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왕진오 기자) 공식 석상과 개인전 참석을 일체 자제하고 공공장소에서 위장을 하고 다니며 자신의 정체를 미스터리로 지키고 있는 그래피티 작가 걸리(Gully, 36)의 신작 12점을 포함한 16점이 최초로 한국에서 공개된다.
'차용 미술'을 통해 미술사를 빛낸 작가들에 대한 존경과 그들의 창작물에 대한 파괴를 동시에 행하는 걸리의 개인전 '미술의 철학‘이 5월 7∼31일 서울 강남구 오페라갤러리 서울에서 진행된다.
걸리는 거리미술 작가로 '빌려온다'는 의미의 '차용 미술'을 접하면서 길거리 벽화 그래피티 작업을 캔버스로 옮겨놓는다.
걸리의 차용은 미술 내부에서 참조 대상을 찾는데, 단순히 모더니즘 미술 이미지를 차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작품을 바라보는 20세기 관람객과 다시 이 관람객의 행위를 지켜보는 현재의 관객을 조명한다.
작품과 감상자가 작품 내에 함께 존재하는 걸리의 작품 안에는 작품 안의 인물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를 엿보게 유도하는 독특한 구도를 설정한다.
피카소와 로랭, 베르나르 뷔페와 리히텐슈타인 등 차용된 작품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초월해 한 화면 안에 서로 다른 시대의 작품들을 그리고, 작품을 감상하는 관찰자의 의식을 탐구함으로써 작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시각예술이 관람자의 의식에 스며드는지를 재치 있게 그려낸다.
친숙함과 비판성을 결합한 걸리의 작품은 미술의 ‘독창성’이란 개념에 문제를 제기하고, 관객의 인식을 작품의 안과 밖으로 이끌어냄으로써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던 이미지의 의미를 현재의 맥락에서 새롭게 바라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