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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 추천작가 ⑳ 서울과기대 대학원 김다겸] ‘거지같은 작업’으로 말하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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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5-516호(신년) 윤하나⁄ 2016.12.23 18:20:07

▲김다겸, '거지 같은 작업'. 통장계좌, 사본, 기타 사무집기 등, 가변 크기. 2014. (사진 = 김다겸 작가)


작업은 예술가를 반영한다. 표피적으로는 예술가의 정서나 취향이 반영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가 살아온 삶의 여정과 그로 인한 태도까지 드러나곤 한다. 김다겸 작가는 자신만의 규칙을 정하고 순서를 만든 매뉴얼로 퍼포먼스 작업을 이어왔다. 그의 작업에는 조형적인 단서를 찾기보다 매뉴얼이 연상시키는 상황과 감정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결과보다 과정으로, 퍼포머(연기자)보다는 매뉴얼을 중요하게 여기는 김다겸의 작업세계를 들여다보자


이야기에 앞서 김다겸의 모든 작업에는 매뉴얼(작업지침서)이 있다. 매뉴얼은 대부분 3~5단계로 작성돼 쉽게 머리로 상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작업 맞춤 안경(2012)’의 매뉴얼은 다음과 같다. 1. 시력의 차이를 정확히 측정한다 2. 서로 다른 안경 두 개를 맞춘다 3. 서로의 안경을 두 사람이 바꿔 쓴다. 설령 그가 직접 작품을 실연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이 매뉴얼을 읽고 상황을 상상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다.

 

▲김다겸, '이사이'. 개구기, 치과용 레진, 비닐랩, 퍼포먼스, 기록 영상 캡처. 2009. (사진 = 김다겸 작가)

 

이사이

작가가 보여준 영상 기록에서 그는 앞니의 벌어진 틈만 남기고 모두 레진으로 막아놓은 치과용 개구기를 끼고 있다. 마우스피스나 인공 젖꼭지를 연상시켜 현장의 관객 얼굴에도 웃음꽃이 폈으리라 내심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코까지 막은 채 미세한 구멍 하나로 숨을 쉬고 있는 그의 모습에 괴로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쁜 숨을 힘겹게 이어가는 그의 퍼포먼스는 3분가량 이어졌다. 이 작업은 어릴 적 벌어진 앞니로 인한 치과에서의 기억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제 작업은 주로 주변을 떠도는, 폭력인지도 잘 모르겠는 미묘한 폭력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돼요. 크고 작은 폭력으로부터 얻게 되는 경험이 이야기(글)로, 그리고 하나의 매뉴얼로, 마지막엔 작업으로 만들어지죠 ” 그는 이어 퍼포먼스의 전부를 자신이 직접 연기하는 이유를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정한 규칙을 수행하는 게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작가에게 이 구체적인 매뉴얼은 “과거를 회상하며 정리하는 동시에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폭력의 경험이 비단 그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평범한 사람들은 일상에서 사소하지만 강제적인 폭력을 빈번하게 경험하며, 때로는 무심코 그런 폭력을 타인에게 행하기도 한다. 그가 정리한 일련의 매뉴얼들은 작품인 동시에 그가 기억하고 자성한 폭력의 기록인 셈이다


▲김다겸, '액자는 걸어요'. 수거된 액자, 75.4 x 53.4 x 15.5cm. 2011. (사진 = 김다겸 작가)

  

액자는 걸어요

중의적인 제목의 작품 액자는 걸어요는 원하는 크기대로 크고 작게 활용할 수 있는 액자다. 이 작품은 그가 우연히 버려진 커다란 액자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액자를 마포구 합정동 골목에서 발견했는데, 공릉동(노원구) 학교 작업실까지 버스,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가까스로 옮겼어요.” 우여곡절 끝에 데려온 액자는 그가 작업실을 옮길 때마다 함께 이동하며 그의 편의에 따라 변형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이 큰 액자를 한 번 접고 또 한 번을 접어 1/4 크기의 액자로까지 변신이 가능하다



“액자를 길에서 발견하고, 작업실에 옮기고, 간직하면서 유기견을 떠올렸어요. 강아지를 사랑으로 키우지만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변화시키게 돼잖아요. 액자는 제 편의를 위해 변형된거고, 앞으로도 변형되겠죠.” 애정을 바탕에 둔 자성적인 이야기가 담긴 만큼 작가는 거의 모든 전시에 이 액자 작업을 걸었다. 

 

▲김다겸, '달리기 - 짐 하인스를 위하여'. 사진, 영상. 2분 48초. 2015. (사진 = 김다겸 작가)

 

▲김다겸, '거지 같은 작업'. 통장 사본, 종이 위에 펜. 2014. (사진 = 김다겸 작가)


거지 같은 작업

제목부터 신기한 작업이다. 시작은 이렇다. 대학원에 들어간 작가는 작업하기 위해 돈을 벌지만 되레 작업할 시간이 부족해지는 상황에 처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작가는 이 독특한 작업을 기획했다. 그는 한 달에 한번 10장의 통장 사본을 만들어 주변의 지인들에게 판매(작가는 이를 구걸이라 표현한다)했다. 0원으로 만든 통장을 공짜로 복사할 수 있는 곳에서 복사해 판매했고 신기하게도 돈이 들어왔다. 그렇게 번 돈의 전부를 그는 복합기, 스피커와 SD카드, 종이와 종이보관용 서랍, 카트 등을 사는 데 사용했다.

 

스피커로 제가 직접 구걸(판매)하지 않아도 되고, 통장을 계속 복사해 팔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어요. 잘못 복사된 종이를 없애는 세절기까지 갖췄죠.” ‘거지 같은 작업은 올해 초 공간 가변크기에서 전시됐다. 전시 중 스피커가 작업을 설명하면 관람객이 직접 통장을 복사하는 행위로 거지 같은 작업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이 전시로 돈이 또 모였다. 수익금 모두는 오직 거지 같은 작업의 실행과 제작에만 사용한다는 것이 이 작업의 규칙이다. 그는 결국 무한동력장치처럼 (판매만 된다면) 끝없이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냈다.

 

“돈을 벌면 작업에서 멀어지는 현실은 다른 작가들도 비슷해요. 결국 작품 판매나 지원이 필요한 이 상황에서 다른 상황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작가는 수익금이 충분히 모이면 직원을 고용해서 작가 대신 작업을 수행시키고, 더 나아가 회사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봤다고 한다. 결국 작가가 사라져도 작업은 작동되는 시스템이다. ‘언젠간 작가도 관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묻자 작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도 그걸 바라고 있다.

 

▲김다겸 작가. (사진 = 윤하나 기자)

 

한계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 학과장


김다겸은 영상, 설치, 퍼포먼스를 통해 스스로의 한계상황을 표현하는 작가다.

   

그가 구사하는 내러티브는 깊은 개인사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 시대의 젊은 작가가 당면한 절박함이라는 것은 시대 상황이 만든 산물이기에 사회적 확장으로 해석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극단적 설정을 통해 드러나는 표현의 과장법 이면에 인간의 이야기를 독특한 화법으로 조형하는 김다겸 학생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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