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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박정민과 문근영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서 다행이야

꽃미남도 아니고 고혹적이지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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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16.12.16 17:04:26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호흡을 맞추는 박정민(왼쪽)과 문근영.(사진=샘컴퍼니)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제작발표회 당시 출연 배우들과 양정웅 연출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았다. “박정민과 문근영이 보여주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굉장히 독특하다.” 연기 방식이 난감하다는 고차원적 디스였을까, 아니면 정말 독특하다는 칭찬이었을까. 당시엔 판단이 서지 않은 가운데 ‘로미오와 줄리엣’이 개막했다. 그리고 느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박정민과 문근영이라서 다행이야.”


박정민과 문근영의 출연 소식은 세간의 화제였다. 영화, 드라마에서 종횡무진 활동하는 이들을 좀처럼 연극 무대에서는 볼 수 없었다. 특히 문근영은 6년 전 ‘클로저’로 혹독한 연극 데뷔 신고식을 치른 이후 두문불출이었다. 하지만 무대에서 느꼈던 그 희열감을 잊지는 못했던 것 같다. 어쩌다 종종 무대 객석에 앉아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뮤지컬 ‘마타하리’ 때도 작은 얼굴을 큰 마스크로 감싼 채 공연을 보러 온 문근영을 마주치기도 했다.


이 가운데 또래 배우 두 명이 셰익스피어의 그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팬들을 들뜨게 했다. 공개된 포스터 속 청초한 문근영의 이미지는 줄리엣과 딱 어울렸고, 영화 ‘동주’ 등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인 박정민 또한 로미오로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문근영(왼쪽)과 박정민은 어디로 튈 줄 모르는 톡톡 튀는 줄리엣과 로미오를 보여준다.(사진=샘컴퍼니)

이들의 무대를 보고 느낀 것은 풋풋함 그 자체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유치함. 그래서 존재하는 어색함. 하지만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다. 문근영은 기존 대표 줄리엣으로 꼽히는 배우 올리비아 핫세, 클레어 데인즈가 연기한 줄리엣처럼 고혹적인 매력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박정민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보여준 꽃미남 로미오와는 이미지가 다르다. 미남보다는 볼매(볼수록 매력 있는)에 가깝다.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더 이들만의 매력이 부각된다.


기존 ‘로미오와 줄리엣’을 다루는 콘텐츠는 다소 철든 청춘남녀의 사랑을 보여줄 때가 많았다. 슬프고 안타까우며 고귀한 사랑, 그 이미지에 대부분이 익숙하다. 그런데 1막의 이들은 정말 철이 없다. 그래서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자유분방함이 있다. 예의나 체면치례보다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한다.


대사 자체는 “사랑한다”를 그저 “사랑한다”로 표현하지 않는 셰익스피어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가 녹아 들어가 어렵게 느껴지지만, 가슴이 터질 듯 들뜨는 사랑에 어쩔 줄 모르는 이들은 그 대사를 설렘으로 표현해낸다. 제작발표회에서의 “독특하다”는 말이 이해가 가는 지점이다. 어벙한 표정의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박정민이 등장할 때 웃음이 터질 때가 많고, 안절부절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문근영은 한없이 귀엽다. 고귀하다기보다는 ‘오구오구’ 소리가 튀어나온다. 깜찍한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1막에선 한없이 철없고 2막에선 폭풍 눈물 쏟아내고


▲문근영은 줄리엣 역을 맡아 열연한다. 아직은 어색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줄리엣에 대한 신선한 해석을 보여줘 눈길을 끈다.(사진=샘컴퍼니)

그런데 2막에 이르러서는 분위기가 반전된다. 1막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면서 웃음 포인트에 집중한다. 그런데 로미오가 줄리엣의 사촌 오빠 티볼트를 죽이고 추방당하면서 시작되는 2막은 초상 분위기다. 그리고 여기서 박정민과 문근영이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몰입도가 대단하다. 로미오는 자신의 분노를 억누르지 못해 티볼트를 해친 것에 대해 스스로 자책하고 무너진다. 자신을 도와주는 로렌스 신부에게 미친 듯 화를 내기도 한다.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에서 1막의 어벙하던 로미오는 어느덧 사라진다.


줄리엣은 특히 약을 먹기 전 고민하는 장면이 압도적이다. 아버지가 강요하는 패리스와의 결혼을 피하기 위해 가사 상태에 빠지는 약을 먹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대부분 줄리엣이 굳은 결심을 하고 약을 먹는 것으로 표현될 때가 많았는데, 이 공연 속 줄리엣은 굉장히 갈등하고 불안해하며 어떤 고민들을 했을지 보여준다.


혹여나 약을 준 로렌스 신부가 사실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독살하려는 건 아닌지, 깨어났는데 죽은 망령들의 영혼이 자신을 부르는 건 아닌지, 과연 깨어날 수는 있을지 고민하며 광기에 휩싸인다. 평정심을 갖고 약을 먹으려던 줄리엣은 단 몇 초 사이 미칠 듯한 불안감에 휩싸여 눈동자가 흔들리고, 얼굴은 창백해졌다가 붉어졌다가 한다. 단순히 ‘국민 여동생’으로 귀엽게 보였던 문근영이 어느덧 올해로 배우 인생 17년차임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다.


▲(왼쪽부터)김성철, 이현균, 박정민 3총사가 열연 중인 모습. 박정민이 보여주는 로미오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보여줬던 꽃미남이 아니다. 어벙하고,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면모 등 어설픈 모습이다. 그런데 그래서 더 눈길이 간다.(사진=샘컴퍼니)

이 장면에 이어 다시금 박정민이 감정을 폭발시킨다. 무덤에 누운 줄리엣을 찾아온 로미오는 슬픔에 휩싸이는데, 그 모습이 정말 어찌해야할지 몰라 미쳐버리는 광기를 보여준다. 줄리엣을 보며 “장난치지 말고 일어나라”고 할 때는 소년 같으면서도, 일어나지 않는 줄리엣을 보고 절규할 때는 사랑의 아픔을 알아버린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심플한 무대 구성은 이런 두 배우의 연기에 더욱 몰두하도록 돕는다. 그 유명한 창가 장면을 재현하기 위한 세트와 가운데 마련된 침대 외에는 별다른 세트가 없다. 하지만 배우들의 몰입도 깊은 연기가 인터미션 포함해 2시간 넘게 흘러가는 무대에 지루할 새를 주지 않는다. 특히 로렌스신부 역의 손병호와 줄리엣의 유모 역을 맡은 배해선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박정민과 문근영 사이에서 무게 중심을 진득하니 지키면서 공연이 제대로 흘러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는다.


좀처럼 무대에서 보기 힘들었던 박정민과 문근영. 아직은 영화, 드라마가 더 익숙해서 무대가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가능성을 봤다. 앞으로도 이들이 연극 무대에 꾸준히 도전을 이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연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2017년 1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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