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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작가 - 구명선] "걷다보니 당신 마음 속이네"

갤러리 조선에서 11월 2~30일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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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1호 윤하나⁄ 2016.11.29 09:42:42

▲구명선, '모호한 대화'. 51 x 74cm, 연필에 종이. 2016. (사진 = 갤러리 조선)


어둑한 밤길을 산책하다 보면 적막한 거리의 은은한 밤공기가 묘한 위로를 줄 때가 있다. 떠들썩한 대낮의 활기보다 어두운 대기 사이로 번지는 빛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포근하고 즐거운 밤 산책을 닮은 소묘 작가 구명선의 전시에서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만났다.


공감 이끌어내는 눈빛 

구명선의 그림에는 묘한 구석이 있다. 흑백의 고전적인 초상사진이 연상되는 그의 소묘 작품은 대부분 순정만화 캐릭터가 주인공이다. 첫인상으로는 한껏 여성성을 강조하며 가녀린 몸과 화려한 옷차림, 윤기 나는 머릿결을 지닌 여인들처럼 보이지만, 관객의 시선을 오래 잡아끄는 것은 바로 이들의 눈빛이다. 순정만화의 익숙한 만화적 표현으로 그려진 여자들의 눈에 번뜩이는 날이 서 있기 때문이다.


▲구명선, '만족스러운 속삭임'. 130 x 77cm, 종이 위에 연필. 2016. (사진 = 갤러리 조선)


예쁘기만 한 여자보다 자기 발언하는 여자를 그리고 싶었어요.” 작가를 만나 그림 속 여자들에 관해 묻자 그가 답했다여자의 모습이 혹자에게 연약해 보인다고 해도, 위로하거나 보호해달라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선 안 되듯이 말이다. 그림 속 여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지만 그를 통해 무엇도 갈구하거나 바라지 않는다. "‘나 슬퍼라는 말에도 그러니까 안아줘가 아니라 난 그냥 지금 슬픈 상태야로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발언할 뿐"이다


작품과 동명인 이번 전시의 제목 걷다보니 당신의 마음 속이네처럼 그의 작품에는 노래 가사나 유행어를 연상시키는 제목이 많다. ‘무거운 아침입니다’, ‘초인종 같은 마음’, ‘그 가을의 채찍’, ‘누구나 마음속에 꽃 한 송이쯤은 있다등 제목을 읽다 자연스레 보면 입꼬리가 올라간다작가가 좋아하는 문구라며 언급한 깊은 슬픔 속에는 태양이 들어있다는 말도 작품에서 드러났다. 

 

산울림, 들국화의 노래를 특히 좋아한다는 그는 그림을 통해 현대인이 시대에 발맞추지 못해 겪는 '감성의 멀미'를 이야기한다. 감성의 멀미에 대해 그는 요즘 아주 미래적이지도, 그렇다고 아주 원시적이지도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 감성은 과연 이 시대를 잘 따라가고 있을까" 고민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기묘함은 이렇게 멀미를 유발하는 어긋남의 시대를 닮은 듯하다. 작품의 독특한 해학과 감성은 그가 바라보는 시대적인 캐릭터와 뒤섞이며, 관람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각 작품의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감정 상태와 표정, 동작과 제목을 보이는데, 관람객은 이를 복합적으로 이해하고 여기서 공감이 작동한다. 실제로 그의 그림은 관람객이 자신과 닮은 지점이나 당시의 감정 상태에 따라 저마다 다른 그림에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구명선, '초인종같은 마음'. 74 x 51cm, 종이에 연필. 2016. (사진 = 갤러리 조선)

 

연필과 종이로 발견한 아우라

학창시절 미술을 시작하면 처음 접하게 되는 것이 바로 소묘다. 데뷔 이후 줄곧 소묘 작품을 선보인 작가는 자신의 첫 미술적 표현인 소묘를 특히 좋아했다고 말한다. 솔직한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소묘는 가장 나이브하면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기에 솔직한 매체인 셈이다. 그는 데이비드 호크니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계속해서 솔직하게 그리고 싶다고 말을 이었다. 확실히 그의 소묘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그가 집중한 부분은 감성의 '흐름'이었다. 모피의 질감, 나무와 풀숲, 구름, 머릿결 등을 표현하며 흐름을 강조했는데, 그 표현적 재미가 그림의 감성을 더한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풍경화도 소개되는데, 여기에서도 흐름의 미학이 적절히 드러난다. 안개가 낀 짙은 밤 혹은 새벽녘의 풍경화가 초여름 밤의 기분 좋은 열기를 내뿜는다. 몽글몽글한 안개와 빛이 일렁이고 그윽한 분위기에 이끌리다 보니, 이내 조용한 밤 산책이 하고 싶어졌다.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요즘, 작가의 작품이 따뜻한 포옹처럼 위로를 건넸다. 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빛도 따스함을 더한다. 사진에 채 담기지 않은 세밀한 디테일과 감성적인 분위기를 모두 전할 수 없어 자못 아쉽다. 소묘 작품은 특히 직접 작품을 대면해야 그 매력을 알 수 있으므로 직접 방문해 감상하길 추천한다. 전시는 갤러리 조선에서 11월 30일까지.


▲구명선, '오후가 흐르는 숲'. 51 x 74cm, 연필에 종이. 2016. (사진 = 갤러리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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