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영⁄ 2017.01.02 10:01:00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영화 ‘보디가드’를 기억하는가. “앤다~~리라~~윌 올웨이즈 러브 유~~(And I wil always love you)”를 배경음악으로 팝스타 레이첼 마론(휘트니 휴스턴 분)을 보호하는 경호원 프랭크 파머(케빈 코스트너 분)의 모습에 사람들이 열광했다. 1990년대를 강타한 이 영화는 케빈 코스트너의 멋짐이 폭발하는 작품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이번엔 이 영화가 뮤지컬로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CJ E&M이 2012년 뮤지컬 ‘보디가드’ 웨스트엔드 초연 프로덕션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뒤, 어언 4년의 시간이 지나 한국에 선보이게 된 것. 그런데 이 뮤지컬 심상치 않다. 영화에서 레이첼 마론이 프랭크 파머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역할이었다면, 뮤지컬에서는 공연을 이끌고 가는 이 여배우의 파워가 장난이 아니다. 오히려 “언니” 하며 기대고 싶어진 달까.
국내 초연의 레이첼 마론으로는 정선아, 양파(이은진), 손승연이 캐스팅됐다. 정선아야 말해봐야 입만 아픈, 알아주는 뮤지컬계 베테랑이다. 가수로 데뷔 이후 음반 활동에 집중해 온 양파와 손승연은 이번이 첫 뮤지컬 데뷔다. 둘 다 빼어난 가창력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세 배우가 동시에 레이첼 마론으로 나선다니. 캐스팅부터 화제였다.
‘보디가드’ 무대를 보면 왜 레이첼 마론이 세 명이어야 했는지 알 수 있다. ‘보디가드’는 휘트니 휴스턴의 대표곡들로 이뤄지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영화에서는 휘트니 휴스턴의 곡이 5~6곡 등장하지만 뮤지컬에서는 15여 곡으로 확장됐다. 그런데 이 곡 대부분을 레이첼 마론이 부른다. 격렬한 춤도 계속 추고 옷도 갈아입으면서. 거의 90%의 지분율이 있다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지치지 않고 이 노래와 춤을 모두 소화할만한 기력이 있어야 한다.
이 역할을 손승연은 톡톡히 해낸다. 첫 뮤지컬 데뷔라 더욱 열정을 불태우는 그다. 평소 발라드를 주로 선보여 왔던 손승연이 선보이는 격렬한 춤과 노래는 신선한 면모도 있다. 연기 또한 갑작스레 감정이 오가는 점은 있지만 대체적으로 안정적이다. 극중 최고의 여가수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이렇듯 노래는 환상적이다. 다만 주크박스 뮤지컬은 스토리 전개가 어색할 수 있다는 약점이 있다. 극을 위해 노래가 쓰인 게 아니라, 기존의 히트곡을 바탕으로 극이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 ‘보디가드’도 이를 완전히 피해가지는 못한다. 노래가 위주가 되다보니, 대부분이 레이첼 마론이 노래를 연습하거나 공연을 펼치는 식으로 음악이 등장한다. 이 약점을 보완하고자 등장하는 이가 바로 프랭크 파머다.
‘보디가드’는 특이한 점이 있다. 주크박스 뮤지컬인데, 연극적인 요소 또한 강하다. 노래 못지않게 대사의 양도 은근 만만치 않다. 이건 지난해 초연된 뮤지컬 ‘오케피’를 떠올리게도 한다. ‘오케피’엔 노래도 많이 등장했지만, 연극인지 뮤지컬인지 헷갈릴 정도로 많은 대사가 등장했다. 이걸 극중 오케스트라 지휘자 역을 맡은 황정민이 소화했다.
‘보디가드’에서는 이 부분을 프랭크 파머, 즉 박성웅이 소화한다. 레이첼 마론이 노래라면, 극의 흐름은 프랭크 파머, 이 공식으로 극이 전개된다. 이 방식이라면 박성웅의 뮤지컬 도전이 이해가 간다. 좀처럼 그의 춤과 노래를 볼 수 있었던 기회가 없어, 뮤지컬에 처음 도전한다는 소식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다. 이 작품에서 박성웅의 노래를 들을 기회는 딱 한 번뿐이다. 커튼콜에서 깜짝 춤도 등장한다. 춤과 노래 대신 대사로 극의 전개에 집중한다. 아쉽기는 하지만, 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었던 박성웅을 무대에서 가깝게 볼 수 있다는 기회가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보디가드’의 박성웅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살려는 드릴게” “거참 죽기 딱 좋은 날이네”라는 섬뜩한 유행어를 남긴 그가 이번엔 로맨티스트로 변했다. 무뚝뚝하지만 그 안에 따뜻한 면모를 지닌 프랭크 파머를 연기한다.
‘보디가드’는 멜로와 스릴러를 오간다. 박성웅과 손승연이 등장하는 장면은 로맨스인데, 손승연에 집착하는 스토커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관객이 소리를 지른다. 그만큼 깜짝 깜짝 등장하는 장면이 임팩트가 강하다. 그런데 만약 이 역할이 박성웅이었다면? 박성웅은 이전에 자신에게 새겨진 강한 이미지 때문에 로맨스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며, 영화 ‘무뢰한’에서 전도연과 로맨스를 펼쳤지만 사람들이 로맨스라고 잘 인정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자신은 로맨스 연기에 대한 열망이 있음을 어필하기도 했다.
그 꿈이 ‘보디가드’에서 이뤄졌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총도 마다하지 않고 맞는 경호원이라니! 참 로맨틱하다. 부드러운 박성웅을 볼 수 있는 기회다. 그런데 이 생각 또한 떨쳐버릴 수 없다. 극중 스릴을 불어넣는 스토커의 역할을 더 키워, 이 역할을 박성웅이 연기했으면 그 임팩트가 진짜 어마어마하지 않았을까. 로맨티스트를 꿈꾸는 박성웅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만큼 박성웅이 스릴감 넘치는 연기의 대명사이기도 하기 때문. 지금 남은 이 아쉬움을 청산(?)하기 위해 ‘보디가드’를 시작으로 박성웅이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보다 많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보디가드’의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로 무대 효과가 있다. 무려 첫 시작부터 강렬하다. 마치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화면 전체에 영상을 쏘고 불기둥도 솟아오른다. 무대 전면에 깔리는 영상은 입체적인 효과도 부여해 볼거리가 많다. CJ E&M은 글로벌 프로젝트로 ‘보디가드’에 앞서 뮤지컬 ‘킹키부츠’를 선보였는데, 이 작품 또한 부츠 공장을 배경으로 화려한 무대 세트가 특징이었다. 현란한 볼거리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CJ E&M의 포부가 느껴진다.
그래도 무엇보다 이 화려한 무대 세트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배우들의 열연이 크다. 특히 무대를 집어삼키는 여배우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아주 칭찬해~.” 공연은 LG아트센터에서 3월 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