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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전시 ②] 이건 복사열? 화면 차가운데 가슴은 따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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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8호 윤하나 기자⁄ 2016.02.04 08:54:14

▲권태균, ‘다방의 오후 - 경남 김해 1982년 2월’. 사진 = 스페이스22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윤하나 기자) 부모님의 어릴 적 사진, 결혼식 사진 등을 본 적이 있는가? 부모님이 경주 신혼여행에서  찍은 흑백사진을 수줍게 보여준 적이 있다. 내가 모르는 부모의 시간이 담겨 있던 그 흑백사진은, 이상하게 내게도 애틋하고 그리운 기억으로 남았다. 가족사진을 찍으러 마을 사진관을 찾는 날의 설렘은 또 어땠는가. 그 시절 사진은 평생 추억하고 싶은 소중함의 기록이었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기 이전, 그러니까 90년대까지 사진 한 장의 의미는 오늘날의 사진 한 장보다 그 무게감이 훨씬 컸다. 사진에도 총량보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듯 쉽게 찍는 사진의 장수가 늘어날수록 사진을 다시 보는 시간은 줄어들고 애틋함도 덜하다. 

스냅샷, 셀피, 프사 등 현재를 기록하고 보여주려는 방식과 의도는 비슷할지 몰라도 개인적인 기록의 희소가치는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다. 자녀의 학예회 내내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수백 장의 사진과 동영상처럼, 다시 들춰볼 날을 기약할 수 없을 만큼 사진의 양은 방대하기만 하다. 각종 인증샷 및 셀카 사진들은 이제 쉽게 찍어 바로 공유한 뒤 잊혀지는 ‘시각적 패스트푸드’가 되어버린 탓이다. 기록과 정보는 디지털이라는 냉장고에 들어가고 우리는 그 안에서 추억을 언제든지 쉽게 찾아 꺼내 먹게 됐다. 애틋함의 온기는 차갑게 식어버릴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외 정통 흑백사진 거장들의 크고 작은 전시가 열렸다. 보도사진(르포르타주)이 주를 이루던 과거 사진 전통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들의 사진은 매 한 장마다 자신의 시선을 담으려는 정성스런 태도를 보인다. 

사진을 본다는 것은 사진을 찍은 이의 시점을 빌리는 것과 같다. 내가 걸어본 적 없는 거리, 살아보지 않은 시대를 누군가의 눈을 통해 보면서 감동할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다. 흑백사진에는 아련한 그리움을 전염시키는 힘이 있다. 추억은 사진을 찍은 이의 몫이지만 전이되는 향수는 보는 이의 것이 된다.

7, 80년대 특히 활발히 활동했던 두 사진가는 계속해서 길을 떠나고 어딘가의 길을 기록으로 남겼다. 길에서 만난 사람과 동물을 기록함으로써 그들이 경험한 순간을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달하는 한편, 한 컷의 사진을 남기기 위해 숨을 고르고 때를 기다리며, 암실의 처리작업을 손수 해내는 일련의 긴장감도 함께 느끼게 한다. 


‘개와 늑대의 사이’의 고요함
공근혜갤러리 – 펜티 사말라티 ‘여기 그리고 저 멀리(Here Far Away)’전

핀란드 출신 펜티 사말라티(Pentti Sammallahti)는 자신을 방랑자로 칭한다. 그는 추운 날씨와 고요함을 사랑하는 동시에 사진에 동물을 꼭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얗게 얼어붙은 땅이 찍힌 사진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낸 어린이와 동물들 덕분일 것이다. 개 혹은 새는 그의 사진에서 빠지지 않고 자주 등장한다. 특히 ‘러시아의 길’ 시리즈를 촬영하면서 그가 주로 주목한 것은 개들이 있는 길이었다.

▲이 개는 주인의 가방을 물고 어딘가로 달려가는가? Solovki, White Sea, Russia 1992 © Pentti Sammallahti 사진 = 공근혜갤러리

그의 사진에서는 신기하게도 그가 직접 경험했을 혹독한 날씨보다 아름다운 풍광으로 인한 고요한 감동이 먼저 전해진다. 마치 다른 세계, 여기 그리고 저 멀리(here and far away)의 문턱에 와 있는 것처럼, 동화 속 세계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그의 작품을 보면 생각보다 작은 사진 크기(20 x 30cm)에 놀라고, 그 안의 조밀한 세계에 더 깊이 빠져든다. 

▲언 땅에 차바퀴가 빠져도 아이들과 개는 신이 난다. Vuokkiniemi, Carélie, Russia, 1991 © Pentti Sammallahti, 사진 = 공근혜갤러리

40여 년간 작가가 여행하면서 담아낸 작품 속엔 지금까지 그가 만나온 환영 같은 동물들이 존재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토끼나, 양치기 소년의 양떼, 주인의 가방을 물고 신이 나서 달리는 개의 모습 등은 주변의 광활한 풍광에도 불구하고 신비로운 오페라나 고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말라티는 “내가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여행을 통해서 깨달았다”고 한다. 여기서 ‘이들’은 자신 곁의 돌,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그림을 그리듯 날아가는 새들처럼 자신이 길에서 만난 모든 것을 말한다. 마치 하이쿠의 시처럼 고요하고 소박한 그의 사진은, 우리에게 밀도 높은 풍경들이 불러일으키는 동화적인 상상력을 경험하게 한다. 전시는 2월 28일까지.


80년대 한국의 삶 ‘이타적인 예술’ 
스페이스22 - 노마드 (Nomad)

고 권태균 사진가의 작고 1주기를 맞아 그의 대표작인 ‘노마드’ 시리즈를 한데 모은 전시다. 작가는 1980년대를 찍은 사진들에서 골라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모두 네 차례 노마드란 같은 제목으로 사진전을 연 바 있다. 그 시절 한국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사진에 포착해온 작가는 멋부리지 않는 사진으로 인간의 보편적 삶에 주목했다.

▲권태균, ‘ 집으로 가는 길 3 - 경남 의령 1983년’. 사진 = 스페이스22

사말라티와 마찬가지로 권태균은 노마드(유목민)을 자처하며 한반도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돌면서 흑백사진을 찍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전통과 근대가 교차하던 80년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다채로운 표정을 사진 속에서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사진 ‘장을 마치고 1’ 속의 머리에 짐을 인 채 장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낙네들의 표정은 눈이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익살스레 밝다. 풍족하진 않지만 공부하는 자식 끼니를 챙겨줄 생각에 웃음 짓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권태균, ‘장을 마치고 1 - 경남 의령 1983년 2월’. 사진 = 스페이스22

‘집으로 가는 길 3’은 또 어떤가, 산 넘고 몇 리를 걸어 등교하는 남학생들이 차이나 칼라 교복을 입고 있다. 이 사진이 찍힌 1983년은 공교롭게도 첫 교복 자율화가 시행된 해였다. 이 학생들은 아마도 일제 때부터 입기 시작한 ‘가쿠란’ 교복의 마지막 세대였을 것이다. 그 시절 두발규제도 완화된 정황을 생각하면 사진 속 까까머리 스타일도 1년 뒤엔 가쿠란과 함께 사라졌는지 모른다. 

작가의 사진에서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그럴듯한 구도나 장치들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거추장스러운 치장을 걷어내고 그저 발견한 인물들의 자연스런 모습과 그들의 생을 반영하는 표정에 집중할 뿐이다. 그 덕분에 이제는 사라진 시대 속 배경에 호기심이 가는 것은 물론, 그 시절 사람들의 진실한 모습에 눈길이 간다.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시선이 오래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시는 2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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