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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인터뷰 - 미국서 화제의 책 펴낸 최낙언]美 최고출판사가 한국 기업임원의 ‘맛과학 책’ 펴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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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16호 최영태 기자⁄ 2015.02.05 08:59:38

▲자신의 저서에 대해 설명하는 최낙언 이사. 사진 = 안창현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최영태 기자) 책, 그 중에서도 과학 관련 책은 교수가 쓴다는 게 한국인의 상식이다. 아니, 교수도 아닌 사람은 ‘감히’ 과학 관련 책을 쓰다니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게 더 한국적 상식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을 통쾌하게 깨주는 쾌거가 한국 땅도 아닌 미국 땅에서 일어났다. 한국의 식품업체 이사가 쓴, 박사도 아니고 석사학위‘밖에’ 없는 식품공학 전문가가 쓴 식품 관련 책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더니 급기야 미국의 초대형 출판사가 오는 2월 9일 출판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책값도 한국 기준으로는 깜짝 놀랄만한 약 11만원(미화 99.95달러)이나 된다.

한국어판의 책값이 1만 3800원이니, 동일한 내용이 한반도에서 미국 땅으로 건너가면서 값이 무려 8배나 점프했다. ‘강남 귤이 강북 가면 탱자 된다’더니, 이건 마치 ‘한국에서 헐값 받던 지식이 미국으로 건너가 대박이 난’ 케이스다.

식품업체 시아스(sias)에서 이사를 맡고 있는 최낙언 씨의 저서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예문당)는 지난 2013년 3월 5일 발간 뒤 3쇄를 거듭하며 6천부 정도가 팔려나갔다. 맛집을 다룬 여행기류도 아니고, 맛의 과학을 다룬 전문서적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많이 팔린 히트 서적이었다.

이 책은 곧 미국의 한정훈 박사(미국 식품과학회지 부편집인, 식품업체 펩시코 중앙연구소 수석연구원)의 눈에 띄었고, 한 박사는 “이 책을 번역해 미국에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곧 대형 출판사 와일리(John Wiley & Sons)에 이 책의 번역출판 가능성을 타진했다.

▲와일리 출판사에 최낙언 이사의 저서 영역판 출간을 제안하고 공동저자로 참여한 재미 과학자 한정훈 박사.


와일리는 1807년 설립된 과학기술-의학 전문 출판사로서, 연간 매출액이 1조 9천억 원을 넘는다(2012년 회계연도 기준). 와일리에서 나온 과학 서적이라면 당연히 학계의 주목을 받게 마련이고, 대학 교재 등으로도 널리 활용된다.

한정훈 박사의 제안을 접수한 와일리는 곧 최 이사의 책에 대한 점검 작업에 들어갔다. 국제적 출판사의 출판 프로세스는 무려 25단계를 거치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저자가 내놓은 출판기획서에 대한 외부 심사위원의 이른바 ‘피어 리뷰(peer review: 제3자 전문가의 비판적 평가)’다.

그리고 피어 리뷰 질문서는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노봉수 교수 앞으로 날아왔다. 한국식품과학회의 회장으로서 영문저널 ‘The Food Science and Biotechnology’ 편집위원장을 맡아 올바른 식품과학 지식 보급에 힘써온 노 교수에게 객관적 평가를 의뢰한 것이다.

▲와일리 출판사의 ‘How Flavor Works’ 출판결정 과정에서 피어리뷰를 한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노봉수 교수.


질문서는 △최 이사의 책은 어떤 사람들에게 읽힌 만한 내용인가 △발행하면 식품산업 분야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가 △대학 교재로 선택될 가능성은? △책의 구성이 맛 과학 분야의 전반을 포괄하는가 △미국식품학회 회원들에게 도움을 줄만한 내용이냐 등을 물었다. “최종 출판 계약이 이뤄지기 전까지 평가자인 노봉수 교수는 저자인 최낙언 이사나 한정훈 박사와 접촉하면 절대 안 된다”는 금지조건이 달려 있었다.

노 교수는 “와일리 측에서 한국의 저와, 미국의 또 다른 식품과학자 한 명에게 피어 리뷰를 의뢰했을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출판을 결정했을 것”이라고 CNB저널에 1월 27일 밝혔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 한국어 저술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는 영어판 저술 ‘How Flavor Works’로 탈바꿈했다. 번역뿐 아니라 내용의 보완에도 재미 한정훈 박사가 기여함에 따라, 미국판 저서는 최낙언-한정훈 공동저서로 출간됐다.


재미 한정훈 박사가 한국 베스트셀러에 착안해
글로벌 출판기업 와일리에 출판 제안하고,
와일리는 한국 노봉수 교수의 리뷰 거쳐 출판 결정



영어판 출간을 앞두고 CNB저널을 방문한 최낙언 이사는 영문판의 책값이 99.95달러로 책정된 것에 대해 “그간 책을 7권이나 냈지만 아내에게 ‘이거 인세 받은 거야’라면서 목돈을 건네주진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 같다”며 싱글벙글 웃었다. 높은 책값 책정에, ‘미국식 인세’ 시스템에 따라 목돈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었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대학 과학교재에 와일리 책이 빠지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최 이사 책이 대학교재 등으로 채택된다면 그의 전망은 곧 숫자로 증명될 전망이다.

▲한국어판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와 영문 번역-보강판 ‘How Flavor Works’. 사진 = 안창현 기자


최 이사를 인터뷰하기는 힘들다. 그의 이른바 ‘천재식 대화법’ 때문이다. 그는 과학적 사실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찬찬히 설명해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식품과학자이지만, 그의 관심 분야는 뇌과학 등으로 폭넓게 확장돼 있고, 자신의 뇌리에 떠오르는 화제들을 초고속 정보망을 서핑하듯 턱턱 털어내기 때문이다. 대화는 ‘사과의 맛’으로 출발해 ‘조미료(MSG)의 안전성’, ‘커피 향의 비밀’로 이어지더니 이어 ‘인류의 수명’, ‘피아노 소리로 보는 음성학’ ‘뇌 도파민의 역할’ 등으로 마구 날아다닌다.

그의 이런 대화법, 즉 “당신이 알아듣던 말든 나는 달린다”가 있었기에 그의 저서 ‘How Flavor Works’의 탄생도 가능했다. 그는 말했다. “현재 나와 있는 책의 1만분의 1 분량으로도 지식전달이 가능하다”고. 이것저것 요것조것 각론으로 세분화시켜 설명(전문 학문 분야의 교수들이 주로 하는 방식)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일이관지(一以貫之: 하나로 꿰뚫음)하면 세상만사, 특히 맛의 세계를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의 독특한 태도는 그가 운영하는 ‘seehint.com, 최낙언의 자료보관소’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사이트는 그의 개인 자료 저장소(데이터베이스)다. 온갖 스크랩, 아이디어, 사례 등을 모아 놓았다. 온갖 책과 자료를 읽고 모아놓은 데이터베이스라면 ‘내 피땀의 결과’이기에 다른 사람이 못 보도록 꽁꽁 숨겨놓기 쉽다. 그러나 최 이사는 그렇지 않다. “누구든 와서 얼마든지 보고 베껴가고 공부하라”는 태도다.

seehint.com의 메뉴 구성도 재미나다. 주요 메뉴단추의 구성이 ‘음식을’ ‘즐겁게’ ‘먹어야’ ‘건강’ 등으로 이어진다. 각 메뉴의 내용은 △음식을: 식품에 대한 화학-분자과학적 기초지식 △즐겁게: 인간의 미각, 후각, 색각, 감각에 대한 과학적 지식들 △먹어야: 뭘 먹을지 고민말고 어떻게 먹을지를 고민하라는 내용. 즉 엉터리 다이어트들에 대한 반박들 △건강: 몸에 대한 이해-지식 등이다.

그가 이렇게 자신의 지식 보물창고를 터놓고 공개하는 데는 자신감이라는 바탕이 깔려 있는 듯 보였다. 예컨대 사업 아이템이 있다고 하자. 범재가 약간 기발한 사업 아이디어를 가졌다면 꽁꽁 감쳐둬야 한다. 새나가면 바로 모방이 이뤄지고 돈 벌 기회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꿸 줄 아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면 보물을 그냥 남보란 듯이 내놔도 상관없다. 꿸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경우다.

최 이사는 ‘맛이란 무엇인가’란 책을 2013년 낼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책을 낸 이유요? KBS TV의 ‘스펀지’란 방송을 보고난 뒤였어요. 식품의 문제점을 여러 실험을 통해 보여주는 프로그램인데, 정말 그렇게 우리 주변에 문제투성이뿐인 식품만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지요”라고 말했다.

TV를 보고 있으면 세상엔 주로 두 종류의 음식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먹으면 큰일나는’ 음식들과 ‘먹으면 기막히게 좋은’ 음식들이다. 전자(불안-공포 과장 식품)를 강조해야 후자(효능 과장 식품)가 잘 팔린다.


“이 책 왜 썼냐구요? TV보면 한국에는 먹으면 죽는 음식과,
먹으면 만병통치되는 음식 두가지만 있어요.
정말 그래요? 현실엔 그런 최악-최선 음식 거의 없어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과학적으로’ 인공조미료(MSG)의 반수 치사량(투여하면 실험동물 절반이 죽는 양)은 소금의 7분의 1에 불과하다. 소금의 독성이 MSG보다 7배나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TV에서 실험자가 소금을 한 숟가락 먹으면 “무지 짜겠군” 정도로 그치지만, MSG를 한 숟가락 먹으면 “저 사람 죽으려고 저러나”며 놀란다. MSG를 안 치는 식당은 건강식당으로 통한다. “MSG를 안 쓰면 결국 소금으로 간간한 맛을 내야 장사를 할 수 있는데, 도대체 어느 쪽이 더 과학적으로 위험하냐?”는 게 최 이사의 지적이다. 

▲최 이사가 그려 보여준 그래프. 현실의 음식은 아주 나쁘거나, 아주 좋은 음식은 드물고 그저그런 음식이 대부분일 터인데(A곡선), 언론이 보여주는 음식세상은 먹으면 큰일나거나 먹으면 끝내주는 음식이 대부분이니(B곡선), 도대체 어느 쪽이 맞는 걸까.


최 이사는 “한국인 머릿속의 식품 세상”이라며 가운데는 푹 꺼지고 양쪽은 산처럼 부풀어 오른 양극화된 두개의 종 모양 분포곡선을 그려 보인다. 왼쪽 산은 먹으면 큰일나는 음식들이고, 오른쪽 산은 먹으면 기막히게 좋은 음식들이다. 가운데 푹 꺼진 계곡은 ‘특별히 좋지도, 특별히 해롭지도 않고 그저 그런 음식들’이다. 과연 현실이 이럴까? 세상의 모든 정상분포곡선은 가운데가 불룩한 종 모양이다. 아주 나쁜 음식도, 기막히게 좋은 음식도 극소수이고, 나머지는 다 그저 그런, 우리가 늘상 먹어대는 음식들이다. 현실의 음식 분포와 다른 분포곡선을 전문가들이 보여주고 있다는 소리다.

그는 2월에 새 책 ‘맛의 원리: 맛의 즐거움은 어디서 오는가’를 또 펴낼 예정이다. 맛은 입이나 혀로 느끼는 게 아니라 뇌로 느끼는 실체라는 점, 즉 맛집의 기막힌 맛은 식당의 분위기와 브랜드파워 등에서 오는 것이지, 눈을 가리고 테스트하면 맛집과 보통식당의 맛 차이를 거의 알 수 없게 된다는 사실 등을 또 한 번 여러 과학적 데이터로 보여주는 책이란다. 한국에 앉아 미국 메이저리그 안타를 친 듯한 영문 저서를 펴낸 그의 히트 행진이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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