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출판도시에서 열리는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전 전시장. 사진 = 안그라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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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금영 기자) 한글의 세계화 시대다. 10월 16~1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언어박람회’에 한글관이 운영됐고, 한국의 대표 디자이너 이상봉은 패션계에서 한글을 바탕으로 한 디자인으로 사랑 받고 있다. 인기 TV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이 대거 출연한다. 한글을 소재로 한 전시도 많이 열리고 있다. 그 중 한글 글꼴의 아름다움과 정보화의 역사를 소개하는 두 전시가 눈길을 끈다.
한글 글꼴의 美에 주목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전
대체로 사람들은 한글을 감상하기보다 읽기에 바쁘다. 정보 습득이 우선이어서 그 모양새(글꼴)는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한글의 모양새가 미치는 영향도 지대하다. 조선시대 궁녀들이 쓰던 서체라고 해서 ‘궁서체’라고 불리는 글꼴로 예컨대 시위 현장의 격문을 쓴다면, 외형과 내용이 영 맞지가 않아 누구나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식이다.
글꼴 개발에 힘써온 안그라픽스와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가 마련한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전은 한글 글꼴의 아름다움과 최정호의 삶을 조명하는 전시다.
최정호는 평생을 원도(原圖, 모사·복제 등의 바탕이 되는 도면) 설계와 연구에 몰두한 1세대 글꼴 디자이너이자 연구자로서, 원도 활자 시대부터 사진 식자기로 인화지, 필름에 직접 글자를 한 자씩 찍는 사진 식자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십 종의 한글 글꼴을 설계했다. 그의 원도는 오늘날 사용되는 명조체와 고딕체의 원형이 됐다.
전시는 최정호의 삶과 동시에 그가 선보인 아름다운 한글 글꼴의 디자인에 주목한다. 1950년대 민간 최초의 원도 활자로서 수많은 문학 전집류와 백과사전류에 사용된 동아출판사, 삼화인쇄의 활자체를 전시한다. 또한 1970년대를 풍미한 일본의 사진 식자 회사 모리 사와, 샤켄의 사진 식자체와 말년기 미발표작인 초특태고딕체와 그의 마지막 원도 최정호체 등을 소개한다.
여기에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에서 최정호 원도를 바탕으로 개발 중인 초특태고딕체와 최정호체 글꼴 개발 과정과 이 글꼴을 활용한 그래픽 디자이너 10인의 포스터도 전시된다.
안그라픽스 측은 “본문용 활자는 공기이고 물이며 쌀이라는 말이 있듯, 우리 생활 속 매우 중요한 부분임에도 그 가치를 느끼기 어려운 존재가 있다. 사람들은 매일 글자를 통해 정보를 얻으면서도 그 매개체인 글꼴을 의식하지 않는다. 최정호의 삶도 그가 만든 글꼴의 운명과 같았다. 하지만 최정호의 원도는 한글꼴 조형의 역사 그 자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전시를 통해 출판계, 디자인계를 비롯해 최정호의 글꼴을 읽고 쓰는 많은 사람들이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를 기억하고, 그의 작업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되짚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파주 출판도시에서 11월 8일까지.
정보화된 한글의 모습 ‘디지털 세상의 새 이름 - 코드명 D55C AE00’전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전이 한글의 디자인을 탐구한다면, ‘디지털 세상의 세 이름 - 코드명 D55C AE00’전은 오늘날 첨단 기기를 위해 정보화된 한글의 기능성과 역사를 부각하는 시도다. 의사소통 수단인 문자로서의 한글뿐 아니라 정보 처리 도구로서 한글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기획됐다. ‘D55C AE00’은 유니코드(컴퓨터에서 쓰이는 국제적인 문자 코드 규약)로 ‘한글’을 뜻한다.
전시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글 정보화를 가능하게 한 다양한 이야기를 ‘한글 워드프로세서’ ‘한글 자판’ ‘한글 코드’ ‘한글 폰트’ ‘말뭉치와 응용 분야’ 파트로 나눠 소개한다.
첫 섹션인 ‘한글 워드프로세서’는 1982년 불과 17세 나이에 최초로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만든 박현철 씨의 프로그램 개발 역사와 당시 쓰인 컴퓨터 등을 소개한다. 국가 주도로 개발된 한글 전용 워드프로세서 ‘명필’이 1983년 당시 무려 650만 원이나 했던 역사, 최초의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탄생된 이후 나타난 ‘아래아 한글’ 이야기도 다뤄진다.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대중화되면서 박규식 씨가 한글 2.0으로 만든 가족 신문 ‘가족월보’도 소개된다.
▲1990년대 컴퓨터에서 한글을 쓸 수 있게 한 소프트웨어 ‘한글 도깨비’. 사진 = 국립한글박물관
이어지는 ‘한글 자판’ 섹션에서는 과거 매체, 제조사별로 자판이 달라 현재와 달리 불편함을 겪었던 한글 자판 이야기가 펼쳐진다. 1분에 1000타를 칠 수 있어 국회의 의정 기록이나 자막 방송 등에 쓰이는 속기 자판도 체험해볼 수 있다. ‘한글 코드’ 섹션은 컴퓨터가 영어만 지원하던 시대에서 한글을 쓰기 위해 1989년 최철용이 개발한 ‘한글도깨비’ 관련 전시를 보여준다.
이밖에 현대 디자이너의 손에서 한글 폰트로 다시 태어난 ‘정조어필한글편지첩’과 ‘김씨부인상언’ 그리고 한글학자 최현배의 연구도 소개된다. 오늘날 우리가 매일 쓰는 말과 글을 분류 및 분석하는 작업을 빅데이터라고 일컫는데, 그 원조를 소개한다. 우리나라에서 1930년대에 최초로 ‘말뭉치’를 연구한 것으로 알려진 최현배의 한글 사용 빈도 조사 내용을 소개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글의 기능성을 연구할 수 있었음을 강조한다. 전시는 국립한글박물관에서 2016년 1월 31일까지.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