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 ‘60초 건축’전] 건축가 15인의 상상을 영상으로
▲‘60초 건축’ 전시장 전경. 사진 = DDP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영국에서 공부한 15명의 건축가들이 각자 자신이 만든 영상의 연출을 맡아 건축의 개념을 설명한다. 자신들이 만들었지만 사용자는 일반인이기에 친절한 설명서를 만들었다.
건축가들은 자신의 콘셉트를 흔히 2차원 도면 또는 조감도로 표현하지만, 6월 6일부터 서울 동대문 DDP 갤러리 문에서 진행 중인 ‘60초 건축’전에 참여한 건축가 15명은 이를 영상에 담았다.
선보이는 영상들은 실재하는 건축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각각의 작품들은 증강현실 및 가상현실을 실제와 합성해 새로운 형태의 건축을 보여준다.
▲크리스 켈리, ‘루빅스’, ⓒ Chris Kelly, 2013.(자료=60초 건축 도록(Experiment 1_60 Second Architecture, (Editor Hyun Jun PARK), (Publisher: The Bartlett Alumni Korea, UCL)
'60초 건축'의 이해를 돕는 전시 도록에 의하면, 순례자들의 안식과 영혼의 치유, 그리고 환생을 주제로 한 김우종의 ‘잠든 자들의 도시(The City of Sleep)‘는 영국의 중세와 근대를 아우르는 순례자들의 일상과 기억을 분석하고 시적 상상력을 결합한 내러티브를 구성했다.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의 삶을 압축하고 기록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순례자들의 영혼을 담는 그릇인 동면 장치(Cryonics Unit) △마인헤드를 따라 머무는 철새들의 분비물을 태워 새로운 에너지를 생산하는 ‘새들의 종탑’ △환영과 실제가 공존하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방 ‘최후의 집’ 등 잠든 자들의 도시 속 순례자들의 행위는 다양하다. 종교의 자유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치유하기 위해 하는 행위들이다.
▲김우종, ‘잠든 자들의 도시’ 스틸 컷, 2014. (자료=60초 건축 도록(Experiment 1_60 Second Architecture, (Editor Hyun Jun PARK), (Publisher: The Bartlett Alumni Korea, UCL)
다음 생에서의 환생을 꿈꾸려는 데 초점을 맞춰, ‘떠도는 성소(The Floating Cathedral)'에서의 삶과 의식을 영상 테크닉으로 재구성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테마에 대한 건축가들의
자유로운 건축적 상상이 빛나
또한 '60초 건축'전에 설명된 배지윤이 만든 ‘런던의 기억 저장소’는 △오랜 시간 동안 변화해 온 잉글랜드의 수많은 도시 △산업혁명 이후 도시민들의 우울과 몽상을 기록한 런던박물관의 사진과 글, 드로잉을 바탕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같은 공간과 동일한 기억이 어떻게 변하고 지워지는지를 표현했다.
박물관을 통해 들여다본 도시의 기억은 개개인의 기억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과거 다양한 아티스트와 수필가들이 애용한 도시의 그늘이라는 주제와 맞닿는다. 배지윤은 다채로운 도시 런던의 일상과 이면을, 흥미로운 공간 콜라주와 시간의 변화에 따른 크로키 필름 테크닉을 통해 보여준다.
‘런던의 기억 저장소’는 산업화와 세계대전, 그리고 경제 대공황을 겪은 영국의 리얼리즘을 통해 도시 풍경을 여러 드로잉으로 재배치한다. 이상적 도시에 대한 단상을, 시적 상상력을 통해 극적으로 표현하는 형태다.
또한 시대를 아우르는 방을 묘사하고 이를 통해 런던 시민들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려는 호니만, 제프리박물관의 시대의 방을 분석한다. 이를 현대의 이미지와 병치해 런던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 단순히 역사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직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현재의 그것’이라는 테마를 60초 영상으로 드러내고 있다.
런던국립미술관 38번 방에 놓인 17세기 베니스 풍경화 ‘The Grand Canal with S. Simeone Piccole’ 속에 배제된 공간적 파편들을 되살리는 것에서 출발한 전필준의 ‘풍경의 숨겨진 차원, 베니스’는, 풍경의 의미가 전원 혹은 도시 풍경에 대한 성실한 묘사로만 이해돼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출발한 필름이다.
▲전필준, ‘풍경의 숨겨진 차원, 베니스’ 스틸 컷. (자료=60초 건축 도록(Experiment 1_60 Second Architecture, (Editor Hyun Jun PARK), (Publisher: The Bartlett Alumni Korea, UCL)
이 작업은 당시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사진기의 기원이자 카메라의 어원으로 어두운 방의 지붕이나 벽 등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 반대쪽의 하얀 벽이나 막에 옥외의 실제 이미지를 거꾸로 찍어내는 장치)라는 광학 장치를 화가들이 풍경화를 그리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 착안했다.
4개의 서로 다른 시점을 이용해 풍경의 조각들을 가상의 공간에 재구성하고, 시점들의 시간적 연속체인 필름이라는 형식을 이용해 산타마리아 대성당을 배경으로 관람객의 눈앞에 새로운 풍경을 펼쳐 놓는다.
시공간의 재구성은, 수많은 시점들의 움직임을 통해서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는 도시 베니스의 새로운 초상이 된다.
이 전시에 선보인 개별 작품들은 흔히 건축가들이 최종 아이디어를 보여주기 위해 영상이나 애니메이션을 쓰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이다. 각 작가들은 그들의 공간적 사유를 생성, 발전, 구현하기 위해 영화와 애니메이션 생성 방식을 사용해 건축적, 공간적 실험을 진행했다고 전시도록에 설명됐다. 전시는 7월 25일까지.
전시기획 김진숙 건축가
“실험적 건축 메시지를 영상으로”
일반적으로 이뤄지는 건축 전시는, 부담스럽게 많은 양의 정보와 난해한 내용을 집약시켜 놓은 설계도 패널을 비전문가들에게 이해하도록 요구한다고 이 전시의 도록은 설명했다.
또한 현학적 어휘를 사용한 공간의 담론, 또는 이해하려면 많은 전문 지식을 갖춰야 하는 건축도면 형태의 2차원적 건축 전시를 지양하고, 직관적 필름과 미디어의 형태로 60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건축 공간을 구현함으로써 시공간적 경험과 다양한 해석을 함께 나누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60초 건축’을 기획총괄한 김진숙 건축가는 “영상으로 건축의 개념을 담아내는 과제를 런던대학 바틀렛 유학 당시 접했습니다. 2013년 서울 시민청갤러리에서 바틀렛 동문들이 ‘영국의 실험적 건축’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가졌는데 일반인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고 말했다.
또한 "작년에 ‘건축적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이라는 출판으로 건축이야기를 대중들에게 전했고 연작으로 이번에는 영상으로 표현되는 다른 기획의 전시를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15개의 전시작품들은 실험적이지만 현재 또는 가까운 미래에 실현 가능할 수 있는 폭넓은 건축적 상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 설명했다.
▲‘60초 건축’을 기획총괄한 김진숙 건축가. 사진 = 왕진오 기자
종이와 모형 등으로 간접적으로 이해되는 공간이 아니라 현장에서 감각적으로 체험되는 공간적 경험을 나눌 수 있다는 설명이다.
‘60초 건축’은 디지털 시대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지금, 건축의 공간과 시간, 그리고 물성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변화 요구로 볼 수 있다.
김 건축가는 “건축은 보수적 장르입니다. 하지만 사용자는 일반인들이죠. 건축 공간을 즐기고 누리는 것에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 건축과 공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이뤄지기를 바란다"며 “건축이 가지는 폭넓은 다양성과 실험적 사유를 일반대중과 나누어 건축에 대한 경직된 인식을 조금씩 바꾸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왕진오 기자 wangp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