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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죽은 비평의 미술계'에 비평 읽는 전시회

미술비평 지형도 그리고 실천 모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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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1호 윤하나⁄ 2017.02.03 18:24:45

 

▲오른쪽부터 기획자 이양헌, 공간디자인 이현우, 진행 안광휘. (사진=윤하나)


신문·잡지 기사는 물론 소설책까지 스마트폰으로 읽는 오늘날, 긴 글의 입지가 점점 줄고 있다. 어쩌면 글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지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미술계 내부에서도 비평의 위기가 대두된 지 오래다. 비평 글을 과연 누가 읽겠느냐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오던 비평계에서 최근 시대 변화에 발맞춘 새로운 방식의 비평이 등장하거나, 매체의 청탁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플랫폼을 꾸리는 등 다양한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다. 마침 이런 움직임을 포착하고 동시대 미술비평 지형도를 그려보는 비평가들의 전시가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산수문화에서 21~7일 열린다.

     

미술작품 없는 미술전시, ‘미궁에 빠진 비평의 현주소를 묻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양헌(30)과 진행을 맡은 안광휘(29)를 지난 1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이양헌 기획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비평가 지망생이다. 2015년 전문사 과정을 수료한 그는 본격적으로 미술계에 입문하기에 앞서 현재의 비평계, 특히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젊은 비평가들의 활동이 궁금했다. 이 기획자는 “2014년 열린 국제평론가협회의 주제 미궁에 빠진 비평은 특히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비평의 위기라고 불리는 요즘,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비평가를 섭외해 동시대 미술비평의 지형도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는 전시를 위해 젊은 비평가 5(김정현, 권시우, 안진국, 이기원, 홍태림)에게 일정 분량의 비평 글을 청탁하고, 여기에 곽영빈, 방혜진, 임근준, 정현 등 기성 비평가들의 글을 보태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은 오로지 전시장 내에서 읽거나, 복사한 카피본 형태로만 전시장 밖으로 유통될 수 있다. 40권으로 한정 제작된 책은 전시가 종료되면 폐기될 예정이다. 손수 만든 탁자와 의자 그리고 복사기만 덩그러니 놓인 전시장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읽히는 책에 대해 이양헌은 글을 읽기 위한 정갈한 분위기로 (전시장을) 꾸몄지만, 밖에서는 읽히지 않는 전통적 비평방식이 이제는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도 담겨있다현재의 암울한 비평 현실을 표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표현한 일종의 좌절감은 비평의 확장이 절실해진 현재의 반증이기도 하다.

   

▲'비평실천'전은 미술 작품 한 점 없이 오로지 비평가들의 텍스트와 그 글을 읽기 위한 환경만을 마련했다. 모든 가구는 공간디자인을 맡은 이현우(25)가 제작했다. (사진=이현우)

 

비평의 위기? 미궁에서 탈출하려는 비평적 실천들

비평 중심의 전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술 평론가들이 직접 작품을 만들어 출품한 비평의 지평’(일민미술관, 2009)을 비롯한 전시 및 페스티벌 등의 선례가 있었다. 앞선 예들과 구분되는 이번 전시의 특성은 현재의 비평적 관점을 보여주는 방식으로서 온전히 비평-텍스트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작가 또는 작품의 2차 생산물로서의 비평이 아니라 텍스트 생산자로서 생존하는 비평가에 주목한 것이다. 비단 비평가들의 물리적 생존뿐만 아니라 텍스트 외 새로운 비평 방식에 대한 갈증, 남성 중심의 현 비평계 속 여성 비평가, 미술계 내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적 모색 등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다

  

이 기획자는 좀처럼 함께 만날 기회가 없던 비평가들을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 자리에 모았다. 그는 전시에 앞서 라운드테이블을 열고 참여 비평가들과 다음과 같은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다. 비평적 글쓰기 방식의 공유 작가와 비평가 간의 비평적 거리 비평의 역할과 기능 비평의 위기 동시대 비평 - 플랫폼.



종이보다 웹에서 글 읽는 시대 - 대안적 플랫폼의 발견

전시 전반의 진행을 맡은 안광휘는 작가들의 경우 기존 제도권을 벗어나 신생공간 등의 독립적인 기반을 다졌다면, 비평가들은 어떤 대안적인 방식을 구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고 기획 초반을 회상했다. 젊은 비평가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대안을 실험하고 있을까?


   

▲전시장에 비치된 책은 오직 복사본으로만 반출이 가능하다. 복사기를 테스트 중인 기획자 이양헌(왼쪽)과 진행을 맡은 안광휘. (사진=윤하나 기자)

 

대부분의 비평문이 실리는 월간지 및 계간지 등의 잡지의 경우, 이슈에 대응하는 데 있어 적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두어 달의 시간차가 발생한다. 실시간 연동이 불가능한 지면 게재방식은 빨리 쓰이고 읽히는 요즘 시대의 담론 형성에서 불가피하게 시차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반면 온라인에 바로 게재되는 글은 즉각적 대응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지면으로 글을 읽던 시대에서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는 시대로 변하면서, 딱딱하고 긴 평론 스타일을 벗어나 SNS를 통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평론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젊은 비평가들을 중심으로 기성 매체의 원고청탁에서 벗어나 대안적 생존 방식으로서의 자생적 플랫폼도 등장했다. 기존의 주류 매체에서 다루기 힘든 서브 컬처 담론이나 실험적이고 난해한, 혹은 도발적이고 비판적인 글쓰기가 가능한 대안적 잡지와 온라인 비평 플랫폼이 그것이다. 이들은 제도권에 기대지 않고 독자생존하기 위해 플랫폼을 구축하거나 동인을 만드는 방식을 취한다. 최근 몇 년 간 창간된 독립 비평매체로는 영상비평지 오큘로’, 사진잡지 보스토크’, 신생공간 시청각에서 발간하는 계간 시청각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참여 비평가 중 이기원은 자신의 블로그를 이용해 비평 글을 올리고, 권시우와 홍태림은 각각 집단오찬크리틱-이란 온라인 비평 플랫폼을 구축해 활동 중이다.


▲전시장 내 테이블에서 인터뷰가 진행 중이다. (사진=이현우)



이 같은 대안적 플랫폼은 독립적인 활동을 보장받기 위한 생존방식의 모색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새로운 방식의 비평에 대한 고민도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글을 통한 미술비평의 형태를 벗어나 이미지, 영상, 강연, 전시 등을 연동한 확장형 비평의 실험이 반가운 이유다.


이번 전시 기간 중 미술비평가 12명의 대담이 다섯 차례에 걸쳐 열린다. 3일 오후 5시엔 이기원·김나래·양현정이, 4일 오후 3시엔 김정현·윤원화·이빛나가, 오후 5시엔 권시우·김뺘뺘가, 5일에는 홍태림·정지우와 안진국·신현진이 각각 오후 3시와 5시에 토론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대담 참여를 위한 사전 신청서에는 미술비평이 미술 자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란 설문이 포함됐다. 여기에 사전참여 신청자 100여 명 중 95%그렇다는 긍정의 답변을 내놓았다고 한다(신청자 대부분은 미술계 종사자들이다). 비평이 소외되고 있는 현실이라지만 여전히 비평을 필요로 하는 미술인도 많다. 새로 유입()될 젊은 비평가들은 과연 이 비평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전시는 27일까지.


▲'비평실천' 전시 포스터. (사진=산수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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