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고비 넘은 이우환 사태…작가 vs 감정가 중 피볼 쪽은 누구?
둘 중에 한쪽은 피를 보게 생겼다. 이우환 화백과 수사당국-감정전문가 사이에서다. 수사당국의 의뢰를 받은 국제미술과학연구소, 한국미술감평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압수된 이른바 ‘이우환 위작 13점’에 대해 “이건 모두 위작”이라는 일치된 판정을 내렸다. 허나, 이런 감정에 대해 이 작가는 해당 압수 작품들을 돋보기로 꼼꼼히 살펴본 뒤 29일 “전부 진품이 맞다. 호흡이나 리듬, 채색이 다 내 것”이라고 공표했다.
감정 뒤 “이건 가짜”이라고 판정한 쪽이 있고, 정밀감정 뒤 “이건 진짜”라고 판정한 작가가 있으니, 법정다툼과 시비가 가려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은 진즉에 예견돼 왔다. 압수된 ‘이우환 위작’ 13점에 대해 경찰이 6월 2일 “모두 위작”이라고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문화부는 6월 9일 공개토론회를 열어 “미술품 위작 사태를 막기 위한 여러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리고 이 공개토론회에는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도 참석해 위작 사태의 심각함을 알렸다.
▲이우환 화백이 27일 오전 서울 중랑구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로 출두하면서 경찰이 자신의 작품 13점에 대해 위작 판정을 내린 것과 관련해 경찰과 언론에 강하게 불만을 토로하며 조사실로 들어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우환이 진품이라고 주장한다면 '1977~79년 이우환 행적 데이터' 등 공개하겠다”
최 소장은 압수된 13점에 위작 판정을 내린 감정인 중 하나다. 그는 문화부 주최 토론회에서 대부분의 미술 관계자들이 “미술계가 자정 노력을 조금만 더 하면 된다”고 별 문제없음을 주장한 반면, “시판 그림의 30% 정도는 위작일 것이다. 내가 그간 수사당국의 의뢰로 그림 3000여 점을 감정했는데 그 중 진품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충격 발언을 한 바 있다.
토론회 뒤 6월 14일 사석에서 최 소장을 만나 ‘이우환 사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때 벌써 최 소장은 “이우환 화백 자신이 13점을 보고 ‘이건 진품’이라고 판정을 내리면, 위작 판정을 내린 나는 법정에 서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법정에 서는 사태를 예견하면서 진위 판정을 내리는 심정이 가볍겠느냐”는 반문과 함께.
최 소장은 법정 다툼을 예견하면서도, 이우환 화백에 대한 일말의 신뢰감을 붙들고 있었다. 그는 “압수된 위작 중 하나에는 이 화백이 사인한 작가 감정서(진품이라는)까지 붙어 있었다. 아마도 그림 거래상이 이 화백에게 그림을 실물로 보여드리면서 작가 감정서에 사인을 받은 게 아니라 사진을 인쇄한 이미지 형태로 보여주면서 사인을 받았을 수도 있다. 진품이 아니라 사진을 보면 작가라도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그의 이런 발언은, 이 화백이 위작 13점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면 “이건 위작”이라고 판단하지 않겠냐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은 것이었다.
물론 그는 반대의 상황도 당연히 예견하고 있었다. “이우환이 ‘이건 진품’이라고 얘기하는 순간, 나에 대한 고소가 들어올 것이다. 일부 미술 관계자들이 나에 대한 고소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를 놓고 미리 회합을 가졌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이우환이 ‘객관적으로’ 위작 판정이 난 13점에 대해 진품임을 주장한다면, 그간 내가 쌓아온 이우환에 대한 모든 자료를 공개하겠다. 이런 자료가 공개된다면 위조범들이 또 이걸 이용해 더욱 정교한 이우환 위작을 만들겠지만… 그래도 하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1977~79년 이우환의 행적에 대해 이우환 만큼의 자료를 갖고 있다”고도 했다. 작품과 관련된 과학적 데이터 이외에 작가가 특정 기간 내에 창작해낼 수 있는 숫자를 넘는 작품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면 그 중에는 반드시 위작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런 위작은 과학적 데이터로 가려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예상되는 법정 다툼에 대해선 "법정도 내가 잘못 감정했다고 판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위폐범이 “내가 위조” 증언했는데, 한국은행이 “나 말고 누가 위폐 감정해?” 주장한다면?
이제 이우환 사태는 한 고비를 넘었다. 수사당국과 감정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이건 위작”이라고 밝혔고, 위작을 그린 범인들도 “내가 위작을 그렸다”고 밝힌 그림들에 대해 작가 자신이 “이건 내가 그린 진품”이라 판정했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위조지폐범 자신이 자백을 했고, 위조지폐 전문가들이 “여러 과학적 검사 결과 위폐가 분명하다”고 판정을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이 “위조지폐가 아니다. 한국은행 말고 도대체 누가 위조지폐 여부를 판정한다는 말인가”라고 주장하는 격이다.
과학감정과 안목감정, 그리고 감정가의 감정과 작가 자신의 감정 사이의 이번 대립에서 어느 쪽이 피를 볼지, 또한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이 밝히겠다는 ‘1977~79년 사이 이우환의 행적 데이터’에 대해 이 화백 측이 어떤 대응을 할지, 바야흐로 흥미진진한 대결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참이다.
최영태 편집국장 dallascho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