그려 작품으로 재탄생 시켰는데, 이 악기들에도 모나리자나 유명 미술인들이 그려져 있다.
이 공간을 둘러보고 넘어가면 작품 세계를 이해하도록 인터뷰 등을 담은 영상실이 있고, 그 옆에 파란 벽의 새 공간이 나타난다. ‘타깃 시리즈’ 공간인데, 다트의 표적으로 표현된, 즉 인간의 타깃으로 희생당하는 동물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들이 주로 전시돼 있다.
▲작가의 작업실처럼 구성된 전시장의 한 공간. 사진 = 김금영 기자
그 다음에 모나리자 시리즈가 이어지고, 마지막엔 작가의 작업실 같은 공간이 펼쳐진다. 실제 작가의 작업실 사진을 찍어 벽에 붙여 꾸민 공간으로, 작품을 천천히 감상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작가의 작업실에 불쑥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최민영 더페이지 갤러리 큐레이터는 “작가의 작품 하나하나에는 스토리가 담겨 있고, 더 나아가 그 스토리에 대한 해학과 풍자가 있다. 어떤 규칙에 우위를 두지 않고 중립적 시각으로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며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 규범 그리고 질서에 대해 유쾌한 재해석을 시도한다.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 작가의 작품을 실컷 만끽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2월 15일까지.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