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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그림값 산정 라이벌]평가원 “우리가 최고 관록” vs 감정협 “숫자로 말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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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33호 왕진오 기자⁄ 2015.06.04 09:12:44

▲아트페어에 걸린 그림과 관객들. 사진 = 왕진오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지난 2008년 3월 인사동 OO화랑의 기획전시에서 300만 원짜리 그림 1점을 구입한 A씨는 5년 뒤 2013년 급전이 필요해 그림을 해당 화랑에 되팔려 했다. 그러나 화랑 측은 “지금 그 작가를 찾는 이가 거의 없으니 우리가 되살 수는 없다. 경매사에 경매를 의뢰해라”고 했다. 경매업체를 찾아가봤지만 여기서도 “거래가 잘되지 않는 작가다. 경매에 내놔도 수수료를 빼고 나면 구매가 300만 원에 못 미칠 수 있다”며 경매에 출품시켜주지 않았다.

A씨는 “살 때는 화랑 측에서 ‘유명한 작가이니 되팔아도 원금은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샀다. 그런데 다시 팔려 하니, 화랑 측이 완전히 딴 소리를 해 신뢰할 수 없게 됐다”며 “지금 그 그림만 보면 약이 오르고, 지인들이 그림을 산다고 하면 발 벗고 나서 말린다”고 말했다.

한국 미술시장에서 흔한 광경이다. ‘그림은 좋은 재테크’이라고 말들은 하지만 한국 미술시장의 형편은 그렇지 않다. 특히 1차 유통 시장인 화랑에서의 판매 값은 고무줄이라는 게 정설이다. 같은 작가의 그림이라도 △화랑들이 악성재고 수준으로 갖고 있는 작품들을 바겐세일 하듯 대량 방출하는 소장품 전에서 구입하는 값과 △아트페어 현장에서 판매하는 가격이 제각각인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2012년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미술작품 가격지수 모형개발 결과보고 세미나 현장. 사진 = 왕진오 기자

만약 A씨가 외국 작가의 그림을, 외국 화랑에서 샀다면, 이런 낭패를 당할 확률은 낮아진다. 화랑에서의 거래가와 경매 낙찰가 등이 오랜 세월에 걸쳐 데이터로서 집계돼 있기 때문에, 같은 그림을 놓고 여기저기서 부르는 값이 제각각일 경우는 한국보다 현저히 낮다. 

미술품 값 산정 놓고 벌어지는 온갖 혼란들

미술품 가격 산정에 대한 논란이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된 사례는 △2010년 하나은행그룹이 외환은행을 합병할 때 외환은행 소장 미술품에 대한 금액 산정 △부실 저축은행 소장의 압류 미술품 △작년 전두환 전 대통령 가족 소장의 미술품들을 압수했을 때에 문제가 됐다. 압류된 전두환 일가 소장의 미술품 가액에 대해서도 “검찰 발표 액수와 실제 시장가격에 큰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공신력있는 가격 산정 기관이 없기에 벌어지는 ‘가격 고무줄 현장’이다. 

그림 값 논쟁이 벌어지면 감정-평가 기관들이 조명을 받는다. 국내에선 관록의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이하 ‘감정평가원’, 원장 엄중구)과 신예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이하 ‘감정협회’, 이사장 김영석)가 대립각을 형성하고 있다. 전자가 화랑 주인들의 모임인 화랑협회와의 협조 관계 속에서, 그리고 오랜 역사와 함께 관록을 자랑하는 전통의 강자라면, 후자는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숫자가 말하게 하자”는 도전자 격이다.

■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2003년 활동을 시작한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이하 감정평가원)은 2006년 강남구청, 국방부, 한국자산관리공사 등이 보유한 그림 30점의 시가 감정을 시작으로 위탁 그림에 대한 가격 평가 실적을 내기 시작한다.

▲2008년 ‘빨래터’ 위작 논란 당시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에서 진위 여부를 발표하는 오광수 감정평가위원장. 사진 = 왕진오 기자

연도별 시가 감정 경력을 보면 △2008년 일현미술관,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국립현대미술관, 목포시청, 금호생명, 리츠칼튼, 동부증권, 경주 엑스포, 카이스갤러리 등 소유의 223점 △2009년 한림제약, 취영루, 청와대, 국회도서관, 두산갤러리, 광주제일은행, 한국감정원 소유 968점 △2010년 통영시청, 국립중앙극장, 공군중앙관리단, 외환은행 소유 1556점 △2011년 한국개발연구원, 국무총리실, 세종손해사정, 공주대학교 소유 274점 △2012년 한국은행, 예금보험공사, 대우인터내셔날, 미래세한법인 소유 1685점 △2013년 프라임저축은행, 대한제분, 포스코 소유 575점 △2014년 한국자산관리공사, 대통령비서실, 토마토 제2저축은행, 삼일감정평가법인 소유 764점 등 2006~2014년 기간 중 5362점의 그림 값을 산정하며 국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감정평가원에서는 수많은 미술 아카이브와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인정받고 활동 중인 70여 명의 감정위원들이 미술품 가치를 산정한다. 이곳의 시가 감정은 작품의 거래 가격을 현재시가로 산정한다. 또한 감정평가원은 단순히 가격 산정만 하는 게 아니라, 그림의 위작 여부를 판단한다. “위작 여부가 먼저 판단되지 않으면 그림 값 산정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게 감정평가원의 주장이다. 단순한 그림 값 산정보다는 진위 평가에서 권위를 갖고 있고, 진짜라고 평가가 끝난 그림에 대해 시가 산정을 해주는 기관이다. 

■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사단법인 한국미술품시가감정협회(이하 감정협회)는 “숫자로 말하자”는 곳이다. 한 해 동안 국내 미술품 경매사 8곳(서울옥션, K옥션, 마이아트옥션, 아이옥션, 아트데이옥션, 에이옥션, 옥션단, 꼬모옥션)이 개최한 모든 경매의 낙찰가를 분석해 ‘경매사 기준’과 ‘낙찰가 기준’으로 정리된 ‘작품가격’ 데이터를 내놓는다.

▲2009년 미술품 시가감정 국제세미나에서 지안핑 메이 교수의 발표 모습. 사진 =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작품가격’에는 해당 년도의 경매사별 총 거래량 및 비중, 경매사별 낙찰률, 국내 미술품 낙찰가 톱 100, 작가별 낙찰 총액 톱 100, 낙찰 총액 상위 20위 작가의 거래량, 낙찰 작품 수량 톱 30 등의 데이터가 나와 있다. 숫자로 말하는 국내 미술 시장의 현재 모습이다.

감정협회는 또한 ‘KYS 미술품 가격지수’를 통해 전년 대비 증감률을 내고, 상위 10등까지 인기 작가의 연도별 평균 호당가격을 산출해 공개함으로써 그간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돼온 한국의 미술품 가격 산정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기초 숫자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양대 감정기관들은 미술품 경매시장을 중심으로 명확한 거래내역의 결과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일 뿐, 경매의 낙찰 가격이 미술시장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군웅만 할거하는 미술 값 산정 업계, 교통정리가 필요”

이 두 기관이 공통적으로 적용하는 기준은 미술품의 크기를 기준으로 하는 ‘호당 가격’이다. 미술 시장에서의 ‘호’는 가로 22.7 × 세로 15.8cm로, 우편엽서보다 조금 큰 크기다. ‘호당 가격’을 결정짓는 요인으로는, 미술품 거래의 1차 시장인 화랑가에서의 주관적 산정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이러한 호당 가격 관행에 대한 불만도 크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표준화된 아파트 값도 지역, 브랜드, 건설사, 향, 층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가격 편차가 크게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값 산정에 호당 가격이 기준 역할을 하려 든다. 주관적 판단이 존중되는 미술 시장이지만, 공급자와 수요자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 또는 수치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8년 ‘빨래터’ 위작 논란 당시 진품 감정서를 받고 공개하는 서울옥션 심미성 이사. 사진 = 왕진오 기자

그는 이어 “공산품이 아닌 미술품의 가격 결정에 있어서 호당 가격이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 경매에서도 경매 추정가를 제시하고 거래 진행 뒤 구매자의 결정에 따라 가격이 확정되는 것처럼 결국 그림 시장에서도 소비자의 몫이 중요시돼야 한다. 화랑과 평론가들이 가격 결정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작가의 활동 경력, 주변에서의 역량 평가, 향후 비전 등을 고려해야 충분히 객관적인 가격 산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미술 시장에서 ‘공표된’ 미술작품 값을 공개적으로 내놓는 곳은 경매사가 사실상 유일하다. 한 경매사의 고위 관계자는 “경매 추정가를 내놓을 때 해당 작가의 과거 경매 낙찰 기록을 확인하고, 현재 시장에서의 거래 시세, 소유주가 원하는 가격 등을 토대에 놓고 최종 추정가를 내놓는다. 시장 가격은 참고로 삼을 뿐이다. 화랑이 부르는 작품 값과, 개인 딜러가 판매하는 작품 값이 다르기 때문이다. 경매장에선 최종적으로 구매자가 그림 값을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미술 시장에서 ‘그림 값을 결정하는 신의 손’이 되고자 하는 양대 기관들(감정평가원과 감정협회)이 경합하고 있고, 여기에 경매업체들이 “우리가 진짜”라며 도전장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공신력을 갖춘 가격 산정 기준 또는 기관이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된다.


해외에선 미술품 값 산정을 누가 하나?

프랑스의 아트프라이스(artprice.com)는 2900여 곳 경매장의 낙찰 자료와, 27만 건의 경매 카탈로그 정보를 제공한다. 수많은 데이터로 객관성을 담보하려는 노력이다. 중국의 아트론(artron.net)도 수백만 건의 자료를 구축하고 거래 정보를 세밀하게 공개한다.

아트넷(artnet.com)은 뉴욕과 베를린에 본부를, 영국, 프랑스, 스페인, 중국 등에 지사를 두고 있다. 미술품 거래 정보를 다양하게 공개함으로써 미술품 거래의 객관성을 확보하고 거래 추이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믿을 수 있는 거래 형태를 구축한다.

▲2013년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10주년 기념 세미나 현장에서 발표하는 박우홍 동산방화랑 대표. 사진 = 왕진오 기자

미국의 전미 감정사연맹(Appraiser Association of America, AAA)은 1949년에 설립됐으며, 700명 이상의 조형예술 및 순수예술의 감정평가사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회원들은 경매회사의 옥셔니어(autioneer), 박물관 및 미술관의 큐레이터, 전문 콜렉터들로 구성된다. 뉴욕주립대학교(NYU)와 산학연계 관계로 맺어져 있다.

국제 감정사 협회(International Society of Appraisers, ISA)는 1979년에 설립됐다. 국제적 감정 협회 중 가장 큰 기관으로 성장하고 있다. 전미 감정사 협회(American Society of Appraisers, ASA)는 1936년에 설립된 세계 유수의 감정기관으로, 주요 8개 분야의 감정가 그룹으로 이뤄져 있다.

Authentication in Art(AiA)는 2012년 네덜란드에서 설립된 독립적 비영리 단체로, 국제 비영리 규정 및 헤이그의 국제 평화와 정의의 도시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 미술 시장 비즈니스 컨퍼런스, 예술법 컨퍼런스, 카탈로그 레조네 컨퍼런스, 미술 진위 주제의 회의 등을 개최하고 있다.

해외의 이런 사례를 둘러보면, 한국의 뒤처진 현실을 알 수 있다.


내가 가진 그림의 가격 정보를 알려면?

국내에서 내가 소유한 미술품의 진위와 가격을 비교적 간단하게 감정 받는 방법으로는 온라인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은 자체 홈페이지(www.artprice.co.kr)에서 온라인 시가 감정 서비스를 제공한다. 감정 받을 작품과 작가 이름을 입력하면 검토 후 온라인으로 시가 감정을 내준다. 물론 시세 정보만 줄 뿐, 작품의 진위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2012년 진행된 미술품 시가감정 세미나 패널들의 질의 응답 장면. 사진 =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온라인 감정 신청 때 작가 약력, 작품 거래 내역, 호당 가격을 첨부해야 한다. 수수료는 10점 미만엔 건당 10만 원, 10점 이상은 8만 원, 30점 이상이면 건당 6만 5000 원이다. 단, 온라인 감정은 작품 시가 500만 원 미만의 작품에만 제공된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의 경우는 회원 가입을 통해 온라인 시가감정만 진행하고 있다. 웹사이트는 www.artprice.kr.

해외 사이트로는 아트프라이스닷컴(www.artprice.com)을 가장 많이 이용한다. 회원 가입 뒤 건당 29∼49달러의 이용료를 지불하면 해당 작품의 시세를 검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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