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문근영은 긴장돼 보였다. 마치 6년 전 처음 연극 무대에 섰던 것처럼. 올해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출연 소식을 알리고 처음으로 취재진을 만나는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문근영은 침착한 듯 보였지만, 표정에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보였다.
문근영이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에 오른다. 주요 배역 캐스팅 및 공식 포스터가 공개됐을 때 사람들은 열광했다. 평소 청초하고 순수한 이미지의 문근영이 줄리엣 역할에 딱 어울린다는 것. 그리고 6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뒤의 연극 복귀작이라 더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문근영은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꽃길을 걸어 왔다. 아직까지도 드라마 ‘가을동화’(2000)에서 큰 눈망울에서 똑똑 눈물을 떨어뜨리던 극중의 은서(문근영 분)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래원과 티격태격 호흡을 맞춘 영화 ‘어린신부’(2004)는 대박을 터뜨리며 문근영을 ‘국민 여동생’ 타이틀에 앉히는 데 성공했고, 이어진 ‘댄서의 순정’(2005)에서도 순진하고 어리바리한 연변 소녀 장채린 역할로 “우리 근영이”를 외치는 오빠 부대를 형성했다.
국민 여동생이라는 타이틀은 문근영을 스타 반열에 올려놓았지만, 이로 인해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귀여운 이미지를 내세운 ‘어린신부’는 대박을 쳤지만, 성인 연기 도전에 나섰던 영화 ‘사랑 따윈 필요없어’(2006)는 어색하다는 평가와 함께 흥행에서도 참패를 겪었다. 하물며 짧은 광고 영상에서 선보인 웨이브 춤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나마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2010)에서는 좋은 평을 받으며 성인 연기자로서의 가능성도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국민 여동생이라는 타이틀의 굴레는 문근영을 완전히 놓아주지 않았다.
이 가운데 문근영은 조바심이 났었나 보다. 연극 데뷔작으로 2010년 ‘클로저’를 택했다. 문근영은 극중 사랑에 저돌적인 스트리퍼 앨리스 역을 맡았다. 오빠들을 향해 방긋방긋 미소를 짓던 문근영이 무대에서 거친 말투를 쓰고, 손에는 담배를 들었다.
이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아쉽다’는 것이었다. 어린 소녀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서 어울리지 않는 화장을 한 것 같은, 어색한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전에 아역 스타로 시작해 귀여운 이미지로 사랑받았던 배우 이재은이 파격 노출을 강행한 19금 영화 ‘노란머리’에 출연했을 당시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무대에서의 문근영의 눈빛은 강했고, 새로운 연기에 도전하는 용기가 대단했지만 대중을 빨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흡입력은 국민 여동생이라는 이미지에 가려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역 연기자로 시작해 본격 성인 연기로 발돋움을 내려는 스타들은 초반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특히 문근영에게는 이 시기가 더욱 긴 것 같다. 올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에서도 사람들은 문근영을 국민 여동생으로 바라봤다.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한다.
이 가운데 문근영은 올해가 가기 전 다시금 두 번째 연극 도전에 나서며 ‘클로저’ 트라우마와 국민 여동생 타이틀 벗기에 나선다. 이전의 선택과 비교해 달라진 것은 신중함이다. 2006년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도 2010년 연극 ‘클로저’도 기존 이미지와 정반대의 출연하는 것이 급해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상큼발랄하던 문근영을 보다가, 중간의 과도기 과정 없이 바로 상반된 역할의 문근영을 보는 사람들은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문근영은 올해로 서른 살이다. 1999년 영화 ‘길 위에서’로 데뷔 이후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여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 ‘불의 여신 정이’, 영화 ‘사도’ 등에 출연하며 성인 연기자로서의 모습을 꾸준히 보여 왔다. 적어도 어제오늘 확 다른 모습이 이번엔 아니다.
그리고 연극 선택도 파격에서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클로저’에서의 앨리스 역할은 연극에 막 첫발을 떼는 문근영이 소화하기에는 다소 괴리감이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엔 누구나가 다 아는,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이다. 순수하게 사랑을 믿고,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아파하는 줄리엣의 이미지는 대중에게 각인된 문근영의 청초한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극중의 줄리엣의 역할도 문근영의 상황과 맞닿는 느낌이다. 줄리엣은 소녀와 여인의 기로에 서 있다. 사랑을 모르고 그저 순수하기만 했던 줄리엣은 처음엔 그저 철부지 소녀였다. 그런데 이 소녀가 사랑을 알게 되면서 점점 성숙해진다. 이제 ‘국민 여동생’이 아닌 ‘배우 문근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문근영의 성장과도 비슷하다.
비주얼적으로도 어울린다. ‘클로저’에서 문근영은 짙은 화장에 평소 잘 보이지 않던 파마, 그리고 찢어진 옷을 입었다. 그런데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옅은 화장에 긴 생머리, 그리고 청순한 스타일의 옷을 입는다. 색다른 파격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클로저’가 제격이지만, 자연스럽게 연극 무대에 녹아들기에는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 선택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상대 배역과의 조화도 눈길을 끈다. 또래 배우 박정민이 로미오 역할을 맡았다. 두 배우가 보여줄 새로운 해석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 제작발표회에서 양정웅 연출은 “로미오와 줄리엣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다. 그런데 두 배우가 대본을 읽는 순간 독특함을 느꼈다. 많이 공연돼 오고 읽힌 로미오와 줄리엣이지만, 이들만의 특성이 묻어나 전혀 새로운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나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문근영 또한 포부를 밝혔다. 그는 “대본을 읽고 정말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어서 출연을 결정했다. 6년 만의 연극 무대 복귀가 많이 떨리지만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 여동생 타이틀은 문근영에게 고마운 가운데 또한 지겹기도 했을 타이틀이다. 문근영은 그간 정말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많은 출연 경험이 있는 드라마에서는 성인 연기자로서의 재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연극에서는 문근영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되지는 못한 상황이다. 문근영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대중에게 어떤 모습을 보일지, 또 어떤 새로운 평가를 받을지 기대된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12월 9일 개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